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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미움의 강을 지나

7154 2007. 10. 22. 09:36

미움의 강을 지나


          장은초



 

너더댓 살쯤으로 보이는 꼬마둥이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까치발로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벌겋게 물든 혓바닥이 신기한지 연신 제 혀를 날름거렸다.

‘요녀석, 사탕을 먹었구나.’ 생각하며 볼을 꼬집어 주려다말고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가는 얼굴에, 멍하니 꼬마둥이 하는 양만 지켜보았다.

 예전에 고향친구 경애도 늘 저렇게 벌건 혓바닥을 하고 다녔었다. 딸 부잣집 막내였던 경애는 하굣길 상점에서 언제나 둥글넓적한 막대사탕을 사먹곤 했다. 한 입에 쏙 들어가는 돌사탕도 사먹기 여의치 않았던 우리들에 비해 막대가 달려 한 금 더 나가는 사탕을 거리낌없이 사먹을 수 있었던 것은 경애에겐 형부가 많았기 때문이다. 다섯이나 되는 형부에게 받은 용돈으로 과자며 사탕을 궁하지 않게 사먹던  경애를 우리 또래들은 늘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봐야 했다. 언니가 달랑 하나 밖에 없는 나로서는 더욱 그런 마음이었다.

 내가 열여덟 되던 해 언니는 결혼을 했다. 이미 철이 들었던 터라 형부의 존재가 용돈 공급줄이라는 개념은 애초부터 없었다. 내 형부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착하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대체로 형부와 처제 사이가 그렇듯 나와 형부도 더없이 자별했다. 적어도 난봉이 나기 전까지는.

 단란했던 언니의 삶에, 불행이 찾아든 건 결혼 18년쯤 무렵이었다. 심성 반듯하고 의지가 차돌 같았던 형부가 푸석돌이 되기 시작한 건 춤바람이 나고부터 였다.

그후 화투 바람에 여자 바람까지 나더니 딴전 벌여 아주 집을 나가 버렸다. 언니보다 더 충격을 받은 쪽은 친정어머니였다. 자정(子情)이 유별났던 어머니는 딸의 고통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 하는 현실에 가슴을 치셨다. 늙마에 안동답답이가 된 어머니는 급기야 우울증에다 중풍까지 맞으셨다.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형부가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되고 보니, 사랑과 미움은 비례한다는 말이 그리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유명을 달리하시고도 수 년이 더 지나서야 형부는 긴 방황에 마침표를 찍었다. 말이 8년이지, 그 긴 시간을 견뎌온 언니의 삶은 진구렁 그 자체였다.

 형부가 난봉 나서 저지레해 놓은 치다꺼리를 하느라 언니는 손톱 발톱이 젖혀지도록 일을 했다. 빚 갚으랴, 홀시어머니 봉양하랴, 아이 셋 공부시키랴. 매일 매일이 코에 단내가 났을 건 당연했다.

 이태 전 겨울, 형부는 '돌아온 장고‘처럼 그렇게 털레털레 돌아왔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손을 툭툭 털고 일어난 것처럼.

 그간 나는 언니에게 형부를 절대로 용서하지 말라고 무수히 세뇌공작을 폈는데도 언니는 너무 쉽게, 너무 빨리 용서를 하고 말았다. 배알도 없는 언니까지 마뜩찮아 견딜 수가 없었는데 그런 내 심중을 아는 양 어느 날 언니에게서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내 시어머님은 열 아홉에 시집와서 석 달을 살다가 남편을 전장으로 보내셨단다. 임신 사실을 담은 편지를 띄운 뒤, 한 달도 안 돼 전사통보를 받으셨지. 자식의 존재를 알고 갔는지 모르고 갔는지조차도 모르는 시아버님. 두 분을 생각하면 아무리 난봉꾼이라 해도 남편이 이 세상에 살아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꽃다운 나이에 청상이 되어 유복자를 낳아 기르며 평생 수절하신 시어머니를 생각하면 세상에 용서 못할 일이 무엇이더냐. 이미 엎질러진 물은 어쩔 수 없지만 남아있는 물은 그래도 지켜야 하지 않겠니?’


 언니의 편지를 손가락 사이로 구겨 넣으며 나는 강상의 일화를 떠올렸다.

주나라 정치가인 강상은 우리에게 강태공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강상은 젊은 시절 가난에 찌들었고 할 줄 아는 거라곤 웨이수이강에 나가 낚시질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의 아내는 가난과 남편의 무능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가버렸다. 몇 년 후 강태공은 낚시터에서 문왕에게 발탁되어 그의 스승이 되었다. 그 후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평정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 소식을 들은 아내가 집으로 돌아와 잘못을 빌며 용서를 청했다. 강태공은 아내에게 물 한 대접을 떠오라고 하더니 물을 그 자리에서 쏟아버렸다. 그 물을 다시 쓸어 담을 수만 있다면 예전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지만 강상의 아내는 결국 쫓겨나고 말았다.

 떨어진 꽃은 다시 가지로 올라갈 수 없듯이 한번 엎질러진 물도 결코 쓸어담을 수 없는 일이다. 언니가 비록 엎질러진 물보다 남아있는 몇 방울의 물을 선택했다고 화인(火印)찍힌 8년의 세월이 쉬이 아물 수는 없으리라.


 지난여름 휴가 길에 언니를 보러갔다.

상처가 구덕구덕해지고 새살이 돋으려면 세월 외는 바이없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내 판단은 멋지게도 오판이었다.

우리 차가 멀어질 때까지 눈바래기 하며 서있던 언니와 형부를 보면서 나는 비로소 알았다. 세월보다 더 빠르고 확실한 새살은 진정성이 전제된 용서라는 것을.

에돌아 미움의 강을 지나오니 이 세상을 톡톡 털어도 하나 밖에 없는 형부가 거기 서 있음이 아닌가. 미구에 형부를 만나게 되면, 혓바닥이 벌겋게 물드는 막대사탕을 사달라고 할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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