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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힘도 힘이요 새 힘도 힘이다

7154 2008. 6. 30. 20:22

 

소 힘도 힘이요 새 힘도 힘이다

 

 

지난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 아침까지 6․10 항쟁 이후 최대 시위가 벌어져 시민이든 전경이든 수많은 부상자가 나왔다. 인터넷에서 뉴스를 검색하다 보니 한 여성이 또 전경들에게 둘러싸여 무참하게 짓밟히고 수없이 곤봉으로 얻어맞는 동영상이 급속하게 떠돌았다. 젊은 여성이어서 더욱 애잔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스물네 살의 평범한 회사원 장 모씨였다고 한다. 서울대학교 여대생이 전경의 군홧발에 무참히 짓밟힌 사건이 벌어진 지 한 달여 만이다. 그뿐만 아니라 서울시의회 골목에서 시위대를 무차별 진압하는 현장의 동영상도 보였다. 드러누운 시위대를 경찰이 밟고 올라서면서 장봉과 방패로 가격하는 장면이었다. 어느 언론에서는 전의경이 집단 폭행을 당했다는 기사도 나온다.

순하디 순한 소의 커다란 눈망울이 핏발서려 떠오른다. 나는 쇠고기를 자주 먹는 편이 아니다. 소주를 즐겨 마시다 보니 갈비탕이나 도가니탕 같은 음식을 가끔 안주 삼아 먹을 뿐이다. 그 가운데 곱창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미국산 쇠고기가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내가 먹은 음식 가운데는 분명 미국산 쇠고기도 있었다. 광우병 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지기 전까지는 솔직히 아무 생각 없이 먹은 셈이다.


1986년 광우병이 유럽에서 첫 발견된 이후 1996년 영국에서는 인간 광우병(vCJD)을 유발할 가능성을 발표하면서 8만여 마리의 소를 도살한다. 비틀거리거나 일어서지 못하는 소들이 당시 텔레비전 화면으로 비치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축산업의 쇠락은 물론 이요, 소뼈로 만든 화장품이나 소에서 추출한 약용 등도 타격을 입었다. 2003년 미국에서도 광우병이 발생하여 국내로의 LA갈비나 내장과 우족 그리고 꼬리뼈 등의 수입이 중단된 이래 4년 6개월여 만에 다시 들어온단다.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광우병은 당신이 창조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말라는 하나님의 경고인지도 모른다. 당시 유럽에서는 풀을 뜯으며 살아야 할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였으니 당연히 탈이 날 일이다. 그것도 도축하고 남은 소의 뼈와 내장 처리 비용이 비싸서 이를 갈아 사료로 만들어 먹인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며 동족의 시신을 먹은 소들은 체중이 늘어났고 우유도 더 많이 짜낼 수 있었다. 유럽연합 국가 가운데 오직 스웨덴만 동물사료가 비윤리적이라고 해서 먹이지 않았으며 광우병 발생도 없었단다. 한 번 몸살을 앓은 유럽연합 국가들은 이제 12개월령 이상의 소에서 광우병특정위험물질로 분류한 부위는 제거하여 폐기하며, 일본의 경우는 모든 소에서 광우병위험물질로 분류한 부위를 제거하여 소각한다는 것이다.


동물성 사료를 전면 금지한 유럽연합(EU)과는 달리 뒤늦게 사료 강화조치를 내놓은 미국은 동물성 사료를 소에게 먹여온 나라가 아닐까. 자기네들은 식용으로 사용하지 않는 부위를 우리 국민이 즐겨 먹는다는 이유로 이번에 고시한 수입위생조건에 포함하였다. 나는 여기서 몹시 자존심이 상한다. 마치 잡스런 부위를 우리가 해결해주는 기분이 든다. 내가 비록 배고픈 시절을 겪으며 버릴 것 없이 이것저것 습관적으로 다 먹으며 살았다 해도, 자기네는 먹을 수 없어 폐기처분하던 것을 반 강제로 떠맡기는 형국이니 배알이 뒤틀린다.

쇠고기 수입문제가 촛불 시위로 비화하기 전까지 사실 많은 사람은 ‘소는 버릴 곳이 없다.’는 인식으로 쇠고기 음식을 즐겼을지 모른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여 수입 중단 조치가 취해진 그 이전에야 수입 쇠고기를 아무 생각 없이 먹었다 해도 다시 수입을 재개하는 마당에 여러 사실을 안 이상 그리고 쇠고기 수입 부위가 이전보다 더욱 확대된 이상 이를 따져보지 아니할 수가 없다. 아무리 정부에서는 안전하다며 국민을 설득하지만, 세계적인 기업인 맥도널드도 자국의 쇠고기를 사용하지 않으며, 바로 엊그제 미국 현지에서 광우병특정위험물질이 발견된 쇠고기가 대량 리콜되는 사태가 발생하였고, 미국 소비자 단체에서는 '다우너'(아파서 제대로 일어나지도 걷지도 못하는 소)도 식용 도축을 금지하도록 항의를 하는 판이다. 더구나 이미 광우병특정위험물질 부위인 등뼈 등이 반입된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다. 지난 23일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에서 2003년에 이어 13번째 광우병에 걸린 소가 발견됐다. 캐나다는 2007년 5월 국제수역사무국(OIE)로 부터, 미국과 함께 광우병 위험통제국으로 지정되었으며 쇠고기 도축과 유통과정이 신뢰할 만하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캐나다 쇠고기 국내로 유입 가능-수입위생조건 10조)


