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보도자료★★

최순덕 에세이집 '사라예보의 붉은 강물' 일상성의 미학

7154 2019. 11. 7. 14:29

일상성의 미학, 서정성의 손맛을 느끼는 ‘사라예보의 붉은 강물’

최순덕 수필가는 어떤 삶을 살아내고 있을까. 그녀는 자연과 사회 환경 그리고 정신이라는 삼각의 동그란 고리체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누구보다도 일상성의 미학과 서정성의 손맛에 기대어 성찰의 삶을 살아간다고 여겨진다. 수필집을 내는 것 자체가 반성적 성찰의 결과로 보기 때문이다.




수필가는 자연의 한 산물이고 자연의 은혜에 의하여 오로지 생을 영위해 가고 있는 것이다. 살아가기 위하여 불가결한 공기, 물 ,태양, 에너지는 무료로 얻고 있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연의 환경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있다. 최순덕 버전으로 말하면 이 모두는 주님이 주신 것이다. 주님의 역사라는 사실은 수필의 곳곳에서 감지할 수 있다. 실천은 작심삼일에 그칠 수도 있으나 그 믿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믿음은 진리 조건의 하나이기에 중요하다. 자연환경의 영향도 종교 이상으로 삶에 중요하다. ‘사회’는 인간이 편리상 만들어 놓은 것인데 인류의 역사에서 말하면 자연 가운데서 후천적으로 만든 것으로서 ‘자연’에 인간 정신의 움직임이 가하여 곧 관습이 되고, 제도가 되고, 훌륭한 문화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 정신계는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가장 후세에 서서히 경험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수필은 의식의 발현이다

이제 필자의 의도는 드러난 셈이다. 수필 속에는 최순덕 작가의 여러 의식이 녹아있다. 자연, 사회제도, 인간의 본성이란 삼각 구도 속에서 버무려낸 세계에 대한 그녀의 인식이 글로 드러난 것이 바로 수필이다. 그래서 수필창작을 ‘그림자의 인격화’라고 하는 것이다. 최순덕은 긴 인생을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의 향상을 목표로 삼아 노력하는 삶을 지향한다. 자기희생을 근본으로 하고 소임을 빈틈없이 처리해 나가는 작가다. 누구보다도 좋은 수필을 쓰기 원한다. 수필의 문학 장르적 본질에 부응하는 수필을 쓰는 본격수필가이기에, 더욱 ‘수필다운 수필’을 쓰기 위해 의식적으로 일상성을 바탕으로 서정성을 도모한다.
‘수필은 인생의 표현이다’라는 것을 전제로 최순덕의 그림자 유형은, ‘일상성의 미학’, ‘기행수필의 멋’, ‘서정성과 손맛’, ‘관조의 넉넉함’으로 볼 수 있다.


길 위의 길, 일상성의 미학

최순덕에게 있어 삶은 창작과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이 말은 창작의 대상이 생활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수필가는 생활을 대상으로 하여 그 현상의 이면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생활로부터 벗어나 삶의 민활성을 되찾는다. 이는 창작을 통해서 진정한 삶에 대한 감각을 얻는다는 의미다. 원론적인 의미지만 수필은 한마디로 ‘인간구원’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그럴까. 시어머니가 제재로 많이 나온다. <특별한 인연>을 비롯하여 <마지막과 끝>, , <변화>, <배냇저고리>, <사자성어 유감>, <흔들리는 주방> 등, 1부에서는 어머니와 관련된 언급이 많다. 따라서 수필이라는 용기에 우리가 담아야 하는 것은 일상성의 발견인 것이다.

최순덕의 수필창작은 세상을 읽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수필은 개념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감각으로 꾸며지기 때문이다. 수필은 대체로 세상 읽기의 소산이다. 따라서 수필은 삶의 한 모습인 것이다. 일상성의 비의를 담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 최순덕의 글은 오히려 일상이 문학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흔들리는 주방>은 매식과 배달음식에 대한 신선한 놀라움이 눈길을 끈다. 남편이 먹어싶어하는 된장찌개를 하러 주방에 들어갔는데, 이미 거기에는 포장된 된장찌개가 있었던 것이다. 일상에서 느끼는 그녀의 솔직함은 수필을 매력적으로 읽히게 하는 힘이다. 그녀는 사회 현상이나 자연 현상, 그리고 개인적 체험 즉 삶의 체계 속에 내재한 여러 기억들을 현상학적으로 읽어낸다. 수필은 이러한 삶의 성찰을 통하여 일상적 삶 속으로 매몰되기 쉬운 본성적 감성을 찾아낸다. 따라서 최순덕의 수필은 삶과 문학이 상호 삼투되어 서로가 유리되지 않도록 실천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일상 경험의 성찰이 문학적 방식으로 표현됨으로써 일상과 문학의 통합이 바람직하게 전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