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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중의 불황 ‘책이 움직이질 않는다’

7154 2008. 6. 25. 08:19

불황 중의 불황 ‘책이 움직이질 않는다’

 -“출판사 종사 15년 만에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여러 출판사를 거친 한 출판사 주간이 털어놓은 불황의 늪은 외환위기(IMF) 시절과는 비교가 안 된다. 올해 초 종이 값이 오르고 이어 물가가 계속 올라도 출판계 사람들이 늘 푸념하듯 ‘단군 이래 처음’이라는 말을 가볍게 던지곤 했지만 이젠 다르다.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조마조마하다.

책이 아예 움직이질 않는 것이다. 틈새시장 공략이니, 이벤트, 마케팅 등 어느 것 하나 통하지 않는다.

출판시장은 일반적으로 6월 초부터 여름 시즌을 맞아 활기를 띠게 마련인데 오히려 모든 출판사의 매출이 30~60% 감소, 곤두박질하고 있다. 이에 따라 매출 200억원대부터 수십억원대 출판사그룹을 중심으로 인력 감축, 제작비 축소 등 구조조정이 잇따르고 있다.


월매출 20억원대인 김영사가 최근 30% 이상의 매출 감소로 인력 감축에 나선 것을 비롯해 해냄출판사 더난출판사 들녘 등에서 많게는 10명까지 인력을 줄였다.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꾸준히 나가던 책들까지 눈물을 머금고 절판시키는 일도 다반사다. 현재 종이 값은 올 초 대비 15% 오른 상태로, 가장 큰 경영 압박요인이다. 서점들도 경상비를 건지기 위해 반품 주기를 평소 3~6개월 정도로 잡던 것을 1~2개월로 줄였다. 아예 반품으로 출판사에 줘야 할 판매대금을 대체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출판사들은 새 책을 내놓기 무섭게 헌 책 아닌 헌 책을 받게 됐다고 하소연이다. 아예 대금 지급을 못 하는 서점도 생겼다.


24시간 돌아가던 인쇄소들도 사정이 달라졌다. 3교대는 옛말이고 하루 8시간만 돌리는 곳들이 많다.

한 출판사 직원은 “보통 책 편집이 완료된 후 필름을 출력해 제작까지 일주일, 양장일 경우엔 10일 정도를 잡는데 요즘엔 양장도 필름을 넘긴 지 2박3일이면 입고된다”면서 “제작물량이 현격하게 줄어 ‘급’제작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출판계 불황에 촛불시위가 불을 댕겼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책을 찾는 주요 독자층들이 거리로 나서고, 인터넷 서점들을 방문하기보다는 다음 아고라 사이트에 몰려가 책과 멀어졌다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거리시위로 대형 서점이 몰려 있는 도심의 접근성이 차단되면서 방문객들이 준 것도 요인이라는 것이다.


출판계 불황의 지표는 여기저기서 수치로 나타난다.

무엇보다 신간이 나가지 않는다. 현재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는 대부분의 책이 2007년에 출간된 구간 도서라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지출할 수 있는 돈이 일정할 경우 소비자들은 책 한 권을 사더라도 모험을 하기보다는 이미 검증된 책, 신뢰할 만한 책을 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또 어린이책이 베스트셀러의 목록에 올라오는 것도 한 지표다.

이런 외부적인 요인 외에 출판계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무엇보다 웅진 등 대기업 자본이 출판계에 유입되면서 출판시장이 자본독식시장으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판권, 마케팅, 광고 등 전 분야에서 자본의 싹쓸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최고가 판권의 대표격으로 불리는 ‘마시멜로 이야기’의 판권이 2억원 수준인 데 비해 최근 출간된 랜디 포시 교수의 ‘마지막 강의’는 6억3000만원으로 단박에 3배 가까이 올랐다. 웬만한 출판사로선 엄두를 못 내거나 도박을 하는 수밖에 없다. 온라인 서점 광고도 메이저 출판사가 두세 달분을 싹쓸이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장은수 민음사 사장은 “지금 출판계는 제작이나 판권, 마케팅 등 전 분야에 거품이 낀 게 사실”이라며 출판사들이 장기간 견딜 수 있는 고유의 킬러 콘텐츠를 갖고 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출판시장은 경제 불황의 촉수와도 같다. 주머니 사정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점에서 한국 경제 불황의 파장은 이제부터 시작이 아니냐는 불안감도 점차 커지고 있다.



출처

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8/06/24/200806240108.a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