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키우는 손주 교육의 모범이자 자녀의 가정교육 지혜를 담은 한판암 교수의 [8년의 숨가쁜 동행], 해드림출판사에서 펴냈다.
할배와 철부지 손주는 ‘밀당'을 통해 정을 쌓아가고
한판암 교수의 어린 자녀 가정교육 에세이 [8년의 숨가쁜 동행]은, 영아 때부터 함께 살게 된 손주들을 대학교수인 할아버지의 연륜과 지혜로 부모보다 더 잘 키워가는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할아버지의 손주 사랑을 통해 가정에서 어린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교육적으로 어떻게 자라야 하는지 70여 편 에세이의 행간을 통해 깨닫게 한다.
순백한 영혼의 손주들이 맑은 눈으로 세상을 깨우쳐 가는 날갯짓 얘기이다. 저자에게는 한 살 차이의 두 손주 승주(昇周)와 유진(裕振)이가 있다. 이들은 사촌지간이다.
큰손주인 승주는 을유생(乙酉生)으로 할아버지보다 정확히 한 갑자(甲子) 뒤에 태어난 큰아들 소생이다. 제 부모가 그림 공부를 한답시고 파리에 머물다가 방학에 귀국했을 때 잉태했었다. 그 때문에 제 어미가 유학생활을 접고 국내에서 출산했다. 그리고 다섯 살 무렵까지 저자인 할아버지가 직간접적으로 돌보다가 그 이후로는 따로 살고 있다.
한편, 작은손주인 유진이는 정해생(丁亥生)으로 제 부모가 학업 중이던 캐나다 밴쿠버에서 태어난 지 달포 지날 무렵에 데리고 와서 여태까지 저저와 함께 기거하고 있다. 결국, 큰손주는 다섯 살까지, 작은손주는 일곱 살인 여태까지 할아버지인 저자 내외가 직접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그동안 손주들과 관련된 일이나 일상의 단면을 더덜이 없이 글로 정리한 내용이 이 책이다. 그런데 동거기간의 길고 짧음에 따라서 큰손주보다는 작은손주와 관련된 내용이 월등하게 많다.
저자 의사와 무관하게 손주를 기르며 겪은 기쁨과 어려움, 그리고 지혜를 담다
저자는 부모 역할을 대신하며 다양한 고뇌와 기쁨과 어려움을 동시에 겪는다. 애초 저자 의사와 무관하게 손주를 기르면서 얻은 순간순간의 느낌이나 유별난 체험을 있는 그대로 엮었다고는 하지만, 대학교수라는 직업상 남다른 손주의 가정교육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는 것이다.
아이 기르기는 소일거리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며 저자는 별다른 고민 없이 어리디 어린 손주들을 맡았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큰 오산이었던가를 깨닫는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멋모르고 자신의 두 아이를 키우던 경험이 되레 덫이 되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쓸데없는 가치관이나 얼치기 상식이 앞을 가로 막는 부작용이 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돌발하는 시련이나 시행착오와 맞닥뜨릴 때마다, 평소에 뜨악하게 지내던 젊은 부부에게 간절히 도움을 청하며 쓴 웃음을 짓기도 한 저자였다.
할아버지가 대학교수라고는 하지만 교육 전문가가 아니다. 하지만 손주와 함께 허둥대며 겪은 온갖 경험을 나름대로 지혜를 발휘하며 이를 기록한 것이다.
[8년의 숨가쁜 동행]은 저자처럼 준비 안 된 수많은 조부모가 손주를 맡아 기르며 겪게 마련인 어려움이나 시행착오를 덜어낼 지혜를 제공한다.
저자가 겪었던 생생한 경험을 온새미로 공유하면 손주를 키우는데, 혹은 아이의 가정교육을 시키는 데 수월찮은 보탬이 될 것이다. 평범한 손주를 기르고 있지만 긴 호흡의 관점에서 생각할 때 잃은 것보다 얻은 기쁨과 보람이 훨씬 컸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사전 검증된 내용, 유진이 SBS 텔레비전 스페셜에 출연하다
SBS 텔레비전에서 조부모가 손주나 손녀를 맡아 기르는 장단점을 짚어볼 시사·교양 다큐멘터리를 기획한 바 있다. 여기서 이 책의 주인공인 유진이가 모델로 소개되었다. 사흘 동안의 촬영기간 내내 PD들이 함께 동거하면서 24시간 밀착 취재를 하여 방송하였으니 이 책의 내용은 이미 검증된 바나 다름없다.
계곡의 암반 위로 흐르는 냇물이 깎고 또 깎아 만든 수많은 담(潭)을 통해 유속의 완급과 수량을 조절하며 흐르면서 소통하는 이치, 이런 자연의 섭리인 물길에 의해 생성된 여섯 단계의 담을 가상하여 이 책의 얼개를 엮었다.
상류 쪽 담에 수용된 글이 고유한 색깔과 역할을 하는 한편, 열두 작품이 하류 쪽 담으로 전해진다. 이렇게 전해진 정수는 이어지는 담에 수용되는 내용을 더욱 찰지고 찬연한 빛을 내는 도우미 역할을 한다. 이런 원리는 마지막 담에 이르기까지 반복되어 종국에는 전체 내용이 한 덩어리로 융합해서 묵시적일지라도 명백한 메시지를 나타낼 수 있도록 하였다.
