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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단야’에 대하여

7154 2014. 12. 8. 08:14

가수 ‘단야’에 대하여

이재욱(승훈/해드림출판사 대표)

 

 

 

‘고향 사람’, 참 따뜻한 말이다. 슬픔조차도 그리움이 되고 마는 고향이다. 고향만큼 살아 숨 쉬는 정서도 드물다. 듣기만 해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그래 우리는 고향 사람이다.

고향의 정(情)은 고향 사람들의 가슴 가슴마다 크고 작은 모습으로 맞닿아 은류(隱流) 할 것이다. 인정주의로 가득한 이 나라에서 고향은 여전히 동질감의 생물이다.

 

달포 전, 모 중견기업체 대표의 에세이집 출간 상담을 한 바 있다. 그리고 어제 다시 만나 최종 출간 작업을 논의 하는데, 원고 추천사를 써준 저자 친구가 어서 원고를 해드림출판사에 넘기라고 종용하더란다. 출판사 사장이 자신과 고향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신뢰와 애정을 보낸 것이다.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출간을 미적거리다가 혹여 다른 출판사에 원고를 넘길까 하여 고향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그 마음 씀이 적어도 나에게는 감동이었다. 고향이란, 애향심이란 그런 모양이다.

 

대중가요 가수 ‘단야’, 어디서 얼핏 보니 ‘단야’는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이라는 뜻이란다. 정주동의 ‘단야(丹冶)’라는 대하역사소설이 있다. 백정 신분처럼 억압받는 민중의 삶을 그린 이 소설 속 단야는, 풀무질로 새파랗게 핀 대장간 화덕 숯불에 달구어진 무쇠, 즉 ‘마침내 오랜 통한의 녹을 벗는 강철’을 뜻한단다. 이렇든 저렇든 단야라는 예명에서 비장감이 느껴진다. 아마 그것은 뒤늦게 가수의 길로 들어선 열정의 표현일 것이다. 나도 ‘단야’이고 싶다. ‘마침내 오랜 통한의 녹을 벗는 강철’이고 싶다.

 

가수 단야는 내 고향 중학교 후배이다. 이전에는 그저 사이버 공간에서 먼발치로만 알다가 며칠 전 중학교 동문 송년 모임에서 직접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여리고 단아한 체구, 하지만 어딘지 순천만 바닷바람을 길들이는 갈대의 당찬 근성이 엿보이는 가수였다.

순천시 별량면, 이 지역 유일한 중학교가 별량중학교이다.

별량(別良)이라는 지명 유래는 사뭇 문학적이다. 별량이라는 이름에서 벌써 예술적 기운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별량에서 훌륭한 명인이 탄생할 모양이다. 나는 그 예술가가 단야이길 바란다. ‘별량’은 별량중학교 뒷산인 첨산(尖山)에서 연유하여 낭떠러지라는‘벼랑’의 한자 표기라는 설(첨산은 어머니처럼 학교를 치마폭에 안고 있다.), 첨산을 둘러싸고 양쪽으로 바닷물이 들어왔기 때문에 벼랑진 곳의 안쪽을 의미한다는 설, 바다를 접한 마을로서 바다의 옛말 ‘바랄’에서 연유되었다는 설, 첨산 밑까지 바다여서 가파른 곳의 나루를 뜻한다는 설(별나루), 뻘 안쪽에 있는 마을인 ‘뻘 안’의 한자 표기라는 설 등이 그것이다.

개펄은 부드럽고 어진 성정으로 무수한 생명을 키운다. 나는 이런 개펄 안쪽 마을이라는 마지막 의미에 마음이 간다.

