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에 숩은 예쁜 낱말

수필쓰기의 실제-서두의 예

7154 2007. 10. 4. 07:38

수필쓰기의 실제-서두의 예

          임병식/수필가



<예문>

고비 넘기기


흔히 말하는 '고비를 넘는다.', 혹은 '고비를 넘긴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먼저 극복이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지금 한참 시련을 겪는다는 의미도 연상이 된다. 그러면서 머지않아 한숨을 돌릴  때도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도 받는다.

밥을 먹다가 그만 생선가시가 목에 걸리고 말았다. 급히 먹은 밥도 아닌데 국그릇에 든 작은 생선가시를 보지 못한 것이다. 국물을 떠 넣고 오물거릴 때 조금은 거친 게 감지가 됐으나 괜찮겠지 하고 그대로 넘긴 게 탈이었다. 가시가 목안 깊숙이 박혀서 수저를 내려놓고 거실로 나와 수차례나 � � 해보는 데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방법을 바꾸어 어릴 적에 하던 대로 입안에 김치를 가득 몰아넣고 넘기니 그때서야 비로소 넘어간다.

나는 힘겹게 가시를 넘기면서 새삼스레 무엇을 '넘긴다.'라는 의미를 생각해보았다. 그러면서 잊히지 않은 두 가지를 떠올렸다. 첫 번째는 언젠가 TV를 본 티베트 고원 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다. 그들은 삶의 터에서 소금샘물을 이용하여 소금을 제조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걸 낙타 등에 싣고는 사흘을 걸어서 시장에 나가 내다 팔고 있었다. 숨이 턱에까지  차오르는 고개를 수없이 넘으면서 사는 생활이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고단해 보였다.

그리고 다음으로 생각나는 것은, 조금은 감상적인 '보릿고개'의 추억이다. 이 보릿고개는 부족한 양식으로 어찌어찌 한 겨울을 넘기긴 했으나 이듬해 장다리 꽃피는 때는 절량(絶糧)이 되어 어려움을 겪었다. 해서 사람들은 허기를 달래려고 산으로 들로 먹을거리를 찾아 나섰는데, 주로 쑥을 뜯거나 송기를 벗겼다. 처절한 생존투쟁이었다. 이런 봄날이면 사람들의 얼굴은 허기져서 하나같이 누렇게 뜨고 생기를 잃었다. 눈은  퀭하니 들어가고 입술은 부르텄다. 이즘에 많이 듣던 말이 있다. 그것은 누구네 집의 굴뚝에는 연기가 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식량이 떨어져 밥을 짓지 못한다는 말을 에둘러 한 표현법이었다.

한편으로 또 어른들로부터 많이 듣던 말이 남의 집에 놀러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어려운 형편에 밥이라도 신세지게  되면 여간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속담에도 '봄 손님은 호랑이보다도 무섭다'라고 했을 정도였을까. 그 고개가 험하고도 고단한 '보릿고개'였으니 심리적인 높이는 추풍령이나 대관령이 아니라, 히말리아 고봉과도 같았던 것이다.

이와는 달리 다분히 상징적인 고개라면 인생고개가 아닐까. 이 고개야말로 누구나 먹지 않으면 아니 되는 나이처럼 넘지 않을 수 없는 고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고통의 강도는 제마다 똑같지는 않다. 어떤 이는 맞닥뜨린 시련을 깨복쟁이 고뿔 치르듯 쉽게 넘기는가 하면  어떤 이는 그 무게에 짓눌려 죽을 고생을 하고 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사연도 가지가지다.  건강 때문에, 돈 때문에, 그리고 자식의 일로 속 끓이고 애를 태우며 힘겹게 보낸다.

생각해 보면 내가 힘겹게 넘던 고개는  60년대 말 군 생활을 할 적에 넘어다니던 빼찌고개였다. 이 고개는 강원도 춘성군에서 화천군에 걸쳐 있는데, 지금은 넓게 닦여졌겠지만 당시만 해도 위험하기로 명이 난 고개였다. 그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길을  넘을라치면 숨은 어느새 턱에 차고 다리는 팍팍해졌다.

나는 살아오면서 힘이 들 때면 늘 그 고개를 떠올린다. 그러한 이유는 '그런 험한 고개도 넘고 살았다.'라는 자기암시와 자신감을 얻고자 함이다. 그러면서 나는 지금 어려운 고비를 얼마만큼 헤쳐 온 것일까 하고 돌아본다. 병든 아내를 간호하며 보내온 6여 년 세월. 마라톤 경기에서 선수들은 대개 25Km 지점에서 극도의 피로감을 느낀다고 하는데, 나도 지금쯤 그 지점에 이르고 있는 건 아닐까. 

극도의 고비 길에 이르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것은 나를 지켜보고 있는 지인들이 더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전에, 당사자인 나는 정작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고 있는데, 한 지인으로부터 "저는 임 선생님을 생각하면 참 불행한 생각이 들어요."하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들으니 내가 코끝이 시큰해 졌다. 그렇지만 삶이란 그렇지 만도 않아서, 어떨 때는 내가 보람을 얻고 위로를 받을 때도 있다. 아픈 아내가 아니었으면 어찌 내가 작고 소소한 것에 신경이나 쓰겠는가.

나는 내게 안겨진 숙명을 걸머지고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은 앞도 잘 보이지 않은 험난한 길을 가고 있지만 어찌 정상이 나타나지 않겠는가. 땀 흘리면 넘다보면 어느덧 눈앞에 펼쳐진 빼찌고개, 그 정상의 고개처럼 나의 인생도 조금은 시원한 바람과 조망되는 풍광이 없을 것인가. 그날을 위해 나는 오늘도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갈 따름이다. (필자 졸작)




위의 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서두는 2, 3문장으로 그치는 게 바람직하다. 무슨 글을 쓰겠다는 암시에 그치고, 너무 길게 끌고 가지 말이야 한다. 너무 길게 끌면 글의 긴장감이 떨어지고 읽는 독자는  짜증을 내기  때문이다. 이를 지적한 운모촌선생님의 글을 잠깐 소개한다.

수필을 보고 느낀 글에 '전략 - 본문의 경우 책을 놓게 하는 것이 서두의 부분인데, 이를테면 계절에 관한 것일 때, 두어 문장이면 계절감각은 다 나타나서, 독자는 그것으로 충분히 유추(類推)확대가 돼, 계절에 관한 것은 다 말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도 필자는 혼자서 도취되어, 이미 앞서가 있는 독자를 뒤따라오면서 말하기에 열중이다. ‘다 알았으니 그만 하시오.’ 하는데도, 자꾸 뒤쫓아 오며 설명하는 격이어서 자연히 읽을 맛이 없다 -후략-'

새겨들을 부분이다.


출처: 막 쓰는 수필, 잘 쓰는 수필(저자 임병식/에세이)

      http://www.sd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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