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별곡

형(兄)3

7154 2010. 6. 11. 19:08

형(兄)3



……어쩐지 음울한 그곳, 그 병동은 창문의 불빛조차 끄먹거려 이쪽에서 훅 불면 꺼질 듯하다. 얼마 전 새벽 무렵, 복도를 서성거릴 때 바로 뒤편 호스피스 병동의 불 켜진 방이 내려다 보였다. 침대에 앉아 연방 고꾸라질 듯 몸을 구부리며 기침을 해대는 환자와 환자의 등을 두드려 주는 보호자의 뒷모습이 창문을 통해 비쳤다. 밤새 지칠 대로 지쳤을 그들의 처절한 잔영이 창문마다 역력히 묻어났다. 순간을 건너뛰는 삶과 죽음인데 왜 우리는 이토록 몸부림을 쳐야 하는가. 마지막 병동이자 죽음의 병동인 저 호스피스 병동이 내 영혼에서 자꾸만 희끗희끗 나부낀다. 형과 우리를 저 어두운 곳으로 내쫓지 아니 하사, 지금 이곳을 작은 부활의 병동으로 하시길, 제발 당신이여.


통증으로 선잠을 이루던 형이 나를 찾았다. 화장실 가자는 말에 어제의 일이 생각나 순간 긴장하였으나 나의 당신께서 지혜를 주신다. 형을 휠체어로 옮기는 대신 침대 자체를 끌고 복도의 빈 공간으로 가서 이동식 칸막이로 형 침대를 감쌌다. 축 늘어진 형의 육신을 거들어 용변기를 받쳐 누운 채 배변을 하게 한 것이다. 비닐장갑 낀 손으로 딱딱한 형의 변을 꺼내긴 하였으나, 어제처럼 장시간 사투를 벌릴 거란 걱정과는 달리 형은 짧은 시간 비교적 시원하게 배변을 마쳤다. 수십일 제대로 먹지 못해 장에 달라붙은 노폐물인 듯 시커멓고 단단한 그것을 보면서 나는 작은 위안을 얻는다. 형의 장이 아직 건강하다는 징조로 보였기 때문이다. 관장이 아닌 자연 배변을 하였으니 손에 묻은 그것조차 작은 은총이다.


진땀을 흘렸던 어제와는 달리 수월하게 형의 뒤처리를 해주고 침대를 밀어 병실로 돌아왔다. 이제는

화장실을 가겠다고 해도 걱정이 없다. 형 자신도 흐뭇한지 모처럼 얼굴이 환해 보인다. 내 가슴 역시 활짝 웃는다. 그러나 그 순간도 잠시 형은 또다시 지통(至痛)으로 뒤척이기 시작한다. 옆으로 돌아누울 때마다 낯꽃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다. 사래가 들려 심한 기침을 하느라 붉게 상기된 얼굴, 돌아누웠다 바로 누웠다, 자다 깨다를 힘겹게 반복하면서 악령의 씨앗들에게 뼈와 살을 파 먹히고 있다. 통증이 심하면 형은 잠시 눈을 뜬다. 습관적으로 팔다리를 주무르며 중얼중얼 나의 당신을 찾을 때면 금방 잠이 들었다가, 힘들어 주무르기를 멈추면 또 금방 깨어 간힘을 주며 신음을 토한다. 밤이면 통증이 잦아 밤새도록 시달리다가 낮에는 지쳐 쓰러져 잠으로 보내느라 뜨는 둥 마는 둥 하는 식사마저 제때 하지 못한다. 뼈만 앙상한 형의 팔다리를 만지면 낭떠러지의 지돌잇길을 돌아가는 심정이다. 형의 신음이 지금 몇 시간째 계속인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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