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에 숩은 예쁜 낱말

감동을 주는 수필 보기

7154 2007. 10. 10. 18:09
 

감동을 주는 수필 보기

          임병식/수필가



이번에는 필자가 읽고 감동을 받은 수필작품을 모아 그 주요부분만 여기에 소개해 보기로 한다.


<얼굴>

'…전략…'

 나는 일찍이 얼굴이 예쁘지 못해서 비관까지 한 적이 있었다. 여학교 일 학년 때라고 생각된다. 나하고 좋아 지내던 상급생 언니가 나를 통해서 알게 된 내 친구를 나보다 더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때 한꺼번에 두 가지를 잃어버렸다. 지금까지 언니처럼 믿고 의지해 오던 상급생 언니, 그리고 한시도 떨어질 수 없는 절친한 친구를 한꺼번에 잃은 섭섭한 마음에 사로잡혔다.

  나는 내 친구가 나보다 뛰어나게 예쁘기 때문에 사랑을 빼앗겼다는 자격지심으로 미국에 계신 아버지에게 "왜 나를 보기 싫게 낳아 주셨느냐?"라고 원망스러운 항의 편지를 보냈다. 그때 아버지는 어리석은 철부지에게 점잖게 일깨우는 회답을 해주셨던 기억이 새롭다. 회답의 내용이란, 대략 인간은 얼굴이 예쁜 것으로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보다 마음이 아름다워야 사람 노릇을 한다고 타이르는 말씀이었다. 그러나 외모가 예쁘고 미운 문제 때문에 고민하던 나에게 아버지의 하서(下書)가 위로가 될 리 만무하였다. ‘이하 생략'-조경희-


이렇듯 드러내기 쉽지 않은 개인 콤플렉스를 과감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신선한 감동을 준다고 하겠다.


<변소고>

'변소가 없는 집에서 사는 것처럼 따분한 생활도 없을 줄 안다. 변두리로만 돌다 보니 결국은 수재민 정착지라는 p동에 셋방을 얻었는데 변소가 없다. 변소하나 용납하지 못할 만큼 좁은 대지를 분배해 주었던 까닭에 공동변소를 이용하기 마련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먹어야 하는 일도 걱정이었지만 또 그것을 배설해야 하는 일도 고역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대개는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들려야 하는 곳이 변소인지라 그 무렵의 공중변소 주변은 그야말로 진풍경을 이룬다.

…중략……. 

그런데 근래에 나는 변비증이 생겨서 더욱 고난을 겪는다. 한 번씩 배변을 하려면 분만 쉽게 하는 여자보다도 고생을 한다. 그러자니 용변시간이 길 수밖에 없는데, 바깥에서는 빨리 나오라고 성급한 여자는 쾅쾅 치기까지 하는지라 일껏 배변하려던 것이 놀라서 그만 도로 들어가 버리는 수도 있었다.

…'후략' -박연구-


이런 생활의 아픔을 보여주는 것도 투철한 작가 정신이 없다면 쓰기 어려울 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글씨 많이 늘었냐>

…….전략…….

통 털어 십여 년의 작품생활 경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게 밤새워 고민한 철학의 문제가 없는 까닭이다. 다만 내게 있는 것은 때때로 오셔서 명색이 작가부부인 아들 며느리의 서재를 기웃하시면서

"일감은 많으냐?"

하고 고매한 작가 업을 내재봉소나 뭐 그런 날품팔이의 일과 같이 취급하시는 시어머니와 요새 원고 쓸 게 많아 바쁘다는 며느리에게

"어, 그렇게 많이 쓰면 글씨가 퍽 늘겠구나."

라고 이번엔 소설 쓰는 일을 대서방 일로 취급하시는 학력전무의 시아버지가 계실 뿐이다…….'후략'-이순


얼마나 진솔한 글쓰기인가. 더 설명이 필요 없는 자기 벗기다.


<바둑>

'전략'

그로부터 두서너 달이 지났을까. 어느 날 나는 아내가 경영하는 바둑 집을 찾았다. 솔직하게 고백하면 몇 푼의 교통비를 얻어낼 수 있을까 해서였다. 마침 출입구에 들어섰을 때 아내는 손님 하나라도 놓칠세라 커피를 서비스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짓궂은 손님 하나가 커피를 대접하는 아내의 손을 어루만지며 뭐라 지껄이지 않는가. 순간 뛰어가 피우던 담뱃불을 그자의 손등에다 꺼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면서 나는 자리를 막차고 나와 버렸다…….‘이하 생략' -장백일


이글은 저자가 세칭 문인간첩단 사건으로 10개월 옥살이를 하고 나와 대학교수직을 박탈당하고 가족 생계를 위해 부인이 기원을 경영하던 때의 이야기다. 글을 쓰고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처럼 자기를 벗는 솔직한 자세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독자에게 감동을 주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보는 바대로 수필은 꾸미려 드는 데서 죽고  천의무봉한 상태로 진솔하게 자기를 드러낼 때 글이 살아남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수필다운 맛은 기실 여기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용한 글들은 수필쓰기의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블로거와 함께하는 테마수필가기 http://www.sdt.or.kr/

'국어사전에 숩은 예쁜 낱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생각하는 수필쓰기  (0) 2007.10.12
맛있는 어휘15  (0) 2007.10.12
맛있는 어휘14  (0) 2007.10.10
수필에 있어서 상상의 응용  (0) 2007.10.09
가난하세요?  (0) 2007.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