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강 주제 구현과 실제
임병식/수필가
어느 수필가 치고 생각 없이 글을 쓰는 사람은 없다. 흔히 하는 말로 수필이 '무형식의 글이며 붓 가는 대로 쓰이는 작품'이라 하더라도 의도는 반드시 가지고 쓰게 마련인 것이다. 그렇다면, 작품 속에서 주제와 의미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사람들은 흔히 경치를 보면서 그 내면에 담긴 역사며 사연은 간과하는 수가 많다. 흘러가는 강물을 보면서도 마찬가지다. 그저 물이 흘러간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면 그것은 한갓 현상으로서 흐르는 강물일 뿐이다. 그렇지만 물의 의미, 즉 상선하수(上善下水)나 유수불쟁선(流水不爭先)같은 것을 생각하며 바라보면 이해의 폭이 넓어지며 느낌은 달라지는 것이다. 그리면 여기서 졸작을 바탕으로 주제와 의미문제를 짚어보기로 하자.
예화
아내의 염려
사람들은 동물적인 본성을 지니고 있어서인지 자기가 직접 나서서 싸우는 건 피하더라도 남의 싸움 구경하기는 즐겨한다. 소싸움, 개싸움, 닭싸움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 싸우는 광경도 재미있어 한다. 하나, 남의 일이니까 그렇지 당사자들은 얼마나 절박한 일이며 속상하는 일일 것인가. 하여 그 본질을 알아볼 겸 사전을 들춰 '싸움'에 대해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설명이 되어있다.
즉 '말이나 힘 또는 무기 따위로 이기려고 다투다, 장애나 곤란 따위를 극복하기 위하여 애쓰다. 무엇을 쟁취하거나 실현하기 위하여 힘쓰다.'등으로 되어있다. 한데 그 바탕에는 지지 않고 이기려는 심사가 깔려있고, 이 이기려는 마음에는 상대방을 '재주나 힘을 써서 거꾸러뜨리려는' 고약한 심술이 내포돼 있다. 그러므로 싸움구경은 불이 난 집에 불을 끄려는 당사자 마음과는 달리, 느긋하게 구경이나 하고 있는 것처럼 실로 악취미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싸움도 싸움 나름이며, 이후 어떻게 변질하는가에 따라 관점도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오늘 아침의 일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 일찍 간식을 준비하여 병실엘 들어서니 여자들의 다투는 소리가 왁자했다. 그러한 속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웅성대고 있었다. 한데, 언뜻 보니 싸우던 당사자 중 한 명이 집사람 곁에 다가가 얼굴을 바짝 디밀고서 무슨 말인가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순간 깜짝 놀라 황급히 다가섰다.
그리고는 막아서며 소리를 내질렀다.
"지금 환자에게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빨리 비키지 못해요?"
그러자 금방까지 싸우던 그 여인이 나의 항의에 슬그머니 꼬리를 뺐다. 하지만 기분이 영 언짢았다. 환자에게 시끄럽게 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상황에 무슨 수작이란 말인가. 도대체 병실에서 있기나 할 일인가. 나는 사태파악을 위하여 아내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아직도 말이 시원찮은 아내를 대신하여 옆 병상의 환자가 대답을 해주었다.
"어제 돈 찾은 일을 증인 서주라고 그런 답니다." 아니, 중증 중풍환자에게 증인을 서 달라……. 나는 어이가 없었다. 냅다 뺨을 한 대 후려 때리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을 가라앉히고서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걱정되어 다시 물었다. 다행히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젓는다. 천만다행으로 안도가 되었다.
그 일이라면 전후사정을 내가 조금 아는 터이다. 어제였는데, 아내를 운동시키고 있으려니까 바로 싸움을 한 당사자 한 명이 혼자서 병실을 구시렁거리며 다니더니 전일의 간병인에게 다음과 같은 전화를 했던 것이다. "자네 혹시 대치할머니가 가방에 든 돈 5만 원이 없어졌다고 하는데 알고 있는가." 묻고 있었다. 그러니까 상대방이 전혀 모르는 일이라는 대답을 하는 것 같았다.
한데, 그 전화를 받고 바로 전일의 간병인이 달려온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간병인이 소지품을 뒤진 끝에 잃어버렸다는 돈을 환자의 베갯잇 속에서 찾아냈던 것이다. 그러나 후번자가 그것을 믿으려 들지 않고 오히려 자기에게 덤터기 씌워 말하기를 자기를 간병인 직에서 물러나게 하려고 계획적으로 해코지한 거라고 우겨서 급기야 대두리 싸움이 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 말을 믿게 하려고 돈을 찾아냈던 간병인이 아내에게 증인이 되어주기를 강요했던 것이다. 나는 그 자초지종의 사정을 알고 나서 하나의 사실에 대해서는 이해를 하면서도 다른 일이 벌어진 대는 분개심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해 부분은 다른 것이 아니다. 옆 침상의 할머니는 약간 치매를 앓고 있는데, 곁에서 보면 노상 돈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전에 어떤 사람이 복권에 당첨되어 찾아온 돈이 걱정돼 농 속에 감추었다 독 안에 감추었다 하다가 건밤을 세웠다고 하더니, 이 할머니도 그렇데 돈을 간직한 게 못 미더워 베갯잇 속에 넣어두고는 그만 깜빡 잊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또 분개했다는 건, 말을 들으니 오해를 받은 간병인이 '언니가 좀 말을 해줘야 누명을 벗게 생겼으니 베갯잇 속에서 내가 찾은 걸 보았다고 말 좀 해 줘요.'했다는 거다. 안정을 취해야 하는 환자에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한데 다행히 아내는 침묵을 지켰다는 것이다. 병중에 있으면서도 싸움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지혜를 발휘한 행동이어서 그 말을 들으니 고마운 생각까지 들었다.
아니 진정 고마운 행동은 정작 다음의 태도에서 확인되었다. 내가 다투는 두 사람을 불러 세워 화해를 시키려고 하니까 아내가 눈을 끔벅이며 말렸던 것이다. 나는 그 심중을 이번에도 옆 병상의 환자의 입을 통해 정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치를 떨 듯하면서 하는 말이 "저 사람들 둘 다 똑같아요. 악다구니를 쓰는 걸 보니 상종 못할 사람들이에요. 괜히 관여했다간 큰 봉변당해요."했던 것이다.
아마도 아내는 내가 싸움에 말려들까 봐 걱정이 돼서 그리 한 것이 분명했다.
해설
이글에서 필자는 예화는 병실에서의 싸움을 끌어 왔지만 그 속에 담고자 하는 주제는 '사랑'을 담았다. 이 작품에서 사랑을 읽어내지 못했다면 결국 작품을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출처: 막 쓰는 수필, 잘 쓰는 수필(저자 임병식/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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