광우병의 원인이 되는 프리온 단백질은 쇠고기에서 사람의 육안으로 식별할 수 없는 화학물질이다. 따라서 쇠고기 유통 전 과정에서 정교한 시스템이 필요하며 우리가 사육과정에서부터 임의적인 간섭이 아닌 어느 정도 필요적인 간섭이 있어야 하다고 본다. 우리는 소 곱창도 구워먹고, 소 피도 삶아먹고, 소 뼈도 뽀얗게 우러나오도록 고아먹는 식성을 지닌 터라 그만큼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역사와 면면이 함께해온 설렁탕이나 곰탕을 안 먹을 수는 없다.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라면 서민들 입장에서 왜 반대를 할까. 미국이 우리에게 수출하고자 하는 소의 월령과 부위는 유럽이나 일본에서 규제하는 범위를 훨씬 넘고 있다. 미국은 우리에게 소의 월령과 관계없이 대부분 부위의 쇠고기를 팔아먹을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소의 편도 및 소장 끝 부분, ‘30개월령 이상 된’ 소의 뇌· 눈· 척수(등뼈 안쪽)· 머리뼈· 등배신경절(척주에 달림?) 및 척주(꼬리뼈 등 일정 부위 제외)만 제외한다. 다시 말하면 일본이나 유럽에서 광우병특정위험물질로 지정해 식품은 물론 사료의 원료로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한 부위를 우리 국민이 먹을 수 있도록 허용해준 것이다. 내장 부위 전체, 30개월 미만의 머리뼈, 뇌, 척수, 등뼈, 등배신경절 등이 그것이다. 당분간 30개월령 이상 쇠고기는 교역을 하지 않기로 했지만 부칙의 ‘경과조치’가 끝나는 시점에서 이 역시 개방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고시하기 전의‘미국산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 수입위생조건’은 국내법적 효력이 없는 양국의 합의문에 불과해서 얼마든 폭넓은 재협상을 할 수 있었다고 본다. 이는 장관 고시를 해야 국제법 또는 국내법적 효력을 갖추기 때문이다. 국제 신뢰도 운운하지만 자국민의 신뢰를 먼저 얻지 못하면 국제 신뢰도는 무슨 소용인가. 더구나 거시적으로 보면 자국민의 건강권이나 행복추구권 같은 천부인권이 달린 문제이기도 하다.

반면 미국은 지난 2006년 3월 ‘30개월 미만의 뼈 없는 살코기’만 수출하기로 한국정부와 수입위생조건 협약을 맺은 후, 끈질기고 지속적인 협상을 통해 한국정부에게 이번과 같은 수입확대 결과를 얻어냈다. 그들이 흐뭇해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물론 추가협상을 하였다고는 하지만 검역주권을 본문이 아닌 부칙에 넣는 등 법 형식으로써도 어쩐지 불완전해 보인다. 내가 영미법계와는 다른 대륙법계에 익숙해서인지 모르겠으나  ‘알려줄 것이다, 중단할 것이다, 허용될 것이다, 중단시킬 것이다’처럼 ‘~할 것이다.’라고 표현한 법률문구도 모호하게 느껴진다. 특히 ‘수입 검역검사 및 규제 조치’ 규정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필요적 조항보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임의적 규정이 여럿 보여 찜찜한 마음이다. 개인 간 계약서를 작성해도 문구 하나 단서 조항 하나라도 서로 유리하도록 신경을 쓰는데 하물며 자국민의 권리가 직결된 국가와 국가 간이 아닌가.


무엇이 그리 급했을까.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은 이제 고시가 되어 법적 효력이 발생하였다. 훗날 지금의 이 조건을 우리 국민에게 더욱 유익하도록 개정을 하려면 지금 미국에게 내어준 이상의 엄청난 비용이 들지 모른다. IMF하면 어느 대통령이 불명예스럽게 떠오르듯 이명박 대통령 역시 역사적으로 자칫 쇠고기의 굴레를 떠안게 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시위가 격화되었다. 정부에서는 강경한 진압으로 촛불시위의 종지부를 찍겠다고 한다. 일부 극렬시위자를 가려낸다 하더라도 그러나 서슬 퍼런 독재권력 아래서 폭도 취급을 받으며 4․19와 부마항쟁 그리고 6․10항쟁과 광주항쟁을 겪은 국민의 내공을 가벼이 봐서는 안 된다. 소 힘도 힘이요 새 힘도 힘이다. 민주적인 국민의 힘은 깊이 보듬을 줄 아는 대통령이었으면 한다.

쇠고기 수입으로 인한 촛불시위는 우리나라 식탁문화를 철저하게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촛불시위를 이끌어온 대책위는 참여연대나 민변 또는 경실련 등으로 구성된 건강한 시민단체가 대부분이다. 서민 편에 서서 사회의 공기 역할을 해온 이들은 빨갱이도 아니요, 반미감정을 부추기는 세력도 아니다. 무슨 일 있을 때마다 무조건 반미감정으로 몰아가서는 한미 간의 틈을 더 벌려놓을 뿐이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국민 존엄을 선언하고 국가권력의 회개를 촉구하는 미사에 이은 비상 시국회의를 개최한단다. 우리나라 민주화의 상징적인 이 사제단이 광장으로 나온 이유를 깊이 새겨봤으면 한다. 나는 늘 허리띠 졸라매고 살아온 삶이라 배는 좀 고파도 괜찮다. 이명박 대통령이 존재함으로써 임기 내내 정신적으로 풍요로움을 느꼈으면 싶다.

우리 사회의 진정한 평화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