맨 윗담에는 큰손주와 작은손주의 잉태와 탄생을 비롯해 영아시절의 사연을 위주로 선정해서 각각 ‘승주의 새벽누리’와 ‘유진이의 고고성’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세 번째부터 여섯 번째까지의 담에 수용되는 글의 내용이나 성격을 감안해서 ‘소란한 파랑새 둥지’, ‘깨우침과 터득의 날갯짓’, ‘천방지축의 널뛰기’, ‘밑절미와 울타리’라는 이름으로 구성하였다.
자상한 할아버지가 곁에 있어도 유진이 마음은 아프다
[일곱 살배기 손주가 ‘가슴이 아프다.’ 라는 말을 자주한다. 웃으며 귓등으로 흘리듯이 넘기는 척하지만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
표현인지 궁금할 뿐 아니라 때로는 나에게까지 아릿한 아픔을 안긴다. 그럴 경우 진정한 아이의 마음 상태를 알아보고 싶어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위로의 말을 건네며 그 이유가 뭔지 조곤조곤 물어보면 자기도 ‘왜 마음이 아픈지.’알 수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대답이다.
어제 일요일 초저녁이었다. 어울려 장난감 놀이를 하자는 제안을 해왔다. 그럼에도 못 들은 척 무시한 채 방에 들어와 컴퓨터 작업을 마치고 9시가 지나서 거실로 나왔다. 제 제안을 깡그리 무시했다고 길길이 불만을 토로해 얼마간 지시하는 대로 충실하게 따르며 놀았다. 조금 시간이 자나면서 심드렁하고 내 역할이 애매해져 그를 핑계로 소파에 걸터앉아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도둑고양이 모양으로 슬그머니 내 품으로 파고들며 ‘마음이 아프다.’고 울먹였다. 서둘러 보듬어 안고서 다독였다. 그때 녀석이 한마디 던졌다.
‘할아버지!’
‘나 말이야, 병원에 가야겠어.’
‘왜?’
‘내 마음을 꺼내서 아픈 곳을 수술해서 잘라내려고.’
참으로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힐 아이디어였다. 어떻게 병원에 가서 마음을 꺼내‘아픈 부분.’을 도려내는 수술을 통해서 치료를 한다는 기상천외한 묘책이 그 찰나에 떠올랐을까. 다양한 예를 들어가며 마음이 아픈 경우는 수술로 다스릴 수 없음을 이해시키려고 낑낑대며 엉뚱한 생각은 잘 못임을 이해시켜야했다. 그랬더니 내 손을 제 가슴에 갔다 댔다.
‘할아버지!’
‘내 가슴이 콩닥콩닥 뛰지.’
‘누구나 가슴은 뛰는데!’라고 말하며 녀석의 손을 끌어당겨 내 가슴에 댔다. 하지만 아이는 단호했다.
‘나도 알아!’
‘지금 내 가슴은 빨리 달렸을 때처럼 쿵쾅쿵쾅 뛰잖아!’
마음이 아프다고 끌탕을 치던 손주와 잠자리에 들었다. 나란히 누우며 옆 자리의 기색을 살폈더니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써 숨을 죽이며 훌쩍거리고 있었다.
‘손주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물었다.
‘왜 그러니?’
‘마음이 아파서.’
‘왜 아픈데?’
(앞서 거실에서 했던 질문을 되풀이 했다.)
‘왜 아픈지, 나도 몰라.’
깜깜한 잠자리에서 조용조용하지만 집요하게 캐물어 봐도 이유는 없으며 자기도 자기 마음을 모른다고 했다. 무단히 그냥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며 사탕발림을 해도 끝내 미궁을 벗어날 길이 없었다. 그래서 앞으로 ‘마음이 아플 때’는 혼자 끙끙 앓지 말고 곧바로 솔직하게 얘기하라고 다짐해 두었다. 그렇게 하면 언제든지 기분이 좋아지도록 도와주겠노라고 단단히 약속을 했다.](글 중에서)
할아버지 한판암 교수는,
수필가이며 테마수필 필진,「수필界」편집위원,「문예감성」수필부문 심사위원,「시와 늪」명예고문 등으로 문인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며 경남신문 객원 논설위원, 경남IT포럼 회장이기도 하다.
수필집으로 「우연」(해드림출판사 : 2009)「월영지의 숨결」(해드림출판사 : 2010) 「마음의 여울」(해드림출판사 : 2011) 「행복으로 초대」(해드림출판사 : 2012) 『절기와 습속 들춰보기』(해드림출판사 : 2013) 『8년의 숨가쁜 동행』 외 다수가 있으며, 칼럼집으로 『흔적과 여백』(해드림출판사 2011)이 있다.
현재, 경남대학교 공과대학 컴퓨터공학부 명예교수(경영학박사)이다.
한판암 저
면수 356쪽 | ISBN 979-11-5634-015-7 | 03810
| 값 12,000원 | 2014년 03월 17일 출간| 문학|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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