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천과 한강 그리고 샛강 밤길 트레킹
밤공기가 차갑습니다. 두 해째 즐기는 안양천과 한강 그리고 샛강의 밤길 묵상 트레킹. 몇 달 만에 안양천을 걷고 있습니다. 신도림역의 도림천을 들머리로 해서, 안양천 하류를 따라 걷다가 한강 합수부에 이르러 다시 한강을 따라 걷다보면, 새벽에나 돌아올 것입니다.
달랑 묵주 하나 들고 밤새 걷는 이 묵상의 시간을 오랜만에 갖습니다. 안양천 잉어들의 푸드득거리는 소리가 천변 어둠을 깨뜨립니다. 물가를 걷다보면 잉어들이 혹은 물새들이 깜짝 깜짝 놀라게 하곤 합니다.
지금 마음먹기로는 한강 합수부에서 국회의사당까지 거슬러 올라가 샛강으로 들어선 다음, 63빌딩 있는 곳으로 나가, 마포대교, 다시 합수부, 안양천, 해드림출판사로 복귀할 예정입니다.
어둠이 평화입니다.
어둠이 평화라는 것은, 수없이 홀로 어둠을 탐미한 터라 자연스럽게 나오는 표현입니다. 안양천과 한강 그리고 샛강의 밤길 트레킹에서, 두려운 어둠을 포근한 평화로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그분에 대한 나의 사랑 때문입니다. 당신에 대한 사랑이 애틋하니 어둠 속 따스한 바람마저 나를 감싸는 그분의 품으로 느끼게 됩니다.
어떤 이유에서, 날마다 살아가는 일이 외롭습니다. 이성의 외로움이 아닌 제 삶이 외롭습니다. 그 외로움의 실체를 온전히 아신 그분인지라, 깊고 호젓한 강변의 어둠에 나를 맡기고 당신을 느끼는 것입니다.
천변의 불빛이 아름답습니다. 물속으로 쏟아져 내린 둔덕의 불빛들을 바람이나 잉어 떼나 오리들이 밤새 윤슬을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어둠과 불빛이 잠긴 안양천 물빛이 황홀하여 걷는 것은 아닙니다. 저 강변의 불빛을 비낀 어둠과 그 어둠 속에서 얻는 묵상과 평화가 황홀한 불빛보다 신비로워 걷는 것입니다.
멀리 도로변에서, 건물에서, 나무 사이로, 풀밭 사이로 어둠과 불빛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풍정이 자꾸 걸음을 멈추게 하고 스마트폰을 꺼내게 합니다. 오늘은 몇 장의 밤풍경 사진이 필요하긴 합니다. 어둠 속에서 수없이 펼쳐지는 풍정을 모두 스마트폰에 담으려는 욕심을 내다보면 오늘 밤 목적한 트레킹은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아직 저에겐 심미안이 부족합니다. 심미안이 탁월한 사람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풍정 가운데 뚜벅뚜벅 걸으면서 여유 있게 가려낼 줄 알겠지만, 심미안이 부족한 아마추어는 그저 사진 찍기 바쁜 사람처럼 허둥대느라 정작 담아야 할 아름다운 풍정도, 오늘 이 어둠속에서 얻어야 하는 중요한 것들도 다 놓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작은 불빛에도 쉽게 흔들리고 영혼을 빼앗기지 않도록 평소에도 심미안의 훈련이 필요하지 싶습니다.
아무리 당신을 향해 깨어 있어도, 밤길을 걷다보면 지금 현실에서 부딪치는 고민거리들이 유성처럼 어둠 속 영혼으로 떨어지곤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늘 붙들고 살아가야 하는 질곡은 완전히 떨쳐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세속의 고뇌와 번민이 마치 풀숲에 떨어져 있는 야광 물체 같습니다. 어둠 속을 걷다보면 문득 문득 나타나 번뇌와 고뇌의 빛을 발하기도 합니다.
안양천과 한강의 합수부, 여전히 건너편 하늘공원이 시커먼 고래처럼 떠 있습니다. 여기서 한강 하류로 갈까, 상류 쪽으로 걸어갈까 고민을 하는데 대부분은 상류 방향을 선택하게 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샛강이 그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어둠 속 한강 정취를 느끼려면 강 분위기가 좀 더 한적한 강서구 쪽으로 가야 합니다.
선유도 맞은편, 양화대교 선유카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자꾸 빛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한강변 불빛이 찬란하여 당신께 집중하지 못한 채 계속 마음을 빼앗기며 걸었던 것입니다. 신도림역에서 안양시 비산동으로 향하는, 안양천 상류 쪽으로 걸으면 천변 어둠이 깊다보니 그만큼 당신께 의탁하는 힘도 커지고 해서 더 집중을 할 수가 있긴 합니다. 무서움이 당신을 더 세게 붙들게 하는 것이지요.
양화대교의 선유카페는 처음 들렀습니다. 양화대교 위 버스정류장 옆에 차려 있는 선유카페, 몇 번이나 양화대교 아래를 지나면서 한번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보고 싶었지만 묵상하면서 걷는 길에 커피를 마신다는 것이 어쩐지 모순이 있어 보여 그냥 지나쳤었습니다. 나름대로 운치가 있는 이 다리 위 카페는 맞은편에도 또 하나가 있습니다.
카페에서 한강을 멀리 내려다봅니다. 당신께 좀 더 가까이 가려면 내 영혼의 불빛을 모두 끈 채 그분의 빛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내 빛이, 내 주변의 빛이 너무 강하면 여리디 여린 그분의 빛이 나에게 스며들 틈이 없을 것입니다.
