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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있는 문자

7154 2007. 10. 10. 18:18

 

 



그림이 있는 문자

           강경자


  잘못 배달된 문자인 줄 알았었다. 󰡒��늦둥이 하나 키우실려우?󰡓��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가을 막바지에 겨울 초입이었다. 은근하게 히터가 돌아가던 사무실은 안온하고 평화스러웠다. 진동으로 돌려놓은 핸드폰에 다시 문자가 찍혔다. 󰡒��메시지 못 보셨어요?󰡓��그제야 헉 하니 가슴이 떨려왔다. 막내 남동생의 음울한 것으로도 모자랄 집채만 한 침묵이 핸드폰에 담겨 있는 것이 감지가 되었다. 대형사고? 순식간에 어머니의 얼굴이 오버랩 되어왔다. 마음은 바람을 만난 물결이 되었다.

 언제부턴가 형제들의 일은 무소식이 희소식이었다. 늘 무난했고 늘 그랬듯이 무난했어야 했다. 막내까지 결혼식을 끝냈으니 그것으로 어머니도 당신의 역할을 끝냈어야 했는데. 어쩌다 내게 전해져 오는 어머니의 물음은 늘 한가지다. 󰡒��막내는 어찌 지낸다니?󰡓��, 󰡒��그걸 내가 어찌 알아요? 󰡓��어머니는 하등의 이유 없이 내 발끈함을 받으신다. 퉁명스레 내뱉어져 곧바로 전라도 길을 가고 마는 내 심사. 울고 싶은데 울어라가 아니고 등 토닥거리며 󰡒��애쓴다 쉬어 가거라.󰡓��의 말로 저 홀로 풀이되는 어머니의 말소리에 나는 매번 두 다리를 뻗어 욱욱 거린다. 대신 내 마음을 벗어난 󰡐��말󰡑��이란 괴물은 철도간이역에서 먼 시선으로 보여지는 철길이다. 각도가 큰 철로를 휘어져 오면서도 휘지 않은 채 반듯하게 서서 사람을 태우고 다시 먼 시선을 두고 가는 철길이다.

어머니가 어찌 사는지 그리도 궁금한 어머니의 막내아들은 매주 토요일이면 손님 아닌 손님으로 내 집으로 온다. 그 때 더 이상 선택의 여지는 없었던 듯 남동생은 잠에 빠진 어린 것을 안고 내 집안으로 발길을 들였다. 잠에 빠진 채 집이 없어지고 집이 옮겨지고 집이 아닌 집이 된 것도 모르던 어린 조카의 눈은 맑았고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 󰡒��2년만, 그래 꼭 2년만이다.󰡓�� 나는 날선 칼로 도장을 새기듯이, 말뚝을 박듯이 그리 말했다. 󰡒��약속을 꼭 지켜. 알았지?󰡓�� 턱 밑까지 차오른 사람에 대한 분노가 머릿속의 통로를 차단시켰다. 턱하니 숨이 막혔고 그토록 쉽던 말들이 막혔다. 동생은 잘 걸어왔다고 자부한 삶의 길을 수정하여 다시 터 닦는 기간이 2년이면 될 것으로 여겼던 모양이다. 나도 그렇게 믿어졌다.

 2년은 거짓말처럼 지나갔다.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조카는 나를 엄마라고 불렀다. 세상에 눈을 뜨면서 처음 접한 움직이는 사물을 제 어미로 착각한다는 오리하고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고모라는 이유로 나는 오리엄마가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과 6학년이 된 내 아이들이 지나간 길을 조카 손을 붙잡고 어린이 집으로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갔다. 연어도 아니면서 제 살던 넓은 바다를 놔두고 좁은 물길을 거슬러 돌아가는 일은 억울하고 분했다. 피와 살을 나누어 가졌다는 지극히 인륜적인 문제를 떠나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밀쳐낼 만큼 독하지 못한 내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독했던들 마음이 편키는 했을까만 지금 지고 있는 짐만큼 가볍지는 않았을 터. 다니던 직장을 접고 나는 오리의 가시거리 안에서 맴돌았다. 살림과 직장일 그리고 나를 키우는 일에 사력을 기울이던 내가 가족과 형제라는 끈에 묶어져 세월을 낚는 자리로 몰려 있었다. 머리 검은 짐승하나 거두는 일이나 해보지는 않았지만 짐작컨대 세상을 낚는 일이나 하등 다를 바가 없겠다. 힘들었던 시간의 깨달음은 그렇게 늦게 왔다.

