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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

7154 2007. 9. 29. 02:57
 

겨울비

    고현숙


그 남자는 그림을 그렸다. 정물을 그리고 풍경을 그리고 사람을 그렸다. 남자가 떠나던 날, 남자는 초상화 하나를 그 집에 남겨 놓았다.

“누굴 그린거야?”

“…….”

남자는 말이 없었다. 남자가 떠난 뒤 남자의 오래된 일기장에서 나는 그림이 그 남자, 혹은 그녀의 초상화였다는 것을 알았다. 가슴뼈가 하얗게 드러난 남자의 초상. 남자는 잊지 못하는 여자를 그리고 그 위에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덧칠해 그렸다. 여자의 모습과 남자의 모습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하나가 되어갔다. 그림이 완성되고 남자와 여자는 다시는 헤어지는 일이 없었다.


얼마 전 라디오를 통해 들은 이야기의 일부분이다. 얼핏 들은 이야기였고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비교적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여자를 생각하는 남자의 마음이 너무도 애틋하게 와 닿았기 때문이다. 얼마나 그리웠으면 가슴뼈가 드러날 정도였을까, 얼마나 함께 있고 싶었으면 그림에서라도 하나가 되고 싶었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남자에게 그녀의 존재가 그랬듯이 내게 지수의 존재가 그러했다. 뼈가 하얗게 드러날 정도의 고통과 그 위에 하나하나 새겨두고 싶을 만큼의 그리움과…….

첫 아이를 유산하고 힘들게 둘째를 낳았다. 남편과 나, 둘만 지내기로 했던 처음의 계획은 햇살처럼 환하고 따뜻한 아들에게 밀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셋째를 가졌다.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아들은 엄마의 유난한 입덧 탓에 제대로 사랑도 받아보지 못했다.

그 아이, 지수는 태어나기도 전에 오빠의 관심과 배려를 아낌없이 받은 아이다. 엄마가 셀 수도 없이 아들에게 동생이야기를 들려주었으니까. 밤마다 아빠가 들려주는 동화를 듣고 종일 엄마와 음악을 듣거나 오빠와 산책을 즐기던 아이가 태어나던 날은 세상이 온통 환하게 빛났다. 3월 하순의 창원거리는 곳곳에 환한 벚꽃이 피기 시작하고 바람이 불때마다 화르르 화르르 꽃잎이 날리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 아름다운 계절에, 그 아름다운 곳에서 나의 딸 지수가 태어났다.

병원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돌아오던 날, 어린 아들은 동생이 예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아직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금해야 하는 때임에도 동생을 만지고 싶어 하는 아들에게 손가락이며 발가락이며 다 만져보게 했다. 태어나기도 전에 백가지가 넘는 이름을 지어놓고 그 중에 고르고 고른 이름을 갖고 태어난 지수는 모두에게 세상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안겨주었다.

작아서 부서질 것 같은 생명 하나가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주체할 수 없는 행복을 안겨주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모두가 지수의 탄생을 축하해 주었고 그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사랑 가득한 눈으로 지켜봐 주었다. 조그마한 입으로 젖을 빨 때, 하품을 할 때, 앙증맞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무언가를 잡으려 할 때, 날씬한 다리를 쭉쭉 뻗으며 키 늘이기를 할 때, 음악소리에 잠이 깨어 주위를 두리번거릴 때, 잠이 와서 눈을 비벼댈 때, 한 순간도 놓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행복은 갖고 싶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다린다고 해서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전혀 예기치 않은 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생각지도 않은 모습으로 불쑥 나타나 주변을 환하게 밝힌다. 혹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조용히 스며들어 삶의 곳곳을 밝음과 따뜻함으로 흠뻑 적셔 놓는다. 그래서 어느 날 문득 발견한 기쁨의 크기는 배가 된다.

불행도 마찬가지다. 기다리지 않아도 그것은 초청하지 않은 손님처럼 찾아오고야 만다. 행복으로 반짝이는 순간들을 일순간 형체도 없이 일그러뜨린다. 그것은 어두워서 두렵고 날카로워서 아프다. 사정없이 파고들어 마음대로 헤집고 다닌다. 헤집을 때마다 찢긴 상처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 아물 수는 있으나 그 흔적은 결코,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던 지수가 갑자기 우는 횟수가 잦았다. 병원에서 퇴원할 당시 모든 검사를 마쳤고 그 이후로도 각종 검사며 필요한 모든 예방접종을 다 했던 터라 마음을 놓았던 탓일까. 울음이 심하던 날 바로 병원을 갔더라면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한 밤 중 자지러지게 우는 지수를 안고 몇 개의 병원을 거쳐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을 때는 이미 병균이 깊이 침투해 있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세균성 뇌막염’이라 했다. 찬 기운에 부들부들 떠는 아기의 척수에 무지막지한 크기의 주사기가 꽂히고 골수를 뽑아낼 때는 내 등에 비수가 꽂히듯 아픔이 온 몸을 타고 올랐다. 지수는 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그 작은 몸에 온갖 주사를 다 꽂은 채 면회도 금지되었다. 병실 복도에서 울기만 하는 나는 아이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오히려 남편의 아픔만 더 깊게 만들었다. 강해져야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병원에서 포기하라는 아이를 지키려면 울고만 있어서는 안 될 노릇이었다.

그러나 누가 막을 수 있으랴. 자신을 향하여 곧바로 달려오는 캄캄함을. 아무리 애를 써도 나를 표적으로 삼키려 드는 것을 피해 갈 수는 없다. 병원에서의 온갖 노력에도 지수는 도무지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뇌에까지 세균이 번져 더 이상 손 써볼 도리가 없게 되었다.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겨우 생명을 이어가는 아이를 차고 무서운 병원에서 죽게 할 수는 없었다. 길어봐야 한 시간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바로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준비해 두었던 옷과 이불을 꺼내서 아이에게 새 옷을 입히고 따뜻하게 이불로 감쌌다. 지수는 엄마 품에서 예쁜 새 옷을 입고 포근한 이불에 싸인 채 짧은 순간 세상에서의 소풍을 끝내고 제가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꽃비가 화려하게 날리던 봄날 내 품에 안겨 집으로 왔던 지수는 다시 봄, 그 꽃비를 맞으며 제가 왔던 곳으로 갔다. 한 줌의 재가 되어 벚꽃축제가 한창일 때 꽃잎처럼 날아갔다.

지금 지수는 내 곁에 없다. 그러나 한 순간도 나를 떠난 적이 없다. 그 아이의 밝고 따뜻한 기운은 순간순간 내 오만함을 일깨워서 제가 풀어놓은 밝음 속으로 끌어들인다.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리는 오빠의 모습을 오래 오래 바라본다. 퇴근하고 들어서는 아빠의 피곤에 지친 손을 살며시 잡아준다. 엄마의 시선을 빌어, 엄마의 손길을 통해서 함께 하고 있음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