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 에세이 28
칭찬 앞에서야 금연 실감이 나다
‘살아 있는 나무에도 곰팡이가 쓴다.’
산책길에서 문득 옆을 스치는 나무를 보면서 하는 생각이다.
내 앞에서 팔랑대는 바람 앞의 나비가 위태롭게 보인다.
폭우나 태풍이 닥치면 나비는 어디 피신하였다가 나타나는 것일까.
이전에도 한 번 꺼낸 이야기지만 담배를 안 피우니 이처럼 예전에는 무심코 놓쳤던 사물이나 생각들이 뜬금없이 보이거나 떠오르곤 한다. K 선생은 금연한 지 10년째라는데, 금연을 한 이후 세상의 또 다른 면이 새롭게 보인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어쩌다가 이른 아침, 숲 속 산책을 하면 나무들이 모두 코를 막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전날 퍼마신 술이며 쥐 잡듯 피워댄 담배 연기가 가득 절인 몸에서 숨차하며 내뿜는 숨이니 냄새가 작히나 지독할까. 스스로 상쾌한 숲을 오염시킨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이제는 어서 오르라며 환한 숲의 나뭇가지들이 손짓을 한다. 다만 술 냄새는 여전하다.
시골에서 잠시 머물던 어머니가 올라오셨다. 어머니는 단 며칠이라도 시골에서 머물다 올라오실 때면 그냥 빈손으로 오시는 법이 없다. 고향이 순천과 별교 인근이라 해산물이 풍부해 하다못해 문어 몇 마리라도 사오는 것이다. 어머니가 올라오시는 날은 평소 안 보이던 우린 조카들까지 모인다. 아이들은 싱싱한 해산물 맛을 보고, 어른들은 그 해산물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신다. 어제는 동생이 중국 출장 중이라 어머니와 둘이 술을 마셨다. 요즘 부쩍 술 마시는 일이 잦아져 걱정이다. 담배도 담배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니코틴과 알콜기 없는 맑은 아침을 바라기 때문이다. 똑같이 술을 마시고 자도 담배 피울 때보다는 훨씬 컨디션이 좋지만 역시 술은 술이다. 술 마시는 능력이 타고난 탓인지 내가 마시는 술이 어지간한 양이다.
술, 그것이 참 문제인데 요즘 술을 따라 일어나는 흡연 욕구는 이전과는 좀 다르다. 자고 일어나거나 식사중일 때 등 평소에는 흡연 욕구가 없는데 주로 기분이 우울하여 술을 마실 때 울뚝밸처럼 일떠선다. 어제도 술을 마신 후 사무실로 돌아와 홀로 있자니 그 욕구가 거침없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운동을 좀 더 성실하게 했다.
컨디션이 좀 안 좋은 게 꼭 술 탓만은 아닌 듯싶었다. 그동안 나무토막처럼 굳어버린 뼈들이며 근육을 조금씩 풀어주기 위해 매일 스트레칭을 하는데 그 충격의 여파가 쉬 가시지 않는다.
스트레칭과 유산소 운동 즉, 요가와 달리기가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 운동인지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내 몸이 나이 들수록 석고처럼 굳어 간다는 생각을 하면 무서운 일이다. 아직은 운동장 한 바퀴 반 뛰는데 머문다. 하지만 운동 안 할 때의 폐활량을 생각하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행복하다.
흡연 욕구보다 그 욕구가 생겼을 때 삭여야 하는 그 절망감이 더욱 괴롭다. 여전히 고통은 계속되고 그 고통을 겪을 때마다 외로움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차라리 담배 한 모금으로 모든 것을 달랬으면 싶은 것이다.
오후 늦게 김포 녹원 선생님댁에 다녀왔다.
벌써 선생님은 금연한지 5년이 흘렀다. 충무로 사무실에서 종종 뵐 때만 해도 담배와 술을 즐겨하신 선생님이다. 우리나라 시조 문단에 커다란 업적을 남기셨고 또한 고희 중반의 지금에도 창작을 멈추지 않는 열정을 지닌 분이다. 문학과 그림, 문학과 도예, 문학과 디지털(디카시), 디카 영상 안의 또 다른 세분화 즉 물방울 영상과 문학 등 끊임없는 예술 창조를 일흔 중반의 몸으로 밤새워 해나가는 분이다.
고희 무렵 담배를 끊어야 한다는 의사의 한마디를 듣고 바로 금연을 하였다. 아마 50년 세월을 피워오셨을 것이다. 선생님 곁에 서거나 선생님 댁을 들어가면 종종 담배 냄새가 났었다. 금연한 이후 사모님에 의하면 선생님도 헛손질을 무척하셨단다. 담배를 찾느라 호주머니를 더듬거리거나 손바닥으로 옷을 쓸어내리거나 방바닥을 더듬거렸다. 그동안 수 없이 선생님댁을 들랑거리면서 금연을 한 선생님 앞에서 나는 참 부끄러웠다. 나이 든 분도 강한 의지로 금연을 하는데 한참 젊은 내가 너무 무기력해 보였다.
선생님이 금연한 무렵 마침 선생님은 디지털 카메라 촬영에 서서히 몰입하던 때였다. 아마 사진을 찍으면서 흡연 욕구나 헛 손놀림을 이겨내셨을지 모른다.
계속 금연하기로 사모님과 손가락을 걸어 약속을 하였다. 선생님도 일찍 참 잘한 일이라며 칭찬을 해주셨다. 칭찬을 받으니 아이처럼 기뻤다. ‘아, 내가 지금 금연을 하고 있구나.’하는 실감이 그제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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