󰡒��이젠 네가 네 아들 키워라. 올해까지 만이고 내년에는 안 할란다. 󰡓��동생과 만나면 가끔 지나가는 바람처럼 내 속내를 드리운다. 동생은 군소리도 없이 󰡒��그래야지요.󰡓�� 말해 놓고선 󰡒��그럴께요.󰡓�� 단정적인 대답을 못한다. 󰡒��세월이 고무줄인감? 2년이래더니 6년이잖아.󰡓��󰡒��그러게요.󰡓�� 󰡒��이 세상의 절반은 여자고 절반은 남잔데 그래 너는 눈이 사시란 말이여? 안경까지 써서 남 없는 눈이 두 개나 더 있으면서.󰡓�� 어머니 말마따나 공부 박사 끝냈으니 이제 전공을 바꿔보지. 어머니 말투를 흉내 내며 󰡒��그래 그 박사 증은 여자 하나 네 편 만드는데 아무런 도움이 못되는 감?󰡓��󰡒��당연하지요.󰡓�� 󰡒��그럼 어디다 쓰는 거여?󰡓��󰡒��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머리에는 더 더욱 못 쓰고 아마 엿 장사도 안 가져갈 걸요?󰡓�� 󰡒��도체 도움이 안 되는구나, 도움이. 󰡓��

 세월이 만드는 건 사람만이 아니겠지. 사과 꽃이 진 자리엔 사과가 열리고, 감꽃이 진 자리엔 감이 열리듯이 조카도 서서히 오리털이 빠지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되어 세상으로나가더니 제 고집을 심하게 부리는 것을 보자면 더 많이 자라기 전에 조카가 내게 입혀놓은 오리털 파카도 벗고 싶다. 타인의 눈에 아무 일 없는 듯 살아온 만큼만 다시 살아진다면 좋겠다. 토요일 오후면 내 집에 와 일요일 밤에 제 집으로 돌아가는 동생을 바라보는 일은 아프다. 가끔씩 토요일엔 제 자식을 앞세우고 저희들 집으로도 깃드는데 그들이 가는 것을 보는 것도 아프고 내게 다시 돌아오는 것도 아프다. 6년이면 모난 자리도 마모되어 둥그렇게 될 것도 같은데, 어찌 저리도 못났을꼬. 상처가 커다래서 저 모양인가?

책을 사러 간다는 내 말을 듣고 동생이 조카를 데리고 동행했다. 청계천이 제 모습을 드러내기 전 중앙시장은 세상이 다 아는 만물상이었다. 처녀만 못 만들고 세상 것 다 만들었다더라 주워들었던 말을 떠올려 󰡒��안파는 거 없이 다 팔아, 세상에 없는 물건이 없어.󰡓�� 내 말을 듣고 동생이 말했다. 󰡒��그럼 엄마도 팔아? 엄마? 엄마가 물건이야? 물건이라면 있겠지만 마음이라면 아마 없을 걸? 󰡓�� 바보 같은 사람, 여즉 지 새끼 엄마를 찾느라 세월을 타고 있단 말인가. 제 여자를 찾아 엄마를 만들 생각은 안하고 엄마를 먼저 찾는다니 세상에 이런 어불성설이 또 있을까,

조카가 붙여놓은 엄마라는 이름을 쓰고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 가면 엄마들은 오월의 꽃 같다. 거기에 비하면 나는 세월이 내려앉은 엄마라는 이름을 빌려 쓴 종이꽃이다. 내 나이의 나는 어울리지만 초등학교 1학년의 교실에서는 어쩐지 어설퍼서 몸 둘 바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여즉 엄마 행세를 한 사람이 고모라드라 하는 편견이 조카에게 깃들까 봐 애써 감추느라 나는 어설픈 것이었다. 그래서 학교에 꼭 가봐야 하는 날에 어쩔 수 없이 미장원을 가는 일도 나는 아프고, 거울 앞에서 오랫동안 이 모양 저 모양을 부리다가 결국 얼룩소가 되는 내 모습을 보는 것도 아프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앞에 사람이 서 있기나 한 것처럼 동생에게 욕을 퍼붓는다. 못난 놈. 상흔 없는 상처에서 뿜어져 나오는 통증을 무통처럼 견뎌왔으나 세월을 불모삼아 견디는 것도 이제는 무리인 것 같다. 나는 나대로 조카에겐 고모로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내 계절을 찾을듯한데 내 계절을 찾은 들,  사물 인식이 빠르게 올 조카를 생각하자니 앞길이 첩첩산중에 오리무중이다.

조카가 100까지의 숫자 공부에 들어갔다. 부등식의 원리를 아직 터득하지는 못했을 터이나 이제는 가르쳐 봐야지. 오리엄마=고모. 고모=고모. 엄마=고모. 형의 엄마=고모. 그래도 엄마라면=오리엄마. 그리고 너는 백조가 되어라.

그때 잘못 온 문자겠지 한눈으로 흘리며 창밖으로 눈을 돌리자 건물 앞에 있던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뭇잎이 떨어지고 있었다.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이나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나 사심 없는 시간의 흐름이었다. 그런 시간 속으로 다시 갈 수는 없을까. 너무 깊이 들어와 내 속에 옹이처럼 박힌 상처. 이 상처에 나는 하등의 이유가 없으면서 이유가 있다.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말󰡑��의 깃발이 내 안에서 쉬지 않고 펄럭이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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