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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 그렇게 죽고 싶은가

7154 2007. 10. 11. 17:04

 

 

당신들 그렇게 죽고 싶은가.




엊그제 문득 텔레비전을 보다가 우리나라에는 죽고 싶어 안달하는 정치인이 너무 많구나 싶었다. 그들에 의하면 살인의 예비음모가 끊임없이 정치판에서 일어난다는 이야기다.

 

언제부터인가 ‘살인’이라는 섬뜩한 용어가 ‘ooo 죽이기’라는 말로 우리 사회에 널리 퍼졌고, 사회지도층 인사라는 사람들이 어쩌자고 무뇌증 적으로 이런 용어를 사용하는지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마치 ‘죽이기’ 게임이라도 하는 듯하다.

 

정적을 타깃으로 한  ‘ooo 죽이기’의 실례로 ‘김대중 납치사건’ 정도 있겠으나, 요즘 들어서는 ‘이회창 죽이기’ ‘노무현 죽이기’ ‘이명박 죽이기’ ‘박근혜 죽이기’ ‘정동영 죽이기’ ‘손학규 죽이기’ ‘이해찬 죽이기‘ 등등 ‘ooo 죽이기’를 ‘파리 죽이기’ 쯤으로 주장을 한다. 정치인들은 파리 목숨일까? 살벌한 세상이 아닐 수 없다.

 

 ‘죽이기’의 주체는 한 울타리 안에도 있고 밖에도 있는 것 같다. 같은 당의 경쟁자이거나 집권세력이거나 언론이거나 그렇다. 힘없는 야당이 집권세력의 탄압에 맞서 사용하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현장에서 주체가 객체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객체가 주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살해된 사람은 없으니 살인죄의 미수(형법제254조)나 아니면 살인죄의 예비음모(형법제255조)에 그쳤을 법한데 처벌되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

 

 ‘ooo 죽이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가 지금 어떤 세력으로부터 죽임을 당하게 생겼으니 지지자들이 살려달라는 비굴한 읍소의 뉘앙스가 풍긴다.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한 제스처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죽이기’ 안에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하나는 자신이 죽임을 당할만한 큰 힘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죽이려는 주체가 그만큼 큰 힘을 가졌다는 것이다. 설령 누군가 ‘죽이기’를 한다고 해서 쉽게 죽을 그들도 아니다. 만일 나처럼 힘없는 서민이 그들이 말하는 죽이기를 시도하면 오히려 내가 파리 목숨이 될지 모른다.

 

정히 자신의 그런 정황을 알리고 싶으면 탄압이나 억압 등 좀 더 순화된 용어를 사용하면 될 것을, 선거철만 되면 ‘죽이기’라는 말을 무분별하게 뱉어내고 있으니 한번쯤 자성해볼 필요가 있지 싶다. 같은 명사형임에도 서정윤 시인의 ‘홀로서기’와 정치인들의 ‘ooo죽이기’처럼 용어나 표현 하나가 그 사회에 미치는 파문은 적지 않다. 그렇다고 정치인들의 거친 입에서 시적 표현이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가뜩이나 정서적으로 메말라가는 우리 사회를 정치인들이 앞서서  ‘죽이기’ 분위기로 만들어야 되겠는가. 아무리 죽어야 사는 정치판이라지만 이제  ‘죽이기’ 선동은 그만 하라. 그리고 죽지 말고 오래 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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