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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찾아서] 일·사람·책…내 삶의 ‘트라이앵글’/한승헌

7154 2009. 2. 25. 19:01

[길을찾아서] 일·사람·책…내 삶의 ‘트라이앵글’/한승헌

한승헌-산민의 ‘사랑방 증언’ 2

 

 

 

 

 » 1965년 검사직을 그만두고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던 무렵 변호사복을 입은 필자.(왼쪽) 60년대 후반 한 시국사건 재판장에서 변론을 하고 있는 30대 초반의 모습(오른쪽)이다.

 

 

변호사 - 이것이 나의 직업이자 나에 대한 호칭이다. 직분상 법조인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러나 본디 나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아나운서를 지망했다. 언론인을 꿈꾸었다. 하지만, 그런 소망은 거듭되는 낙방과 체념으로 사라졌다. 결국 법조인은 제4지망이었고, 마침내 나의 평생 직분이 거기에 담기게 되었다.

그 직업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수반한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그런 일반적 통념과는 달리 나는 험난한 길을 걸어야 했다. 조용한 선비로 살고 싶었던 나의 소망은 세상의 거친 광풍에 시달려야 했다.

‘나무는 가만히 있고 싶은데 바람이 놔두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고 했던가. 나는 법정만 드나들 수는 없었다. 모임과 운동 현장에서, 또는 섣부른 논객으로 소위 재야활동을 하다가 마침내 감옥까지 드나들게 되었다. 그것도 한 번으로 모자라 재수까지, 한 군데도 아닌 세 가지 감옥을 순례했다. 변호사 자격도 빼앗겼다. 언론에서는 ‘전 변호사’라 했다. 여러 해 뒤에 ‘전’(前)자가 떨어지고 다시 본업을 찾았다. 그리고 어쩌다가 감사원장 자리도 맡았다. 그만두고 나온 뒤에도 그 직함이 따라다녔다. ‘전 감사원장’-현직(변호사)을 놔두고 왜 전직을 갖다 붙일까? 세속의 눈으로는 벼슬이 앞서기 때문일까?

제법 의미 있고 중요한 직분들이 나를 가만히 놔두질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나름대로 전공분야도 생기고 10년 넘게 대학 강단에도 오르내렸다. 바쁘게 살았다.

“요즘은 좀 한가하십니까?” 이런 물음에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저야 조상 때부터 한가(韓哥) 아닙니까? 그런데도 한가(閑暇)하지가 못하네요.”

그 파란만장한 중에도 나에게는 세 가지 복이 있었다. 그중 첫째는 일복이었다. 둘째는 인복(사람복), 셋째가 책복이다.

먼저 일복 얘기를 하자면, 내가 일을 따라다니는지, 일이 나를 따라다니는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의지가 강해서 일을 많이 한다기보다는 마음이 약해서 일을 거절하지 못하는 탓이기도 하다. 엄두가 안 나는 일도 마지못해서 하고, 겁나고 무서운 일도 나중에 가책 받을까 봐서 외면하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살면서 터득한 이치도 많다. 그중 하나가, 이유 없는 고난은 있어도 의미 없는 고난은 없다는 것이었다. 고난은 인간을 주저앉히기도 하지만, 반대로 연단시키고 거듭나게도 한다.


  

» 한승헌 변호사

두 번째, 인덕 얘기를 할 차례다. 나는 학생시절부터 사회생활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다. 어려운 고비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직장이나 단체에서 함께 일한 이들도 대부분 심성이 좋았다. 한 시대를 이끌었다고도 할 지도급 어른들의 격려도 고마웠다. 함석헌 선생님께서는 <씨알의 소리> 원고 청탁서 여백에 “권력이 악독할수록 우리가 계속 써야지요”라고 친필로 써 보내주시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통치 아래 불법검열 무단삭제에 속이 상해서 원고를 안 쓰자 그렇게 독려를 하신 것이었다. 김재준 목사님께서는 캐나다에 사시면서 국내의 우리들에게 보낸 격려 편지에서 꼭 ‘지우’(志友)라는 호칭을 붙여 주셨다. 그만한 어른들의 격려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이었던가.

끝으로 책복 얘기를 잠깐 하겠다. 여기서 책복이란 내가 책(장서)이 많다는 뜻이 아니라, 여러 저자들로부터 기증본을 많이 받았다는 말이다. 내가 구속되었을 때 일본에서 서명운동을 벌인 연출가 가무라 다케오씨는 한글에 익숙한 지한파였다. 그런 그가 나에게 보낸 어느 해 연하장에 “새해 북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쓰여 있었다. ‘복’을 ‘북’으로 잘못 쓸 분이 아닌데 그런 실수를 한 것이다. 한데, 그것은 실수가 아니라 예언이었다. 그해엔 다른 해보다 엄청나게 많은 북(책)을 받았던 것이다. 어쨌든 나는 많은 분들의 저술을 기증받음으로 해서 공부도 늘고 깨달음도 깊어졌는가 하면, 그들을 흉내 내어 졸작이나마 꾸준히 글을 썼던 것이다. 그래서 책복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이런 복들이 나를 이끌어 주고 지탱해 주었다. 두루 감사할 따름이다.




출처: http://www.hani.co.kr/arti/SERIES/185/33119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