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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할 수 있는 용기

7154 2007. 5. 22. 19:02
 

용서할 수 있는 용기


             김영태




볼일이 있어 불쑥 밖으로 나왔다. 딱히 꼬집어 오늘 처리해야할 일은 아니었지만 나답지 않게 핑계거리를 만들었던 것이다. 거리를 걷고 있는데 알싸한 바람이 얼굴을 핥아주었다. ‘톡! 톡!’가로수 은행나무에서 샛노란 은행알갱이가 떨어져 내렸다. 계절이 오고 가는 걸 어찌 알고 대처하는지 자연은 신비롭기만 하다. 주기적으로 변화하는 계절 따라 새싹이 돋아나고 잎은 날로 무성해진다. 일사日射량이 줄어들고 일교차日較差가 커지면서 열매도 영글어간다. 그리고는 적당한 시기를 택해 지금처럼 영근 열매를 ‘톡! 톡!’털어내고 있는 것이다. 떨어진 열매는 자손을 번식시키는 수단으로도 또는 자신을 위한 거름으로도 쓰일 것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사람들에 의해 혹은 동물들에 의해 먹이로서의 역할도 수행해낸다.


파란하늘 그리고 눈부신 햇살, 알싸한 바람이 합세한 거리의 모퉁이를 돌고 돌아 걷고 있었다. 자박자박 걷는 발걸음에 흥이 붙어 경쾌했다. 억지로 만들어낸 도둑고양이 같은 외출에서 일상의 일탈을 만끽한다. 은행알갱이보다 더 샛노란 은행나무이파리도 바람결에 날려 하늘하늘 춤추었다. 내가 일상에서 일탈하듯 나뭇잎으로의 생을 마감하고 나무로부터 일탈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곧 닥칠 겨울을 위해 몸에 달고 있는 모든 걸 털어내는 나무가 기특하기만 하다. 지난봄부터 여름에 이르기까지 혼신을 다해 키워왔을 열매와 나뭇잎이 떨어져 내렸다. 알알이 실하게 열매를 맺느라 지독한 몸살을 앓았을 텐데도 이제 미련을 두지 않고 모두 내던지고 있는 것이다.


처절하게 절규하는 천둥번개와 화들짝 덮쳐오는 무더위와 맞서던 날들이 얼마였던가. 너울너울 주렁주렁 매달았던 나뭇잎과 열매들을 훌훌 털어내는 거리의 나무들을 보며 우리네 삶을 관조觀照한다. 지독한 욕심과 편향적인 아집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나를 비꼬며 손가락질하는 것만 같았다. 문득 부끄러워졌다. 어쩌자고 생각이 여기에 머문 것일까. 허허로운 웃음이 입가에 번져나갔다.


얼마를 걸었을까. 별 생각 없이 길을 가다가 우연을 가장해 백화점 앞에 멈춰 섰다. 오랫동안 뚱땅대며 공사를 하던 곳이었다. 보도블록이 깨져서 비가 오면 흙탕물이 튕기던 장소였는데 말끔하게 꽃단장을 마쳤다. 기나긴 몇 개월간의 불편에 종지부를 찍고 마침내 신장개업을 하는 날이었다. 축하한다는 말과 손님을 잘 모시겠다는 문구가 써진 플래카드가 바람에 펄럭였다. 가을운동회가 열리는 학교운동장에나 있음직한 만국기도 보였다. 겹겹이 늘어선 화환과 화분에는 보낸 사람들의 이름이 붙은 댕기가 제멋대로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백화점문이 열리면 먼저 들어가겠다고 줄지어 서있는 군중들의 열기가 들끓고 있었다. 소란함이 싫었지만 괜히 피할 까닭도 없었고 돌아가는 길은 멀었다. 복잡함도 어차피 더불어 사는 것이겠거니 여기고는 인파들을 헤집는다. 잔칫집다운 웅성거림에 기꺼이 박수를 쳐주었다.


