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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일기_그녀의 혀가 내 입 안을 뒤지다

7154 2011. 1. 27.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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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 에세이 29

그녀의 혀가 내 입 안을 뒤지다

 

 

 

  혀를 쭉 빼 보았다.

나는 그동안 혀에서 붉은색이 띨 때가 거의 없었다. 담배를 끊으니 혀의 색이 건강하게 붉어 보이고, 침침하던 시력도 회복되며 입술 색이 살아나는 듯하다. 금연을 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그 효과를 성급하게 셈하게 된다. 아마 금연의 날들이 훌쩍 지나기를 바라는 성급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금연을 막 시작하면서 어서 하루를 넘기고 싶어 잠들 시간이 아닌데도 일찍 잠들곤 하던 심정이나 같은 것이다.

 

나는 하루 평균 두 갑 반 정도 피웠다. 담배를 자주 피우는 사람이 담배를 참았다가 피울 때의 담배 맛은 그야말로 최고이다. 그러면 어느 정도 참았다가 피울 때가 가장 황홀한 맛이 날까. 전쟁터에서 군인이 죽어갈 때 마지막 한 대 피우는 담배맛이나, 사형수가 사형이 집행되기 전 피우는 담배맛은 착잡한 맛이지 황홀한 맛은 아닐 것 같다.

평소 나와 같은 흡연 습관이었다면, 일상에서 한 세 시간 참았다가 피우면 ‘꿀맛’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듯하다. 꼬박 하루 참았다가 피우면 ‘홍콩 간다’라는 표현처럼 황홀한 맛이 아닐까 싶다. 사흘 참았다가 피우는 담배는 현기증이 이는 맛으로, 아마 필로폰을 투약받는다면 그런 기분이 아닐까 싶다. 이런 맛 가운데 나는 ‘황홀한’ 맛을 상당한 기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즐긴 적이 있다.

 

아주 오래전 일이다. 토요일 오후가 되면 나는 대전으로 내려갔다. 성가대 활동을 하던 그녀는 주말이면 대전 K 교회에서 보내는 시간이 잦아졌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일을 지키려 애썼다. 그녀를 만나러 대전을 내려 다니면서 나는 고민거리 하나가 생겼다. 어느 날 그녀가 보내온 메일 한 통 때문인데, 사실은 그녀를 몹시 사랑해서 그녀가 원하는 것을 안 들어줄 수 없었다.

 

?많이 신경 써주며 아파해주는 당신, 거기다 좋아해 주고 사랑해 주기까지 분에 넘치게 받고 있어서 그냥 고맙고 좋고 그래요.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이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구…. 감사하게 생각해요. 내 표현이 부족할지라도 삐치거나 그러지 말아요. 표현 잘될 날이 있겠지라고 위로하던가. 나도 마찬가지지만 건강에 많이 신경 써야 하는 거 알죠? 담배 좀 줄였으면 정말 좋겠어요. 내 소원이 그런 유치한 것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전에 멋지게 끊어줬으면 해요. 무리한 요구 아닌 거 알죠? 나 옆에 오래 두고 싶으면 알아서 해요. 오늘 몸은 좀 어떤지, 잘까 봐 전화도 못하겠네. 보고 싶어요.?

 

내 고민은 다름 아닌 금연이었다.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여섯 달 담배를 끊었다가 형이 말기 암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다시 피운 담배였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그녀를 속여야 했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기 전까지 담배를 피우고 나서 ‘가글’을 한 병 사서 내려가는 동안 자주 입안을 헹구고 손도 씻어냈다.

 

대전역으로 마중을 나온 그녀는 내가 승용차를 타자마자 내 손에 코를 대거나 가슴에 얼굴을 깊이 파묻고 킁킁거렸다. 그리고 둘만 있는 공간에서는 내 입안에 혀를 넣고 장난스럽게 이리저리 굴려보다가 수상하다는 눈을 흘겼다. 그녀의 혀가 내 안에서 감미롭게 머무르는 한동안 짜릿하긴 하였으나 나는 적극적으로 공략을 하지 못한 채 죄지은 사람처럼 몸을 움츠렸다.

나는 그녀와 지내는 내내 담배를 피울 수가 없었다. 그것은 데이트가 아니라 고문이었다. 담배를 끊어보려고 시도를 하였으나 그럴수록 담배는 더 악착같이 당겼다. 그녀가 옆에 누워 있어도 머릿속에는 온통 담배 생각뿐이었다.

토요일 오후에 내려가 일요일이면 바로 올라오고 싶었으나 그녀는 나를 교회로 데려갔다. 예배가 끝나고, 그녀의 성가 연습이 끝나고서도 나는 올라올 수 없었다. 그녀가 행복해 하는 시간만큼 나는 온몸이 저려왔다. 월요일 새벽녘에야 그녀는 나를 대전역에서 풀어주었다. 나는 항상 그녀를 먼저 보냈다. 절대 역사 안에서 배웅을 못하게 하였다. 그녀의 차가 떠나는 것을 확인한 나는, 불 맞은 노루처럼 역사로 뛰어들어 와 허겁지겁 담배부터 찾았다. 그것은 황홀한 맛이라기보다는 짜릿한 전율이었다. 거푸 두 대를 피우고서야 속이 풀렸다.

 

어쩌면 그녀는 당시 내가 담배를 못 끊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몹시 예민한 감각을 지닌 그녀였기 때문이다. 다만,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담배를 안 피우니 모른 체 해주었을 것이다.

왜 혈기왕성한 그때는 금연을 못하였을까. 만일 지금처럼 금연할 수 있었다면 우린 훨씬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녀와 헤어졌을 때가 아팠을까 아니면 금단현상이 더 고통스러웠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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