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별곡

형1

7154 2010. 6. 7. 11:39

형(兄)1.


다시는 눕지 못할 방을 뒤돌아볼 틈새도 없었다.

병세가 꽃물로 치달아 구급(救急)할 수 없는 사이렌을 울리며 억울한 새벽길을 나서서 형은 다시 병원으로 들어왔다. 몹쓸 암 선고를 받은 후 3년 즈음이다. 6개월 시한부 인생을 받았다가 이만큼이라도 늦춰졌으니 당신의 은총일까. 점점 시들어가는 연장이 아닌, 조금씩 피어나는 치유의 연장이어야 하리라, 제발.

3년 동안의 교만 앞에서, 선뜻 나서지 못해 벙어리 냉가슴 앓듯 당신을 향하는 마음이다. 하루같이 불안한 나날, 사형선고를 받아 언제 붙들릴지 모를 사람이 3년 동안 숨어 지내는 심정이었다.


급기야 염려하는 순간이 다가오고야 마는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당신을 찾아야 할 지 그저 답답하고 막막할 뿐이다. 달게 굴며 애원하는 단 한 마디의 말 ‘형을 살려 달라.’는, 아무리 내가 간사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그 외마디만 되뇌기에는 염치가 없어, 내 영혼 어딘가 숨어 박힌 감언미어(甘言美語)를 찾아보지만 그 간걸 이외는 당신을 향해 모두 자폐된 모양이다. 흠숭도 예의도 형식도 없이 무지한 절박과 무지한 바람만이 희망일 뿐, 당신과의 새로운 통교가 아직은 어눌한 처지다.

내가 아는 한 먼저 죄의 사함을 구하라 하였으나 떠오르는 죄, 아무 것도 없다. 지금껏 무슨 죄를 지었는지 기억조차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나와 내 가족 특히, 형이 지은 죄가 있다면 사하여 달라고 할 때나 당신께 찬양과 찬미를 되뇌다가도 어느 덧 내 영혼은 당신의 옷소매를 붙들며 절규로 흘러버린다.


이제는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우리 희망일 수 없으며, 세상 그 어떤 이도 형의 암세포를 거두지 못한

다. 오직 당신, 당신의 기적만이 가엾은 내 형의 빛이다. 눈만 뜨면 당신을 천박하도록 부르짖는다. 잠시도 한눈 팔 사이 없이 애걸하는 우리를 동정하시며 우리와 함께하시는 특은(特恩)을 소원하는 것이다. 전지전능한 당신. 하고자 하면 무엇이든 이루는 분 그래서 어떤 불치병도 치유할 수 있다는 그 분이 아닌가. 당신은 내 형의 영혼과 육체 구석구석을 애잔한 눈빛으로 탐찰(探察)하시리.


그의 육신 곳곳에서 새알처럼 불거져 오르는 악령의 씨앗들을 볼 때마다 내가 서 있는 공간이 진공상태가 된다. 몸 구석구석에서 집히는 멍울들이 숨 막히도록 두렵다. 멍울 위마다 떨리는 손으로 성호경을 긋는다. ‘저 무서운 씨앗들이 퍼져가는 것을 막으시며, 이미 싹틔운 죽음의 세포들은 하나씩 하나씩 당신의 빛으로 태우시리. 걷지도 못할 만큼 애처롭게 문드러진 뼈마디를 소생시켜 주시며 자꾸만 쇠잔해가는 영육에는 자비 어린 원기를 넣으시리.’

 

*적바림

1999년 형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형이 세상을 떠나기까지 뇌종양으로 받은 고통을 생각하면 지금도 내 살이 쌈박쌈박 베이는 기분입니다. 그때 이 땅에서 밴 고통이 여태껏 하늘에서도 남아 있으면 어쩌나 싶은 걱정을 합니다. 지난 병상일기를 꺼내 다시 정리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다시 정리하는 이 글 한 편 한 편은, 이 땅의 그것들이 하늘에서는 깨끗이 씻어져 우리는 감히 꿈꾸지 못할 하늘의 행복이 펼쳐지기를 바라는 나의 기도입니다. 나의 당신께 부복하여 바라는 기도입니다.

 


http://blog.daum.net/jlee5059/17938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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