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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녘, 4월의 물기둥

7154 2010. 4. 24. 10:13

 

 

윗녘, 4월의 물기둥

             _부활과 소멸


1.

잠이 덜 깬 몸으로 반라의 아카시아 숲을 오른다 산을 타는 사람들을 발기라도 시킬 듯 숲이 내솟는 기운이 등등하다 푸른 기운이 아닌 꽃기운이다 겨우내 꽁꽁 움츠렸던 숲은 따지기때를 지나 3월이 되자 서서히 흔들렸다 3월 내내 절정을 향해 흔들리던 숲은 4월 어느 날 하얀 정액을 쏟아냈다 사람들은 그 아래서 생명의 오르가즘을 즐겼다 눅눅한 흙의 숨소리를 들으며 산길 위의 나는 땅을 향해 몸을 열었다 이른 아침 꽃기운이 흥건하게 영육을 적신다 아직은 푸르뎅뎅한 숲속, 이슬 젖은 나비처럼 내려앉은 버드나무 눈엽들이 탈피를 하는 애벌레마냥 색색거린다 머잖아 푸른 잎이 매미처럼 울어댈 것이다.


2.

산등성이에서 바라본 숲 군데군데 산벚꽃들이 물기둥처럼 솟아 있었다 반라의 숲이 금세 뎅강 부러져 꺼질 듯하다 나는 산을 오래 타지 못한 채 서둘러 내려왔다 산 아래 마을에서는 벚꽃이 난분분히 흩날렸다 허망하게 하염없이 휘날렸다 어디선가 정체불명의 향기가 서해의 눈물처럼 징 솟아오른다 숫눈처럼 왔다가 묵은눈처럼 지는 목련도 발아래서 미안하게 밟혔다 잔인한 4월의 봄인가 하였는데 명자꽃이 홀로 붉었다 명자꽃을 향해 중얼거렸다 ‘초경처럼 설레는 명자야, 너는 좋겠구나.’ 그러자 명자도 서해의 그것처럼 붉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11년 전 오늘, 나도 붉은 눈물을 흘리며 형을 떠나보냈다.


                                                       2010년 4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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