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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은 사람

7154 2007. 9. 17. 19:19

외롭지 않은 사람



아랫녘의 태풍 ‘나리’ 소식이 무겁습니다.

고향이 아랫녘인데다 환우를 겪는 분들이 있어 마음이 쏠립니다. 지금은 내륙에서 태풍이 이울어졌다니 그나마 다행인데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적잖은 모양입니다. 재물이야 있다가도 없는 것이지만 가족을 잃은 분도 있어 안타깝습니다.

윗녘에도 지난 목요일 늦게부터 금요일까지 비가 패연히 쏟아졌습니다. 다음 날 딸의 혼사를 치러야 하는 혼주는 아스팔트 위로 따갑게 떨어지는 빗소리가 썩 달갑지 않았을 것입니다. 밤새 빗소리에 시름겨워 몸을 뒤척였을지 모르지요. 잔칫날 눈이 내리면 축복처럼, 비가 내리면 눈물처럼 느껴지는 사람의 심사가 참 유약한 것입니다. 정작 토요일이 되자, 서울 하늘의 구름은 오줌 마려운 아이마냥 바장거렸을 뿐 잘 참아주었습니다. 이것도 보이지 않는 세력의 축복이었을지 요.

세상을 살아오면서 불치병처럼 외로움을 앓아온 탓인지, 혼사가 끝나고 문득 저는 아비 없이 여식을 시집보낸 혼주가 ‘외롭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고생했다. 두 다리 뻗고 자겠다. 대견하다.’ 등등의 좋은 말이나 생각도 많았을 텐데 말입니다.

두어 달 전이던가요. 평소 자분자분 말도 잘하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한숨이 구만 구천 두였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 물어도 ‘그냥 그런 일이 좀 있다.’고 대답을 잘라 먹을 뿐 사연을 털어놓지 않더군요. 그래서 붓방아질 하듯 둔탁한 머리로 좌사우고(左思右考)하다가 설핏 속대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저간의 사정을 아는지라 제 마음도 덩달아 무겁고 아프기도 했습니다. 이후 갈수록 예민해진 친구는 전화를 툭툭 끊어먹기 일쑤여서 말을 건네기조차 조심스러웠습니다. 아무리 능력 없는 친구라 해도 이럴 때 속마음이라도 털어놓으면 좋으련만 적이 야속하다 싶더군요. 그렇다고 왜 그 가슴에피를 헤아리지 못하겠습니까.

갑작스럽다 할 정도로 찾아온 딸의 혼사, 직장에 얽매인 몸으로 딸내미 신접살림의 밥그릇

하나까지 손수 챙겨야 하는 입장이니 몸과 마음이 하 어수선 하였을까요. 예전에요. 두어 평 남짓한 교도소 독방 같은 고시원에서 생활을 할 때 다른 곳으로 한 번씩 옮기려면 왜 그리 진이 빠지던지 요. 하물며…. 

아무리 손바람 좋은 그녀라 해도 딸의 혼사를 준비하면서 아마 목젖이 내리도록 눈물을 삼켰을 것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가슴 따스한 분들이 안팎으로 찾아와 큰언니처럼, 큰오빠처럼, 친구나 동생처럼 곁에 서서 위로하고 격려하고 축하하며 다독여 준 모습을 보면서 ‘그녀가 외롭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먼저 한 것이지요.

멀리 외국에서조차 친자매처럼 마음을 써 준 지인들, 공사다망한데도 일손을 잠시 놓고 서울까지 상경한 선생님들, 가까운데서 손과 마음으로 혼주를 챙겨준 지인들, 참석하지는 못했어도 전화나 이메일로 아낌없이 축하를 보내준 분들의 다양한 마음 씀씀이를 보면서 저는 그동안 세상을 참 이악하게 살았구나 싶었답니다. 그래서 전혀 샘 없이 찾아와 알천 같은 마음을 내려놓은 그 순수를 저는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더구나 글을 쓰는 분들의 청안(靑眼)을 더욱 가까이 본받고 싶은 심정입니다.

남의 잔치에서 느낀 사람의 정이 살갑게 파고들어 그날 저의 전주(前酒)가 되었나 봅니다. 저는 몹시 취했습니다. 결국 시끄러운 노래방에서 편안하게 코를 골며 지인들의 노래에 장단을 맞추었지만 소파에 앉아 설리 울음을 터트린 혼주의 모습은 쉬 떠나지 않았습니다.

임영숙 수필가에게 지난 밤 전화를 했더니 약을 먹고 잠자리에 든다 하더군요. 아이들 어렸을 때 남편을 하늘로 보내고 두 딸을 가슴에 품어 온 세월이 만만치 않을 터인데 그나마 큰딸을 시집보냈으니 그 난 자리가 아득하겠지요. 한동안 난 자리의 후유증에 시달리겠지만 하루빨리 평정을 되찾아 기쁜 일상으로 되돌아오길 바랍니다. 애간장 밭으면서도 고운 결로 딸의 혼사 치러내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잠시 우체국엘 다녀왔습니다. 아랫녘의 우울한 소식에도 불구하고 이번 소나기는 서염의 찌꺼기를 씻어내 하늘을 한풀 파랗고 높게 올려놓았습니다. 은행잎처럼 물들지는 않더라도 플라타너스의 너른 이파리도 추색을 위해 말갛게 햇살을 받고 있었는데, 오늘 날씨는 여름 내내 마음을 동동거리다가 무거운 짐 하나를 풀어놓은 그녀의 심정 다름 아닐 겁니다. 잔서가 남아있긴 할 테지만요.

제 어미 남편감이라도 물색해 놓고 시집가던지 요. 내년이면 겨우 오십인데 엄마를 너무 일찍 할머니로 만들어 버릴 영경씨는, 살아가면서 아쉬운 게 더러 있더라도 그리스도의 향기로 극복하면서 날마다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여주리라고 봅니다. 자주 문안인사 드리는 것도 잊지 않겠지요.

아울러 이 가을에는 축복받은 이 혼사를 밑절미로 우리 테마수필에도 좋은 소식이 연이어 터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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