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번역 논란을 빚은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사례에서 보여지듯 다른 나라의 언어를 우리 말로 옮기는 건 어려운 작업이다. 단순히 문장을 매끄럽게 번역하는 걸 넘어서 그 안에 담긴 뉘앙스와 숨겨진 의미 등 행간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성명순 시인이 출간한 시집 <하얀 비밀>(해드림출판사 刊)은 우리말과 독일어가 고루 섞여 눈길을 모은다.
특히 시집 장정이 마치 고급 다이어리를 연상케 한다. 양장본에다 책장을 밴드로 고정할 수 있도록 제본하였기 때문이다. 이 제본 형태는 국내 시집으로는 처음 시도된 것이다.
이번 시집은 목차와 시인의 말, 축사부터 50여 편의 시가 우리말에 독일어 번역을 곁들여 이색적인 형태를 보인다.
번역은 알브레히트 후베 전(前) 독일 본 대학 한국어번역학과 교수가 진행해 문학계마저 글로벌화 돼 가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 문학이 나아가고 모색할 방향을 제시한다. 더욱이 책 후반부 목차에 있는 ‘번역에 대한 작은 비고: 언어의 신비-시의 신비’에서는 후베 교수가 “인간이 느끼는 감정과 그가 사용하는 언어는 긴밀히 연결돼 있다”며 “그런만큼 시가 지닌 고유성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게 기존 의미를 줄이거나 확장할까봐 조심스러웠다”라고 말한 대목에서는 그가 느낀 시 번역의 난점과 이를 극복하려 했던 노력이 담겨 있어 독자들에게 또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시집에는 총 6부 50여 편의 시가 수록돼 있다. 이 중 ‘나무의 소리’에서는 ‘그리운 이의 접히지 않는 엽서에 써 볼~’, ‘볼 때마다 듬직해 사랑하는 언어를 잉태하며~’ 등의 구절을 통해 흡사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감각적으로 표현한 듯한 인상을 선사한다. 또, ‘나래 편 한글’에서는 한글의 우수성과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을 예찬하고, 이 같은 예찬을 독일어로도 옮겨 색다른 느낌을 준다.
권대근 문학평론가는 “이번 시집은 독일어를 통해 글로벌화 돼 가는 문학계의 현실을 반영함은 물론 자연을 시적 등가물로 생각하고 노래해 의미가 깊다”라고 평했다. 값 1만5천 원
출처 : 경기일보(http://www.kyeongg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