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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판결문이 인용한 시

7154 2009. 7. 24. 14:31

재판부 판결문이 인용한 시

 

 벌써 1년 반 가까이 흘렀다. 지난해 5월 그녀의 유고 시집 「달빛을 건너간 새」(해드림출판사)가 나왔으니 어쩌면 유고 시집을 세상에 내놓은 이후 또 고행숙 시인을 까맣게 잊고 있었나 보다. 문득 그녀에게 미안한 생각이 앞선다. 어서 두 번째 시집도 만들어 주어야 하는데….

 

고행숙 시인, 그녀는 2008년 2월 15일 자신의 가게에서 두 명의 강도에게 목숨을 잃었다. 끔찍하고 안타깝기가 한도 끝도 없는 일이었다.

올해 3월 오마이 뉴스에서는 ‘판결문은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라는 제하의 기사를 뽑으며 그녀 이야기를 일부로 다루었다.

“판결 곳곳에서는 피해자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재판부의 심정이 느껴진다. 재판부는 ‘껍데기만 인간에 불과한 피고인들과는 달리, 피해자는 아프고 외롭고 힘겨웠던 날들을 이겨가며 치열한 삶을 살아가던 여류시인이었다.’고 평가했다. 판결문에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시를 인용하는 일은 흔치 않다. 하지만 재판부는 ‘힘들고 모호한 일상을 거부하고 치열한 삶을 살고자 했던 피해자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피해자가 생전에 지은 ‘확인되지 않는 하루’라는 시를 소개한다.”(오마이 뉴스 09.03.17)



 

 확인되지 않은 하루


확인되지 않는 하루가

수취인불명으로 찍혀

자꾸 문을 두드린다.


비늘을 겹겹이 둘러 입고

물고기처럼 위장하여

죽은 듯 호흡을 멈추어도

따돌릴 수 없어

받아 쥐고 말았다.


꼼짝없이 저당 잡힌 내가

무거운 깃털 하나 꽂은 채

닳고 닳은 세상에 이끼로 피면

수취인불명으로 날아든 너는

세월의 끝에 섞여갈 수 있겠지만

그럴 수 없다 나 또한

살아있음의 확인이 절실하기에


비늘을 벗어

네게 덤으로 얹어줄게

가라

영원이 잊힐 세상 밖으로.

-시집 「달빛을 건너간 새」(해드림 출판사) 중에서


피붙이가 아니면서 누군가 자신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죽어서도 행복한 일인데, 무심하게 나는 그동안 가엾은 그녀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불과 1년 전의 그녀를.


 


1)관련기사 http://www.dtnews24.com/news/articleView.html?idxno=56976


2)관련기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89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