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에 숩은 예쁜 낱말

기행수필 쓰기 예문

7154 2007. 10. 5. 02:51
 

기행수필 쓰기 예문

        임병식/수필가



<예문>

한여름에 떠난 문학기행


호기심을 안고 떠나는 여행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더구나 함께 동행한 일행이 같이 글을 쓰는  문인들이라면 더욱 마음이 설렐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른 아침 일어나 눈을 뜨니 날씨가 화창했다. 제법 소슬한 바람까지 불어와 그간 염중(炎中)에 시달린 심신을 잠시 잊게 해 준다. 그러나 한다하는 말복 날인데, 노염이 어찌 금방 가시랴 싶어 선글라스와 챙이 큰 모자를 준비하여 약속한 시청 앞으로 나가니 벌써 서둘러 나온 회원 상당수가 '한국문인협회 여수지부 여름 문학기행'이란 현수막을 단 버스에 혹은 오르고 혹은 밖에서 기다리면서 나중에 도착하는 일행들을 맞이하고 있다. 기다리는 모습들이 옷차림은 모두 하나같이 달라도 들뜬 표정들은 한결같다. 출발하기 전에 사무국장이 오늘 둘러볼 행선지를 소개한다. 아침 08:00에 출발하면 곧바로 고창읍성을 둘러보게 되며, 신재효의 고택과 들꽃 학습원, 그리고 전봉준장군의 생가와 고인돌군, 선운사와 질마재를 둘러볼 것이란다. 그곳 모두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낯선 곳이라 여간 기대가 되는 게 아니다.


먼저 정읍을 거쳐 고창 땅에 다다랐다. 유난스런 황토빛깔 땅이 우리를 반겨주고, 그 위에서 자라는 멋스러운 나무들이 눈에 안겨오기 시작했다. 문인목(文人木)형상을 하고 있는 소나무였다. 보기에 해송은 억세어 그다지 멋이 덜한데, 이곳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거의가 육송이어서 그런지 마치 허리 가녀린 여인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한눈에 보아도 곡선미가 두드러진다. 그런 나무를 일부러 골라서 가꾸고 있는 것 같다. 다음으로 눈에 띄는 건 고창 수박밭과 이색적인 산딸기 밭의 풍경이다.


마침내 고창읍성이다. 한데 뜻밖에 입구에서 담석놀이의 여인을 형상화해 놓은 조각품이  객을 맞아준다. 그 모습이 마치 매년 초파일이면 대장경판을 머리에 이고 소쇄(瀟灑)시키는 합천고을 여인들을 연상케 해준다. 동행한 문화유산해설가 유영란선생이 때맞추어 설명을 해주는데, 이 답석놀이는 성이 축성되던 때가 겨울철이어서 언 땅을 다지려 여인들을 동원해 밟도록 했던 게 유래가 됐다고 한다. 한편에 구역표지석이 보이는데, 옛날 로마시대 도로를 닦을 때에 구간의 책임을 주었다고 들었는데, 이곳 역시도 참여 고을 별로 책임을 나눠 맡겼던 듯 그런 흔적이 보인다. 성안은 민가가 없는 게 특이하고 용트림하는 노송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런가 하면 한편으로 전략전술을 읽게 하는 치(雉)가 눈길을 끌고, 말로만 들어온 '洋夷侵犯非戰則和'라는 대원군의 척화비가 있어 그의 막무가내의 고집을 대변해 주는 듯 답사자의 마음을 회오에 젖게 만든다.


이어서 둘러본 곳은 동리 신재효의 고택. 그러나 점심시간이 임박하여 옆에 있는 판소리기념관은 빼놓고 보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선생은 그전부터 전래되어온 광대소리를 정리하거나 새로 지어서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토끼타령, 적벽가, 가루지기타령 등 여섯 마당으로 정립시켰다 하는데, 그 재주가 비범함을 다시 느끼게 된다. 그런 사람이 살았던 집이어서인가, 고택 또한 초가이기는 해도 규모가 크고 당당하여 당시의 재력과 너른 오지랖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다음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는 고인돌 군을 들렸다. 당초 일정에서 약간 변경이 된 코스다. 고인돌을 보니 우선 그 규모의 크기에 놀라게 된다. 내가 사는 여수 오림동에 돌칼과 사냥하는 모습이 그려진 음각화 바위가 있어 고대인들의 생활상을 느껴 볼 수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고대인들이 집단을 이루고 산 숨결을 직접 느낄 수 있어 현장감이 두드러져 보인다. 당시에는 이렇다 할 장비도 없었는데, 어떻게 큰 바위들을 힘들게 옮겨와 무덤을 지었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새삼 느끼는 건 건 어느 시대 사람보다 제례의식이 투철하고 철저하게 하였음을 알 수 있는 점이라 하겠다.


설명문에 따르면 이런 집단의 고인돌 군은 세계에서도 그 유례가 없는 것으로, 영구히 보존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어쩜 이와 버금가는 미당선생의 문학적 업적이 한때의 친일 행적으로 인하여 빛을 잃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웠다. 찾아가는 날이 공교롭게도 8.15 광복절이어서 인지는 몰라도 그러한 아쉬운 마음은 문학관을 돌아보는 내내 가슴을 짓눌렀다. 고창군청의 배려에 값을 다 못하고 있는 것 같아 괜스레 내가 다 민망한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일제 강점기 자살결사대로 나선 조선인 의용군을 찬양하는 헌시를 지어 바치지 않았던들, 아니 나중에라도 진솔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통렬한 반성을 한 삶을 살았던들 이처럼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가 남긴 천여 편의 주옥같은 시들은 저 서구의 유명시인 헤르만헤세에 비견되는데, 시 따로 사람 따로 구별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인정이고, 민족에게 지은 죄업은 그대로 쌓여서 상처로 남아있는 것인가.

질마재를 넘으면서 '질마재 신화'를 읊조리노라니 그 따뜻한 고향 사랑과 사람 사랑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데, 어찌 분별을 못하고 욕된 일에 앞장을 섰을까. 후학으로서 한 가닥 바람이지만 그가 평생 짊어진 멍에도 이제는 내려놓았으니 그 시 정신만을 받아주었으면 싶은데, 그게 욕심이란 말인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문학관을 둘러보는 내내 아쉬움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직전에 거쳐 온 선운사 동구의 시비에서는 어디 한군데 욕됨이 있던가.


오늘의 문학기행은 대미를 장식한 말미가 너무나 아쉽고 안타깝다. 그나마 둘러보기로 한 전봉준장군의 생가 방문을 생략한 것은 여러모로 잘한 일인 것만 같다. 충절과 변절을 비교하는 꼴이 될 테이니 더욱 마음만 상할 게 아닌가. 귀로에 나는 피곤해서도 그랬지만, 여러 가지 착잡한 생각에 선운사입구의 막걸리집 육자배기 소리를 듣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관심을 두지 말자고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굉음에 가까운 뽕짝노래에 귀를 내맡기고서 반쯤 잠이든 수면상태로 몸을 부려놓은 채 돌아왔다.

(필자 졸작)



해설

기행수필의 경우는 시재를 현재형으로 잡은 것이 좋다. 과거에 다녀온 얘기라도 지금 둘러보고 쓰는 듯 쓰는 게 바람직하다. 그리고 여기서 조심할 것은 자기가 본 것 아는 것에 대해서 너무 도취해서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이미 그것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서 써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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