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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의 ‘연어’ 100쇄 찍은 이야기

7154 2008. 6. 17.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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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의 ‘연어’ 100쇄 찍은 이야기

       -뉴스메이커




서울에서 자동차로 3시간 가까이 달려 도착한 전북 완주군 삼례읍. ‘예향의 도시’ 전주에 닿기 전 만나는 이곳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띄엄띄엄 덩그러니 수줍은 듯 서 있는 건물들과 늦은 봄바람을 타고 와 코끝을 간질이는 텁텁한 촌(村) 내음. 그리고 따뜻한 5월의 햇살은 삼례를 폭넓은 치마폭으로 감싸 안아 나른함까지 느끼게 한다.


시인 안도현(46)을 만난 곳은 바로 이 삼례다. 이곳에 터를 잡은 우석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기 때문이다. 너른 창을 통해 햇살이 넉넉하게 들어오는 교수실의 한쪽 벽면은 시인의 방답게 문학서적으로 가득 차 있다.


안도현을 만난 이유는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가 5월 20일 100쇄를 찍었기 때문이다. 1996년 3월 1쇄를 찍었으니 11년 만에 이룬 쾌거다. 오랜 기간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음을 증명하는 것이니만큼 더욱 뜻 깊다. 누적 판매부수는 72만 부. 이로써 ‘연어’는 최인훈의 ‘광장’,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아리랑’, 박경리의 ‘토지’와 함께 100쇄 고지를 넘은 한국문단의 스테디셀러 대열에 합류했다. 안도현은 “독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며 “‘연어’는 글쟁이로서 나를 변화시켜준 작품이기도 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시를 쓰는 형식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연어’를 기점으로 바뀌었다는 것.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아이들의 독서 습관을 들여다봤더니, 초등학생 때까지는 동화를 읽다가 중학생이 되면서 바로 소설을 읽더군요. 동화에서 소설을 읽기 전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어린 왕자’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와 같은 양식의 책이죠. 그래서 ‘연어’를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기로 결심했어요. 헌데 제가 그동안 시의 사회적 기능에만 관심을 기울이느라 아무리 작은 것도 하나의 우주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된 거예요.”

 이때까지만 해도 안도현은 연어를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물고기를 소재로 한 영상물과 사진집을 통해 겨우 접했을 뿐이다. 그는 당시 다방에서 볼 수 있었던 커다란 수족관을 구해 여러 마리의 피라미를 키웠다. 피라미를 통해 글 묘사에 필요한 연어의 움직임을 간접 체험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작은 물고기는 다 피라미라고 생각하잖아요. 저 역시 그랬고요. 그런데 제가 피라미로 믿고 키우던 물고기 중 상당수는 피라미가 아닌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동안 분단이나 통일, 노동자문제 등 거창한 주제에 갇혀 있어 작은 물고기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거예요. 이 작품을 쓰면서 몹시 작고 하찮은 것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또 ‘연어’는 원고지 300매로 썼으니까 제 산문작품으로는 제일 긴 작품이었죠.”


이야기 소재로 연어를 택한 이유는 자기가 태어난 강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죽는 연어의 독특한 생태 때문이다. 안도현은 “사람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객지에서 생을 끝내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 작은 물고기가 어떻게 수만㎞를 헤엄쳐 돌아올까 신기하기도 하고 배울 점도 많아 선택했다”고 말했다.


우화 ‘연어’는 등쪽 색깔이 검푸른 여느 연어와 달리 몸이 은빛 비늘로 덮인 ‘은빛연어’가 주인공이다. 그가 동료들과 함께 머나먼 모천으로 회귀하는 과정에서 누나연어를 잃고 눈맑은 연어와 사랑에 빠지고 폭포를 뛰어넘으며 성장해가는 내용이다. 그 과정에서 불곰을 만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하지만 초록강, 징검다리, 착한 인간 등을 만나면서 삶을 배우기도 한다.


처음엔 저자나 출판사나 책이 이렇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지 예상치 못했다. 초판으로 찍은 3000부가 1주일 만에 동나면서 이후 1만 부씩 찍어냈다.


당시 안도현은 해직(1989년 전교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이리중학교에서 해직) 4년 6개월 만에 전북 장수 산서고등학교로 복직해 있던 시기다. 그때만 해도 워낙 촌이어서 학교 교무실에는 전화기가 딱 한 통뿐이었는데 출판사, 언론사 등 서울에서 안도현을 찾는 전화가 빗발쳤다. 안도현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시를 쓰는 일로 인생을 꾸리겠다고 결심했는데 ‘연어’에 대한 뜨거운 반응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며 “종전까지 엄두를 내지 못했던 전업작가의 길을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1997년부터 2004년까지 8년간 그는 글만 썼다. 시도 쓰고 우화도 썼다. 안도현은 “전업작가로 살려니 뭔가를 계속 써야만 스스로 존재감을 갖고 먹고 살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잡문도 많이 쓰게 됐다”며 “어느 시점이 되자 스스로 바닥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그가 우석대 개교와 함께 교수의 길에 나선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게다가 중·고교와 달리 시만 가르칠 수 있고, 집필시간이 상대적으로 넉넉하다는 점도 작용했다. 그는 자신이 ‘시인’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불리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

“저는 시인으로서 ‘연어’를 쓴 것인데, 제가 시인인 줄 모르는 상태에서 ‘연어’를 읽은 학생들이 가끔 저를 소설가나 동화작가로 부르는데 마음이 편치 않아요.”


그는 “시는 사람들을 철들게 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사회가 더 높은 곳으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수직상승 욕망을 부추기지만 시는 수평적인 삶이나 느리게 가는 삶, 좀 덜 먹는 삶도 의미 있음을 일깨워준다는 것. 그는 요즘 시 배달부로도 나서고 있다. 문학 전문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는 문학나눔사업추진위원회로부터 위촉을 받아 5월부터 ‘안도현의 시 배달’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아침 이메일로 전국의 회원들에게 손수 엄선한 시를 발송한다. 안도현은 “시를 멀리해 온 분들에게 시를 읽어드리는 시간”이라며 “시가 어렵다고 여기는 분들이 많지만 조금만 마음을 열면 시가 주는 감동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안도현은 휴대전화가 없다. 글쟁이는 고독을 느끼고 때론 멍하니 지내는 시간도 필요한데 도대체 휴대전화란 기계 탓에 그런 여유를 통 가지지 못하겠더란다. 1년 반 전 분실한 김에 아예 끊고 다시 개통하지 않았다. 그는 휴대전화가 없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안도현은 올 연말쯤 ‘연어’ 속편을 출간할 예정이다. 연어들이 오랜 역경을 딛고 강 상류의 여울에서 알을 낳는 것으로 끝난 전편에 이어, 속편에서는 그 알에서 부화한 어린 연어들이 바다로 나가기 직전까지의 성장통을 다룰 계획이다.


출처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id=14507&pt=nv


테마수필 http://www.sd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