이제 국회의사당 옆 샛강 길로 들어섭니다. 이 샛강의 길은 이 시각 홀로 걷기에는 좀 무섭습니다. 강변 좌우로 숲이 우거져 어둠 속에서는 도시와 고립된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 깊은 어둠 속에 나를 밀어 넣고 종종 걸었던 길입니다. 여기서 샛강이 끝나는 63빌딩까지는 당신께 더 집중하며 걸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직 당신께 의탁하며, 어둠의 평화를 즐기며 그리 걸을 것입니다. 마침 오늘은 달이 있습니다. 달 모양으로 봐서는 오늘이 음력 17일쯤 되어 보입니다. 보름달에서 약간 기울기는 하였지만 샛강 어두운 숲길을 아련하게 비춰줄 것입니다.
샛강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여의도 성모병원 때문입니다. 작년 어느 날, 우리 해드림출판사 사무실과 가까운 이 병원을 찾았다가 바로 앞으로 흐르는 샛강을 걸어보고는 홀딱 반해버렸습니다. “세상에!” 서울에 이처럼 원시적 공간과 강이 있었다니---. 샛강은 마치 강원도 비무장지대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거기는 한국전쟁 이후 60년 넘게 인적이 닿지 않은 곳이 수두룩하지요. 샛강은 아스팔트 도심의 오아시스였습니다.
낙엽이 끌리는 소리에 놀랍니다.
시멘트 길에 내 발걸음이 끌리는 소리, 군데군데 만들어진 나무 길에 끌리는 내 발걸음 소리에 화들짝, 화들짝 놀라게 되는 것은 누군가 나를 자꾸 따라온 듯한 느낌 때문입니다. 누군가 나를 따라오는 소리와 만나고, 앞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어둑서니와 만나고---. 혼자 걷다보면 샛강의 숲에서 매번 느끼는 두려움이기도 합니다.
여의교와 서울교 아래를 지나면 한겨울에도 잠든 노숙자를 만나곤 합니다. 강변에 설치된 화장실은 한설이 몰아치는 겨울에도 따스하기만 한데, 노숙자들은 그 바람 센 다리 아래서 잠이 들어 있습니다. 어떤 노숙자는 우산을 펴서 머리 맡 바람을 막기도 하고, 침낭 깊숙이 몸을 넣기도 하지만 또 어떤 노숙자는 오로지 신문에 의지해 잠이 들어 있기도 합니다. 왜 저들은 한데서 잠이 들어야 하는 삶일까. 허긴 저도 출판사가 풍전등화일 때는 노숙의 삶이 늘 눈앞에 어른거리기도 하였습니다. 노숙의 삶이 결코 나와 무관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때 체험하곤 하였습니다.
샛강을 비껴 선 거대한 성이 어둠 속에서 위용을 자랑합니다. 저 위풍당당한 아파트를 지나칠 때마다 노모 한 번 저런 곳에 모셔봤으면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자식들 뒷바라지를 위해 일찍이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온 노모에게 변변한 거처 한 번 마련해드리지 못한 죄스러움이 늘 따라다닙니다. 한 해를 더 살지, 두 해를 더 살지 모를 노모이기에 평생 한으로 남기 쉽겠지만, 이 거대한 성같은 아파트를 지나칠 때면 그런 생각이 슬프도록 솟구칩니다.
금방 노숙자를 지나쳐 왔으면서도 저 화려한 아파트를 꿈꾸는 것을 보면 사람의 욕심이 한도 끝도 없다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샛강 끝의 63빌딩을 돕니다.
널따란 한강이 펼쳐집니다. 서해안에서 밀물이 들었던지 강물 언저리 길이 젖어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나를 삼킬 듯한 시커먼 강물을 마주하며 잠시 섰습니다. 다소 두렵긴 해도 출렁이는 강물 소리가 정겹습니다.
해찰을 부리며 오긴 하였지만 몇 시간 동안 걸었습니다. 벌써 새벽 두 시가 다 되어 갑니다. 밤공기도 차갑고 시장도 하여 따뜻한 컵라면 하나 생각이 납니다. 원효대교를 지나 여의도 공원에 이르러 보니 24시 편의점이 보입니다.
배부름은 당신의 것이 아닌 모양입니다. 배고픔은 단순히 육신의 허기만 말하는 것이 아니지 싶습니다. 배가 고플 때면 영혼과 마음에서도 영적, 정신적 요기를 구하는 모양입니다. 육신이 허기져야 영혼과 마음도 영적 정신적 양식을 잘 받아들일 준비가 되는 모양입니다. 라면 하나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배가 부르니 그만 모든 것이 닫히고 맙니다. 더 걷는 것도, 그분께 더 가까이 가려는 것도, 어둠 속 평화의 위안도 모두 닫히고 맙니다. 여의도 공원에서 시작하여 다시 해드림출판사 사무실로 걸어 돌아가기에는 자신이 없습니다. 라면을 먹으니 피곤이 더 몰려오고, 밤공기도 더 차지고 해서 남은 길을 포기한 채 택시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영과 정신을 채우려면 몸도 함께 비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먼저 영과 정신을 채울 만큼 채운 후에야 몸을 채워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배를 채워버린 라면 한 그릇이 그만 영혼을 흐리게 하고 말았습니다. 마음이 멀어지니 당신도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어둠 같은 광야에서 예수님이 40일 동안 금식하는 이유를 깊이 깨달아야겠습니다.
그래도 오늘 밤길이 좋았습니다. 저녁 8시에 출발한 묵상 트레킹이 결국 새벽 3시에 끝이 났습니다. 사진도 찍고 잠깐씩 휴식하며 메모도 하느라 다른 때와는 좀 느슨한 트레킹이었습니다. 당신께 완전한 일치를 이루진 못하였어도 내 영의 감각으로 압니다. 어둠 속에서 순간순간 당신의 영이 나와 함께하였다는 것을 압니다.
또 다음을 기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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