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 `개구리 소년' 의 슬픔
머리가 하얀 다섯 명의 어르신들이 미리부터 법정 방청석에 자리를 잡았다.
오랜 시간 햇볕에 쬐어 검게 탄 얼굴과 손, 농사일을 막 끝내고 상경한 듯 점퍼 하나만 걸친 복장, 아직 흙이 채 털어지지 않은 신발.
초조하고 어두우면서도 `혹시나'하는 기대감이 베어나는 얼굴 표정.
2시가 조금 지나자 재판부가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이들의 눈은 일제히 재판부로 향했다. 이어지는 재판장의 "10월25일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선고부터 하겠습니다."는 말에 숨도 멈춘 채 두 손을 꼭 모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들은 곧바로 고개를 떨어뜨려야 했다.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이번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년, 아니 16년을 기다렸지만 법정을 빠져 나가는 이들의 마음은 온통 허탈감뿐이었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이젠 누구를 붙잡고 누구한테 이 억울함을 하소연해야 하나, 그저 답답한 마음뿐이었다.
1991년 대구 와룡산에서 5명의 자식들을 잃었지만 범인을 잡기는커녕 11년 6개월 만에 유골로 이들을 맞아야 했다.
그리고 유골 발굴 과정에서 경찰과 수차례 싸웠다. 당시 경찰이 곡괭이와 삽으로 현장을 함부로 파헤치는 장면을 잊으려야 잊을 수 없었다.
`경찰이 조금만 더 초동수사를 제대로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더했다. 그래서 2004년 8월 "경찰이 현장을 훼손에 범인을 찾아낼 기회를 잃어버렸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하지만 작년 1심에 이어 이날 2심도 모두 경찰의 손을 들어줬다. 큰돈도 원하지 않았다. 단지 경찰이 잘못한 부분을 인정받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허사였다.
경찰의 수사과정과 유골 발굴 과정에 위법한 사항이 없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16년 전 아들을 처음 잃어버렸을 때 유골로 다시 아들을 가슴에 품었을 때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경찰에 대한 원망, 아들을 찾기 위해 전국에 전단지를 뿌리고 다녀야 했든 순간순간들이 다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제는 대법원 판결 밖에 남지 않았다. 그동안 모았던 돈으로,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버텼는데 어깨만 처질뿐이다.
실종된 영규군의 아버지 김현도씨는 "억울하고 답답한 가슴, 어디 가서 한을 풀어야 하나"라며 한숨만 길게 내쉴 뿐이었다.
출처
http://news.media.daum.net/society/others/200710/25/yonhap/v1860867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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