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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비상(飛翔)을 기원하며_ 한판암/경남대학교 교수

7154 2009. 3. 17. 18:27

무한한 비상(飛翔)을 기원하며

              한판암/경남대학교 교수


 


  지구촌에 전대미문의 경제위기가 매섭게 몰아쳐 만물이 소생하는 역동의 계절이 되었는데도 미증유의 좌절과 혼란은 언제 가실지 가늠키 어려운 봄 같지 않은 봄이다. 이 때문인지 우리의 문학계는 설 자리를 빼앗기고 벼랑 끝으로 내몰려 겨우 명줄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쇠락(衰落)의 징조로 나타난 현시적(顯示的) 특징일까. 이즈음 수필이 옹색한 처지로 전락하는 듯한 안쓰러운 현상이 여기저기서 숱하게 불거져 당혹스럽다.

  그 원연(遠緣)은 냉철한 자기 절제 기준이나 새로운 가치관을 바로 세우지 못하고 표류하며 퇴행을 거듭했던 아둔함 때문은 아닌지 맹성이 뒤따라야 할 무거운 화두이기도 하다. 그래도 하루가 다르게 척박해지는 문화적 토양으로 말미암아 수필에 대한 지혜로움이 유장하게 뻗어나지 못하고 눈앞에 보이는 서슬 시퍼런 단견(短見)의 기세에 잔뜩 주눅이 들어 무릎을 꿇는 꼴 같다는 설익은 생각이 지동지서(之東之西)하여 갈피를 잡기 어렵다.

  수필을 대하는 예(禮)가 상궤(常軌)를 벗어나기 일쑤여서 배알이 뒤틀렸고, 서자 취급을 하는 듯한 말투를 서슴없이 내뱉는 이들을 치받고 싶은 충동을 잠재우기 어려웠다. 타당한 이유를 바탕으로 날을 세운 예리한 비판은 발전의 밑거름이 된다. 하지만 대책 없는 폄훼나 비하성 생트집은 파멸을 재촉하는 화(禍)를 부른다. 칼이 요리를 할 때는 더 할 수 없이 유익한 문명의 이기(利器)지만, 함부로 휘두르면 치명적인 흉기로 돌변하는 이치와 일맥상통하기에 이르는 얘기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기존의 수필 전문지와 품격과 색깔을 달리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해왔음이 분명하다.

  절실한 오랜 꿈을 펼치려고 나라 안팎이 삼동(三冬)을 연상시킬 만큼 어려운 인고(忍苦)의 세월에 혼(魂) 불을 지폈다. 혼탁한 영(靈)을 정화하면서, 정신적 승화라는 염원을 바탕으로, 수필의 지평을 넓혀 샛별 같은 존재로 우뚝 설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을 ‘수필界’가 위대한 탄생을 한 것이다. 이 ‘수필界’ 호(號)를 망망대해를 향해 기치(旗幟)를 높이 들고 진수하는 역사적 순간의 증인으로서, 천지신명과 수필을 아끼는 제현(諸賢)에게 고하는 미쁜 마음씨를 어여삐 여겨 굽어 살피기를 간원 드린다.

  자고로 제왕이 나라를 세우는 건국은 억조창생(億兆蒼生)을 전제로 하듯이, ‘수필界’의 창간 또한 그 깊은 뜻과 궤(軌)를 같이하며 모든 이의 영원한 사랑을 갈구할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다른 사람의 눈에는 미욱하거나 하찮게 비칠지 모른다. 그러나 냉철한 지성의 열정과 뜻을 모았다. 수필이 올곧게 자리 매김하고 희망이 이루어져 문향(文香)이 온 누리를 뒤덮을 이상향으로 다가서는데 모자람이 없으리라. 그렇지만 보랏빛 꿈이 터무니없는 전도몽상(顚倒夢想)이 되지 않도록 방종의 나락에 빠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할 것이다.

  경제 논리가 지고지선으로 대접받는 세상에서 문학의 꿈은 기존 질서나 가치관의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전제조건으로 하는 터라 요원할지도 모른다. 어렵고 지난(至難)한 염원이기에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심정으로 온 힘을 다하면서, 천지신명(天地神明)과 일월성신(日月星辰)께 머리를 조아리며 엎드려 빌고 또 빌어 주고 싶다. 수필의 진정한 가치가 세세연년(歲歲年年) 빛을 발하고, 지향할 바른길을 계시하면서, ‘수필界’가 일취월장하여 문학계의 거목으로 우뚝 서게 해달라는 염원을 말이다. 아울러 애초부터 겨냥하던 뜻을 견지하고자 초발심(初發心)을 잃지 않고 올곧게 처신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바이다.

  ‘수필界’의 첫발은 크게 세인의 주목을 집중시키거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작은 걸음으로 투영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필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순수 영혼들의 정성을 씨줄과 날줄로 촘촘하게 엮어 새 생명으로 탄생시킨 희망둥이로서 그 전도(前途)는 송죽의 기개같이 청청(靑靑)하고 태양의 열정처럼 뜨겁고 영원히 빛나리라. 엄동설한에 살을 에는 듯한 찬물로 세수를 한 뒤에 정화수(井華水)를 떠놓고 전지전능한 신에게 치성(致誠)을 드리던 우리 어머니들의 거룩한 정성에 비견될 정도의 정갈한 마음과 절절한 염원을 모아 ‘수필界’의 양양한 장도(壯途)를 위해 경건하게 합장(合掌)한다.


기축년(己丑年) 조춘지절(早春之節) 영일(令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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