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기사스크랩

꽃이 되어 바람이 되어

7154 2007. 9. 30. 08:32
 

꽃이 되어 바람이 되어

                 김언홍



때아닌 팔월에 영산홍 꽃이 피었다.

죽은 줄만 알았던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고 낙엽 들던 이파리가 어느새 제 빛깔로 돌아와 나를 반긴다. 손길이 닿지 않는 그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만 같은 아이의 영혼인양 문득 다가와 웃고 있다.

수술을 받고 병원에 한동안 입원해 있던 제부가 퇴원을 하였다기에 찾아갔던 날이었다.

아파트 안으로 들어설 땐 미처 보지 못했던 작은 나무 한 그루가 문을 나설 때 보니 누렇게 말라붙은 잎사귀를 매달고 낡은 부댓자루 속에 흙덩어리와 함께 문앞에 버려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웬 나무를 이리도 말려 죽이는가 싶어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배웅하려고 뒤따라 나와 섰던 동생이 “우리가 버리려고 내 놓은 거야 언니, 한참 됐어 병원에 가 있느라고 미처 치우지를 못했어”하며 겸연쩍게 웃었다.

나무는 도심의 공원이나 한적한 외곽지역 도로변에 흔히 심어져 있는 화초 나무로 영산홍이었다. 봄이면 우리 집 화단에서도 무리를 지어 꽃을 피우는 터라 별로 관심을 끌 만한 나무도 아니었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나무는 내 시선을 끌어당겼다.

가지 하나를 툭 꺾어보았다. 물기는 이미 걷히고 없어도 파릇한 기운이 남아있는 것이 살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루를 집어드니, 죽은 나무를 무얼 하려고 가져가느냐고 남편이 손사래를 쳐가며 말렸다. 하지만, 못 들은 척 들고 내려와 차 트렁크에 실었다.

집으로 돌아와 옷도 갈아입지 않고 말라붙은 나무뿌리에 물을 흠뻑 뿌려준 뒤 뿌리가 상하지 않도록 구덩이를 넓게 파고는 나무를 심어주었다.

그리곤 아이에게 하듯 나무를 향하여 중얼거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이 전부란다. 이제부턴 네게 달렸어’라고.

아무 상관도 없는 나무를 보며 왜 떠난 아이가 갑자기 생각났을까.

물기 하나 없는 낡은 자루 안에서 죽어가던 나무는 차디찬 살얼음 물속을 헤어나려고 몸부림쳤을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였다.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던 아이. 무슨 말이라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아이와 나 사이에 있었더라면 하는 통한으로 내 가슴은 늘 고통스러웠으니까.  

날마다 물을 주며 나무를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기대를 저버린 듯 한 달이 다 돼가도록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를 않았다.

이내 장마가 찾아와 하늘에선 연일 비를 퍼붓기 시작하였다. 

매일 비가 내리니 화초에 물줄 일도 없어지자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심어놓은 나무에 대한 생각도 점차 멀어져갔다.

장마도  끝나고 나니 이내 무더위가 찾아왔다. 비 온 뒤에 내리쬐는 땡볕은 화단의 화초들뿐 아니라 잡초들까지도 무성히 키우며 번져나갔다.

 어느 날 한동안 무심했던 화단의 잡초를 솎아내려 들어서는데 풀숲 사이로 붉은 꽃송이가 언뜻 보였다. 무슨 꽃일까 싶어 다가가다가 나도 모르게 󰡐�어머나!󰡑� 하고 탄성을 질렀다.

죽은 줄만 알았던 나뭇가지에서 세 송이의 빨간 영산홍이 나를 보며 웃고 있지 않은가. 살아난 것만도 고마운 일인데 꽃까지 피우다니. 나무는 알고 있었던 것일까. 떠나간 아이를 살리고 싶었던 내 마음을, 그래서 더욱 나무가 살아나기를 바랬던 것을. 때 아닌 팔월에 나무는 보답이라도 하듯 꽃을 피웠으니 아이의 영혼이 꽃이 되어 찾아온 것은 아닌지.

오래오래 같이 살 거라며 투박한 내 손안으로 제 작고 여린 손을 디밀던 아이. 아이가 뛰놀던 너른 들판은 오늘도 변함없이 푸르건만 해맑은 웃음을 뿌리며 뛰어놀던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아카시아 작은 잎새 하나가 동그라미를 그리며 어깨에 내려앉는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카시아 나무 우듬지에 텅 빈 까치집이 주인도 잃은 채 동그마니 걸려있다. 모두 어디로 떠난 것일까. 빈 까치집의 적막함처럼 늘 내 가슴을 그리움에 젖게 만드는 아이.

바람에 일렁이는 벼이삭 사이로 가을이 달려오고 있다.

머지않아 낙엽이 날리면 나는 또 아이를 만나게 되리라.

때로는 새가 되어 때로는 들꽃이 되어 때로는 바람이 되어 달려오는 아이.

아이는 늘 그렇듯 다른 모습으로 나를 찾아온다.

영산홍이 웃는다. 아이의 두 뺨을 물들이던 홍조를 떠올리게 하며 빨갛게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