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기사스크랩

매미

7154 2007. 10. 7. 14:57

 


                    매미, 그 울음소리

                             조병설



  산 밑 관사에서 들리는 건 온통 매미 소리뿐이다. 계곡 소나무에서 주로 우는가 했더니, 뒷산 밤나무에서도 울고 참나무에서도 운다. 쓰름매미들이 합창하듯 쓰름쓰름 우는 사이 참매미가 솔로이스트인 양 목청을 돋우고, 간간이 제비처럼 조잘대며 우는 매미도 있다. 참으로 치열하게도 운다.

  그해 여름도 매미는 참 요란하게 울었다.

  병원에서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하여 우리 자식들은 백혈병에 걸리신 아버지 살리기를 포기하였다. 혈액주사를 더 맞으면 생명을 연장할 수도 있었지만, 그 임시방편 치료를 위해 무한정 병원비를 끌어댈 자식은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는 치료가 다 된 줄 알고 하향하신 후 다시 기력을 잃으셨다. 혈액주사를 맞으면 나을 줄 알고 입원시킬 아들이 올 날만 기다리셨는데, 어머니는 그 모습이 딱해 불치의 병이라는 걸 말씀드렸다. 그 후 아버지는 삶의 고삐를 놓으셨고, 산골집 오솔한 방에 누워 돌아가실 날만 기다리셨다. 이농(離農)바람으로 큰아들마저 떠나간 산골엔 초여름 매미가 울어대는데, 의사도 없이 종교도 없이 아버지는 그저 죽음만 앞에 두고 계셨다.

  이제 얼마 못 사실 것 같다는 어머니의 전갈을 받고, 태어난 지 한 달 남짓 된 아들과 함께 하향하던 날도, 집안에서 들리는 건 그저 매미소리뿐이었다. 아들이 왔다고 소리쳐도 눈을 뜨시지 않더니, 손자를 낳았으니 좀 보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는 가까스로 눈을 떠 잠시 갓난아기를 바라보셨다. 그렇게 손자가 태어난 걸 마지막으로 확인하신 아버지는 한 달 후 아주 눈을 감으셨다.

  70년을 흙속에 사신 아버지였다. 소년시절에 산골에 발을 붙인 아버지는 매미보다도 더 절박하게 울다가 열여덟 살 소녀를 만났고, 자식이 생기고부터는 그 자식들을 부양하기 위해 흙에 묻혀 살아야 했다. 흙속에 살던 굼벵이는 대대손손 매미가 되어 날아갔는데, 아버지는 그 흙에서 탈출을 하지 못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비탈길만 오르내리셨다. 나뭇짐, 꼴짐, 볏짐, 콩짐…, 여덟 자식 월사금 숫자만큼이나 많은 짐을 지다가 무릎이 망가진 아버지, 끝내 자식들은 다 떠나보내고 진통제로 그 고통을 참아내다가 백혈병에 걸리신 아버지는 매미처럼 날아보지도, 목놓아 울어보지도 못한 채 그렇게 가신 것이다.

  흙에서 살다가 한여름 시한부 삶을 살고 가는 삶이 비슷해서일까. 아버지 장례식을 치루던 그 여름, 고향집 앞산에도 뒷산에도, 아버지를 실은 경운기가 넘어가던 서낭당 고갯마루에도, 매미는 매앰매앰 육자배기 가락보다 더 처량하게 울고 있었다. 암울한 산골에서 죽음만 앞에 둔 아버지는 얼마나 무섭고 고독했을까. 매미는 여덟 자식의 곡(哭)소리로 울고 있었다.

  20여 년이 흘러 다시 돌아온 이 여름, 매미가 또 운다. 7년간 흙속에 있다가 껍질을 깨고 나온 매미, 기껏해야 7일 후면 죽어야 할 매미, 그 중에서도 우는 건 짝짓기를 하려고 암컷을 부르는 수컷매미들이란다. 그런 생각 탓인가, 세월 탓인가. 그 여름 가슴을 쥐어짜던 매미소리는 오늘, 합창소리로 들리더니 차차 절박한 외침으로 변한다. 생존경쟁의 아우성이요, 사생결단으로 부르짖는 종족유지본능의 소리가 된다.

  매미 소리가 가득한, 관사 앞 소나무를 바라본다. 비탈에 간신히 뿌리를 붙인 모습, 중간 중간 굽이진 줄기가 평탄하지 않았던 세월을 말해준다. 비바람에 찢어진 것, 적설(積雪)에 부러진 것, 사람에 의해 베어진 자국도 있어 보인다. 패인 상처로 송진이 흘러나와 눈물인 양 핏물인 양 엉겨 있다. 저 소나무도 70년이나 살았을까. 비탈 흙에서 질곡의 삶을 사신 아버지, 상처투성이로 한여름 시한부 삶을 살고 가신 아버지가 소나무가 되어 저만치 서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이젠 슬픔이기보다는 회한(悔恨)이다.

  20여 년 전 그 여름처럼 아버지는 안 계시고 매미는 같은 소리를 낼 뿐인데 어찌 이리 달리 느껴지는 것일까. 소나무 밑으로 다가가 본다. 매미가 벗고 나온 애벌레 껍데기가 풀잎에 매달려있다. 7년간 살아 있던 몸- 한때 매미의 몸이었는데, 온갖 천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살려고 애썼던 몸인데, 이젠 껍데기일 뿐이다. 몸은, 영혼이 한순간 거처하는 껍데기이다. 매미가 몸을 옮겨 다시 태어나듯, 사람의 영혼도 다른 몸을 빌려 새롭게 태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 내 몸도 껍데기일 뿐이다. 변한 건 내 마음이다. 희로애락은 모두 내 마음 탓이다. 세월이 더 흐른 후 내 마음은 어떻게 변하고 매미소리는 또 어떻게 들릴까. 나는 어떤 영혼이 되어 무엇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짝짓기를 마쳤는가, 매미 한 마리가 푸르르 허공 속으로 날아올라 가뭇없이 사라진다.   




블로거와 함께하는 테마수필가기 http://www.sd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