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에 숩은 예쁜 낱말

수필론-퇴고

7154 2007. 10. 19. 04:56

퇴고 

 임병식


글 쓰는 사람치고 작품을 퇴고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리고 퇴고(推敲)라는 말  또한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가 ‘僧堆月下門’이란 종장을 지어놓고 밀 ‘추(推)’로 할 것인가 두드릴 ‘퇴(堆)’로 할 것인가 고민하던 중에 지나가던 경윤(京尹)인 한유가 ‘堆’로 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생겨난 어휘라는 것도 모르는 문인은 없을 줄 안다.

한데, 어느 문학지에 실린 글을 보니 작품을 거의 고치지 않은 문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소설가 김동인 선생 부인이 전한 말인데, 작가는 얼마나 글을 빨리  짓던지, 글을 쓸 적에 보면 원고지 다음 장을 넘기는 소리가 마치 글을 읽을 때  책장을 넘기듯 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쓴 글을 거의 퇴고도 하지 않았단다. 또한 사람으로는 수필가 박연구 선생이 있는데, 이분도 자기 글쓰는 버릇을 이야기 하며 어느 지인에게  “짧은 수필작품 한편을 쓰면서  퇴고를 하느냐.”고 반문 하더라는 것이다.

 하기는 윤오영 선생 일화 중에도 그의 대표작이라 할 ‘염소’작품을 피천득 선생이 보는 앞에서 단숨에 쓰면서 그야말로 의미지재(倚馬之才)의 문재(文才)를 발휘 하더라는 말이 있고 보면 타고난 문필은 따로 있는가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문인들은  쓴 작품을 습관적으로 손을 본다. 글을 쓸 때는 이모저모를 생각하다가 자칫 문맥을 놓치거나 어느 부분은 과장하고 어느 부분을 빠뜨리는 경우도 생겨서 고치지 않으면 완성된 작품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퇴고를 하다보면 무슨 어휘가 걸리던지 하다못해 오탈자 하나라도 발견되기 마련인 것이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나 또한 글을 쓴 다음에는 반드시 퇴고의 수순을 밟게 된다. 먼저 순서는 문맥이 잘 통하는지, 첨삭부분은 없는지, 오탈자는 없는지를 살핀다. 이런 작업을 서너 번 반복하는데, 때에 따라서는 열 번 가까이도 손을 보는 수가 있다. 나는 이러한 퇴고버릇을 너무 지나친 게 아닐까 했는데, 어느 분의 퇴고소감을 쓴 글을 읽으니 그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분은 한 작품을 발표하기 전에 무려  27회를 퇴고했으며, 그것도 미진하게 생각되어 그 후로도 7회를  더하여 도합 34회나 거듭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작품을  읽으며 글이 신인 같지 않게 잘쓴다고 느꼈는데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를 보면 신인이라고 하여 결코 가볍게 대할 일이 아니었다. 그런 퇴고하는 자세를 보니 문득 경우는 다르지만 전에 들었던 어떤 이야기가 뇌리를 스쳤다.

이야기인 즉슨, 어느 날 나이 많은 농부가 길을 가다가 모판에 볍씨를 뿌리고 있는 한 소년을 보게 되었다. 그걸 보고 노인이,

“저 집 농사는 올해 파농하게 생겼군 쯧쯧” 혀를 찼다.

그러자  소년이  듣고는 댓구 했다. 

“노인께서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얼마나 씨앗을 많이 뿌려보았다고 그러십니까?”

이에 노인이,

“걱정이 돼서 혼자 했던 말이네. 내 칠십을 평생 살면서 오십년 넘게 씨를 뿌려왔지만 지금도 그 일이라면 자신이 없는데, 어린 사람이 오죽 하겠는가.”

하자, 소년은 정색을 하고 하나의 제안을 했다.

“그럼 누가 씨앗을 잘 뿌리는지 내기를 해볼까요.”

그리하여 두 사람은 마침내 씨 뿌리기를 겨루게 되었다.

그런데  결과는 소년이 훨씬 나았다. 노인이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 어른께선 오십년 동안을 씨를 뿌렸다고는 하나 기껏 오십 번 뿌렸겠지 만요. 저는

맨땅에다 금을 그어놓고 수 백 번도 더 연습했습니다.”하는 게 아닌가.

노인은 그야말로 피천득 선생의 글에 ‘새색시가 김장 서른 번만 담으면 할머니가 된다.’는 그런 시각인데 비해, 소년은 그만큼 연습을 많이 했던 것이다. 이렇듯 소년이 실습하듯  끈질기게 다듬는 사람의 글은 어디가 달라도 다를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그랬을까. 의외로 퇴고에 대해 전해오는 이야기가 많다. 러시아의 문장가 투르게네프는 글을 3개월 간격으로 퇴고를 했으며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200번이 넘게 고쳤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의 문호 구양수와 ‘적벽부’를 쓴 소동파의 방에서는 폐지가 한삼태기나 나왔다지 않는가. 대단한 자기 관리요, 엄격한 글쓰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런 걸 생각하면 꼭 일필휘지를 부러워할 것도, 자주 퇴고하는 걸  부끄럽게 생각할 일도 아닌 것 같다. 나는 전에 문예지에 작품을 투고해 놓고 수차 고쳐주기를 부탁한 적이 있어  부끄럽게 생각했는데, 폐를 끼친 일은 분명 반성할 일이나 그 퇴고행위 자체는 크게 험은 아니었지  싶다. 하지만 작품을 보내기 전에 좀 더 충실하게 퇴고하는 게 백번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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