 

단야가 살던 곳과 우리 동네는 건너뜸처럼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어릴 적 우리 마을에서 뵌 단야의 부모님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든 중학교든 등하굣길에는 기찻길 옆 단야의 집이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았다. 그곳 가까이에는 건널목이 있었다. 시골 열차는 건널목 저 멀리서 기다맣게 기적을 울렸다. 마을 앞을 달리는 기찻길에서 달밤이면 기적의 여운이 달을 흔들었다. 그러니 단야의 음색은 아주 어릴 적부터 무의식적으로 연단되고 있었을지 모른다. 자그마한 체구의 단전 깊은 곳에서 공명하는 듯한 가창력이 아련한 기적을 떠올리게 한다. 음색에서 느껴지는 풍부한 감성 또한 때마다 기적을 울리며 열차가 지나는 고향집에서 길러졌음 직하다.

 

순천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단야는 가수 연륜이 짧지만 실력은 이미 국영방송 데뷔로 검증된 가수이다.

타이틀곡인 [사랑한다고 말해요]를 비롯해 [미련], [약속해줘요], [시간이 지나면], CCM인 [나의 고백을 들으소서] 등의 노래를 온종일 들어보았다.

[사랑한다고 말해요]는 타이틀 곡답게 대중성이 느껴진다. 내 육신의 피톨이 음표처럼 톡톡 튀는 듯 경쾌하고, 5월의 풀잎 소리처럼 맑은 노래이지 싶다. 애틋한 서정이 밴 노래 [미련]은 댄스풍의 트로트 곡인 듯하다. 빠른 흐름이 곁들여져 난이도 높은 옥타브를 따라 쉼 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가창력이 돋보인다. 상당한 기교가 필요해 보이는, 그래서 적잖은 에너지와 호흡이 소화된 노래이다. [약속해줘요]는 느림의 미학을 떠올리게 한다. 느리게 느리게 파장되는 노래의 감정선에 애틋함이 깃들어 있다. 느려서 포근한 가운데 여성스러운 섬세함과 미성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내 영혼의 비감적인 정조(情調)와 친근한 탓일까. 개인적으로 가장 빠져드는 단야의 노래는 [시간 지나면]이다. 우리 삶에서 누구나 한번쯤 상흔이 있을 사랑과 이별, 그 정한을 노래한다.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들며, 슬픔이 윤슬처럼 일렁인다. 트로트의 가사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소재가 바로 사랑과 이별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결국 승부는 이 사랑과 이별에서 난다. 흔하고 상투적이면서도 미적 정조(情操)가 풍부한 까닭이다.

[시간 지나면]에는 단야의 가느다랗고 고음의 특별한 음색이 가미되어 있다. 감성과 감정이 진하게 느껴지는 노래로 드라마 삽입

곡하면 딱 어울릴 듯한 노래이기도 하다. 사랑과 이별을 지배하는 ‘시간’, 그 시간의 안타까움이 가슴을 시리게 한다.

나는 종교가 가톨릭이지만 개신교 CCM을 자주 듣는 편이다. 단야의 [나의 고백을 들으소서]는 CCM(현대적 기독교 음악)이다. 일부 신앙인들 처신이 일반인들 마음을 불편하게 해서 그렇지, 신앙은 인간의 영적 보물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하는 세 가지가 있다면 그 첫째가 신이요, 둘째가 자연이며, 셋째가 세상의 이치이다.

놀라운 것은 단야가 이 [나의 고백을 들으소서] 가사를 직접 썼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그저 그런 내용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 내용은 상당한 신앙적 체험 없이는 쓸 수 없다. 오랜 질곡을 겪으며 쌓인 회한을 당신께 고백하며 끝까지 의지하려는 크리스천의 독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노래이다. 모르긴 해도 참 많은 날 신앙적 눈물을 흘렸던 모양이다.

‘단야’라는 이름도 그렇고 ‘아쿠아마린’이라는 펜카페 이름도 그렇고, 단야는 이름 짓는 데도 일가견이 있어 보인다. 아쿠아마린은 물이라는 아쿠아, 바다라는 마린의 합성어인데 맑고 깨끗한 청색 보석이며, 행복 혹은 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안다.

 

가수 단야,

행복하고 지혜로운 삶이길 바라며, 맑고 깨끗한 청색처럼 빛나면서 ‘마침내 오랜 통한의 녹을 벗는 강철’로 거듭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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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fe.daum.net/QueenDan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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