길을 건너야했다. 길을 건너기 위해서는 지하도를 이용해야했고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그 계단을 타박타박 걷고 있을 때 몇 걸음 앞서 가던 사람하나가 발을 헛디뎌 굴렀다. 너무도 순식간의 일이라서 생각할 겨를 없이 내달려갔다. 지팡이를 짚고 가던 노인이었다. 몸을 굽혀 그 노인을 일으켜 세우는 동안 지나던 행인들이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힐끔거렸다. 세상인심이 야박하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누구하나 거들 생각도 않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무표정으로 일관하여 지나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친 곳은 없을까하는 염려로 노인의 몸을 살펴보았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별 외상外傷은 보이지 않았다. 노인을 일으켜 세워 부축하려드니 극구 사양하며 홀로 걷는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지만 과잉친절도 예의가 아닌 듯싶어 시야에서 사라지는 노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의 소란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시 지상으로 올라섰다. 지하에서 빠져나오니 햇빛에 반사된 케이블카가 남산 중턱에 걸려있었다. 은빛비늘을 번들거리며 유유히 유영遊泳하는 커다란 물고기가 연상되었다. 올라가고 내려오는 교차점에 선 두 대의 케이블카는 아름다웠고 눈부셨다. 교배 중이거나 뜨겁게 타오르다 멈춰버린 클라이맥스에 빠져있다는 환상에 젖어든다.


꼬맹이였던 시절에 처음 타봤던 그 케이블카였다. 남산이라는 곳도 처음 가봤으며 공중을 나는 전차도 신기했다. 아주 오래된 일이지만 케이블카를 보는 순간 당시의 일이 싱싱하게 살아나고 있었다. 40년도 훨씬 지난 햇볕 따스하던 어느 봄날이었다. 지금은 어딘지 그 장소가 불분명하지만 많은 층층계단을 땀 뻘뻘 흘려가며 올랐었다. 숨이 차올랐지만 견딜 만했고 참을 만했다. 그리고는 난생처음으로 은색비늘을 두른 저 케이블카를 탈 수 있었다. 밑을 살펴보았다. 온통 푸른 숲이었고 여기저기 희고 붉고 노란 꽃으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추측하건데 봄이었으므로 벚꽃과 진달래와 개나리가 만발하게 피어 신록과 어우러졌던 것 같다. 비록 5층 이하의 높지 않은 건물들이었겠지만 당시만 해도 어린 내가 보기에는 대단했다. 처음 타보는 케이블카에 올라 당돌하게도 세상구경을 태평하게 했으니 나도 어지간하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나마 행복이라 여기던 시절이 그때였던 것 같아 가슴이 미어진다.


내가 누려야 했던 행복도 아주 짧은 시간에 그 종말을 고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기분이 들떴던 그날이 아버지와 나들이했던 마지막 기억으로 남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도통 아버지의 흔적을 볼 수가 없었다. 모든 어른들이 그런 방식으로 살아간다고 터무니없이 믿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화가 나도 참고 울적해도 참았다. 억울한 일이지만 그 길만이 삶과 타협하는 길이었다. 흙탕물을 뒤집어쓰더라도 내 탓이고 진흙탕에 뒹굴어도 오직 내 탓이려니 여겼다. 그러다보니 슬퍼도 참아야한다는 공식 하나가 낡은 가훈처럼 가슴에 담겼다. 쌓여가는 모래알처럼 차츰차츰 퇴적층을 만들던 어두운 기억들. 훗날 시간이 흐르고 세상에 대해 눈을 뜨면서 숙명 혹은 운명이라 여겨도 보았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혹독하던 가난과 고독과 굶주림에 대한 기억은 깊은 상처가 되었다. 걷어내고 싶어도 걷어낼 수 없는 앙금이었다. 매 학년이 바뀔 때마다 손에 받아드는 ‘가정환경조사서’라는 게 있었다. 필수적으로 기입해야하는 아버지에 대한 신상명세는 나로 하여금 다시 슬픔에 짓눌리게 했다. 죽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함께 사는 것도 아닌 모호한 존재였기에 빈 칸으로 두기도 했지만 그건 절대로 용납되지 않았다. 선생님에게 불려가서는 시시콜콜하게 대답하기 싫어 묻는 말에 그냥 고개를 끄떡이기 일쑤였다. 체념하면 될 걸 용기가 없어 체념도 하지 못했다. 그 대신에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만 불화로처럼 날로 뜨거워갔다.


