꼬실이(61)_빈자리(1)
꼬실이(61)_빈자리(1)
어제 막둥이 데리고 산에 가려고 집을 나서다 현관 앞에서 우뚝,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시는 이 애를 안고 여기를 들어서지 못한단 말이지,’ 그 생각이 머리에 못을 박아 넣었다. ‘여기가 우리 집이야, 기억해 둬. 여기서 우리는 행복했었지. 기억할 거지?’ 그렇게 떠났는데 돌아와 문을 열고 신발을 벗다가 또 우뚝, 끝내 허엉 울고 말았다. 진짜 그 애는 오지 못했다. 다시는 종종 걸어 들어올 수도, 우리 팔에 안겨 들어올 수도 없게 된 거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니, 말도 안 돼!’
넋이 나가 딸과 마주 앉아 종일 굶고 있다가 동호회 아우가 연방 전화를 해 무엇이라도 먹으라고, 하다못해 시켜서라도 먹으라고 채근을 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집을 나섰다. 나서면서 우리 둘 다 막둥이를 챙기려고 팔을 뻗고 의자를 향해 돌아서다가 기겁을 했다. 거기는 그냥 빈 의자만 무심히 놓여 있었다. 쓰윽 손으로 눈을 훔치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신을 신었다.
그리고 식당에 갔다. 음식을 주문해 받았는데 순간 갑자기 화가 났다. 막둥이가 없으니 어떤 식당에라도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가 가 앉은 곳도, 막둥이를 도기휠에 숨 죽인채 살금살금 몇 차롄가 갔던 곳이었다. 우리가 밥을 먹는 동안 녀석은 뚜껑 닫은 도기휠에서 숨죽인 채 담겨 식탁 아래 있어야 했다.
나중에 나와서 들여다보면 동그랗게 웅크리고 자고 있거나 눈 말똥말똥 뜨고 뚜껑 열어주기를 기다리거나 가슴 아프고 미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도저히 할 짓이 못 되었다. 그래서 어지간하지 않고는 밥집에 가서 밥을 먹는 일을 하지 않았고, 하다못해 사람들 만나는 것조차 피하기도 했다. 그들과 편하게 들어가 앉을 밥집이나 찻집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이 땅에서는, 혹은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개 한 마리조차 마음 놓고 기를 수 없다는 게 화가 났다. 소리 지르며 놀이터인 듯 천방지축 뛰어다니고 남이 먹는 밥그릇에 침을 퉤 뱉는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 아이들은 언제나 “어서 옵쇼.”라면서 말이다. 그런 게 생각나니까 녀석이 없어서 당당하게 들어가 앉은 식당에서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몇 가지 찬이 맵다는 핑계로 뜨는 둥 마는 둥 나와 버렸다.
- 김은미 반려견 에세이집 「꼬실이」(해드림) 중에서
(이 책은 상업적으로 기획된 책이 아니라 반려견 ‘꼬실이’와 18년 함께 살아온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http://www.yes24.com/24/goods/4521672?scode=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