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에 숩은 예쁜 낱말

내가 생각하는 수필쓰기

7154 2007. 10. 12. 13:59

내가 생각하는 수필쓰기

      - *돌확을 보며

           임병식/수필가



요즘 들어 집에 있는 돌확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화분 옆에 둔 탓에 관엽식물에 가려져 있던 게 잎이 지고 나니 드러난 탓이다. 자그마한 게 볼수록 앙증맞기만 하다. 높이도 그리 높지 않고 우묵한 확도 겨우 물 한 바가지가 담길 정도의 소품이다. 그러나 보기에 따라서는 아주 크게 느껴진다. 느낄 탓인 것이다. 바탕은 푸른빛이 도는 화강암이다. 이 돌 확은 거실 소파에 앉아 시선을 다용도실 오른편으로 조금만 옮기면 맞닿는 위치에 놓여있다.

나는 주택에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낡은 냉장고와 세탁기, 하다못해 쥐 오줌이 묻은 병풍까지 버리고 왔지만, 이 무거운 돌확은 한사코 챙겨왔다. 그런 데는 워낙에 돌을 좋아하는 성벽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은근한 멋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두 가지 점에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외부는 정으로 툭툭 쳐서 거칠게 떼어냈고 확은 정교하게 다듬어 놓았다. 그러니까 치장보다는 실용성에 무게를 둔 것이다. 그렇지만 전체모양을 보면 균형이 잘 잡혀있고 그래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아마추어 솜씨는 아니다.

나는 이것을 15,6년 전에 업둥이로 들려놓았다. 쓰레기 종량제를 처음 시행하던 날인데, 우리집 길 건너 쓰레기 수집장에는 평소에 비해 엄청난 분량의 쓰레기가 쌓였다. 그냥 임의로 쓰레기를 버려오다가 돈을 주고 산 봉투에 넣어 버리지 않으면 벌금을 물게 된다는 말을 듣고 집집이 꺼내놓은 물건들 때문이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꽤 쓸만한 물건들이 많이 버려졌다. 이 쓰레기 더미에 맨 먼저 접근한 사람은 고물 수집상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의외로 동남아 국가에서 온 근로자들이었다. 그들은 언제 그걸 발견했는지 쓸만한 가재도구를 다투어 챙겨 가고 있었다.    

나는 그날의 정경을 잊지 못한다. 물론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돌확을 얻게 되어서도 그렇지만 그 쓰레기 더미에서 물건을 주워가던 낯선 모습이 그만큼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내가 살던 집은 유리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기에 편리한 구조인데, 우연히 보았더니 어느 피부색 검은 청년이 눈치를 살피며 쓰레기 더미에 접근을 하더니만 버려진 가스레인지를 집어들었다. 그러자 일행인 듯한 다른 두 명이 연이어 다가와 여타의 쓸만한 것들을 들고 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다소 겁먹은 표정이더니 이내 가져가도 되는 것을 알고는 그때부터는 여유까지 부리는 것이었다. 한데, 그런 모습이 흥미로워 집 밖을 나가보니 뜻밖에도 우리 집 문 앞에 이 돌확이 놓여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나왔으나 도로를 횡단하지 못하고 놓아둔 듯했다. 그래서 힘을 들이지 않고 들여놓게 된 것이다.

나는 이 돌확을 들여놓고  확 안에 물을 채워서는 가시연이나 들에 나가 개구리밥을 구해서 넣어두었다. 그러다가 지금은 그냥 물만 채워놓고 있는 상태다.

나는 이것을 보면서 이러저러한 생각으로 상념에 젖는다. 어느 장인이 만들었을까. 단단한 돌을 마치 자귀를 가지고 목재를 다듬듯 했는데, 누가 쓰리라고 생각하고 만든 것일까. 그리고 확 안은 그간 사용을 많이 하여 번들거리기조차 하는데 누가 무슨 용도로 사용을 했을까.

전에 시골집에서 쓰던 돌절구를 보면 크기도 훨씬 크려니와 확도 깊어서 보리를 찧고 떡을 만들 때 쓰기도 했는데 이것은 그보다는 훨씬 작은 소품이다.

나는 이 돌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세 사람이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만든 사람은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제작을 하고, 사용하는 사람은 그것에서 고추를 빻거나 마늘을 갈고, 나는 그 돌을 감상하는 입장에서 바라보는 기분인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런 상상 속에서 하나의 메시지가 떠오르는 것이다. 그것은 수필에 관한 것. 마땅히 수필 창작도 그렇듯  돌을 다듬는 한 과정이 아닐까. 원석을 가지고 정으로 툭툭 쪼아냈는데, 깨지면 그만 아닌가. 수필은 무엇을 붙여서 만들기보다는 이 돌확처럼 쪼아서 만드는 과정이 아닐까.

그리고 이 돌확에는 이를 사용했을 사람의 내력이 배인 것처럼, 수필에도 사람 사는 사연이 마땅히 배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러면서 글을 쓸 때는 지금 내가 요모조모 사연을 더듬어 보듯이 그렇게 응시하고  의미를 찾아 천착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요즘 이것을 바라보면서 그런 수필 쓰기를 많이 생각한다.



*돌확: 돌로 만든 조그만 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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