어린가슴에 불같은 증오를 심어주던 아버지도 세월을 이겨내지 못했다. 모진세월에 녹이 슬어버려 훌쩍 나이 팔순을 넘긴 것이다. 오늘에 이르러서야 그 아버지를 이따금씩 보게 된다. 만나더라도 별 감흥이 없다. 오순도순 정답게 나눌 이야기도 없고 애틋한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소식 끊고 살 때도 운명으로 여겼듯이 지금도 마찬가지다. 끊어낼 수없는 천륜이려니 생각한다. 그저 떨쳐버릴 수없는 숙명이려니 여기며 식사를 하러간다. 평소의 습관대로 생각 없이 걷다보면 곁에 묵묵히 따라올 걸로 믿었던 아버지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뒤돌아서 오던 길을 쳐다보곤 했다. 아버지는 저만치 뒤쳐져서 내 꽁무니를 잡으려 잰걸음을 걷고 있었다. 삭이지 못한 미움으로 모르는 척 앞장서서 가려던 마음을 애써 붙잡는다.


조강지처와 자식들을 돌보지 않은 시간들에 대한 미안함을 지니기나 한 걸까. 버린 가족들이 겪었을 혹독한 슬픔과 아픔과 가난과 굶주림에 대한 죄책감은 어떻고. 그때 그 시절에 어디선가 호위호식하며 아버지혼자 즐겼을 것 같은 상상에 분노의 마음이 들끓는다. 끝내 반성의 말을 꺼내지 않는 아버지가 끝 간 데 없이 밉고 싫었다. 이제 늙고 병들고 힘이 빠진 다음에야 자식의 연緣을 찾아 나선 아버지. 연약한 노년의 모습에서 짙은 그림자를 본다. 이럴 때면 속이 상하고 늘 가슴이 아팠다. 어릴 적부터 품어왔던 마음의 다짐-언젠가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면 내가 겪었던 고통의 수모를 그대로 안기리라- 이처럼 이를 악물고 다짐하던 결심이었건만 이젠 서서히 옅어만 간다. 오히려 연민의 정만 쌓여가고 있다. 아니라며 애써 도리질 쳐보았다. 그럴수록 나약한 노인의 껍데기를 두른 아버지가 눈에 밟혔다.


계단에서 넘어진 노인을 쫓아가 살폈던 건 불쑥 아버지를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닳아빠진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고 꼿꼿하게 두 발로 걷는 아버지가 다행이라 여기는 내가 꿈을 꾸는 것은 아닐 테지. 여태 지녔던 미움도 내가 짊어져야했던 업보였을까. 늦가을 오전이 유난히 청청靑靑한 하늘로 인해 유리알처럼 반짝거린다. 업보처럼 여겼던 아버지를 향한 미움을 걷어내고 용서할 때가 되었지 싶다. 남산 중턱에 걸려있는 케이블카를 보면서 짧았지만 아버지와 함께 누렸던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려본다. 가을하늘이 참 곱기도 하다.






작가프로필 


월간 스토리문학 수필부문 신인상(단감)

에세이 제2회 에세이스트콘테스트 대상 수상

(연꽃은 연못에만 피는 게 아니다)

월간 스토리문학 연재수필 가족시리즈 연재(2005)

월간 스토리문학 연재수필 파랑새는 있다 연재(2006)

월간 환경21 사색의 창 연재(2006)

수필드림팀의 테마수필 필진

저서: 에세이 작가 100인 총서의 1호 '작은 거인'외 다수

현 성광, 파인트리환경산업 임원으로 재직 중

아마추어 마라토너(하프 26회, 풀코스 5회)


수필드림팀의 테마수필 http://www.sd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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