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해설>
「우연」이 꿈꾸는 세상
-이승훈․수필가/「수필界」 발행인
1. 꽃등
6월 초 어느 날, 작달비가 쏟아지며 세찬 바람이 일었다. 5층 사무실에서 내려다본 가지 숱한 은행나무는 사위로 몸을 젖히며 크게 흔들렸다. 은행나무를 바라보는 내 가슴에서도 무언가 그리 흔들렸다. 수필을 쓰지 못한 날들로 몇 달이 하얗게 흘렀다. 수필을 쓰는 일도, 수필집을 내는 일도 은행나무처럼 바람 불어 가슴 흔들리는 신열을 겪는 일이 아닌가 싶다.
「우연」의 원고를 정리해 가자니, 깊은 수족관 아래서 들숨 날숨만 반복하는 광어들을 닮은 내 수필들이 떠올라 마음이 조급해졌다. 나는 아직도 첫 작품집을 내놓지 못한 탓이다. 수필집을 내는 일은 수필의 자기 숨통을 틔우는 일이요, 숨기척이나 할 뿐 구석진 자리에서 미동 없는 수필을 흔들어 깨우는 일이다. 작품집으로 엮고자 퇴고를 하다 보면 사장될지도 모를 수필이 화들짝 살아나기도 한다.
수필에는 가면현상(假面現象)이 없다. 수필은 삶을 진솔하게, 순수하게, 겸손하게 노래한다. 있는 그대로 민낯을 내비치는 출혈성(出血性)을 지닌 것이다. 「우연」 역시 교수라는 사회적 권위를 벗어나 소시민으로서의 애환과 삶의 질을 높여줄 가치관이 그 주를 이루어, 격의 없이 친근하고 앞서 걸어온 여정의 성찰을 나의 지혜로 삼을 수 있다.
수필을 쓰는 자체가 수필가에게는 유의미한 작업이다. 이 세상에는 같잖은 인생도, 찾을모 없는 사물도 없다. 생(生)을 넉넉하게 품은 「우연」의 수필들을 그래서 나는 바람 부는 가슴으로 안았다. 저자의 참눈이 지천명인 나를 내내 지혜의 성찬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한 해 수필집을 두 권 내든 한 권을 내든 아니면 십 년마다 한 권을 내든 거기에는 나름대로 숱한 삶의 느낌표가 존재한다. 수시로 불거지는 이들 느낌표는 가로 뛰고 세로 뛰기도 하겠으나 「우연」 즈음에는 숲 속 오솔길을 걸어가듯 고즈넉한 무게감이 존재한다. 그러나 붓끝이 안으로 향할 때면, 몸을 뒤척이는 새벽 다섯 시처럼 조급한 회한의 느낌표들이 뭉클하였다.
우리는 가난한 수필가들이다. 애초 독자의 열광적인 소통을 바라며 수필을 쓰거나 작품집을 내는 우리가 아니다. 돌이켜보면 빛나는 문학성이 반드시 소통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역량 있는 원로문인이 상재한 작품집도 소통에는 허약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진정한 문인은 그렇다고 붓을 놓지는 않으며, 구순의 연치에도 정성을 다해 작품집을 내놓는 이유는 문학 정신과 그 가치를 자신의 영혼으로 삼아서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솔직히 소통의 꿈조차 초월하기에는 진정성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수필도 소통의 꿈을 꾼다. 꿈을 꾸는 일은 언제 닥칠지 모를 행복을 준비하는 일이다.
일반 독자는 자신과 친한 정서에서 교감을 나타낸다. 뜨거운 감동이나 심오한 문학성만 소통의 매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일상 가운데 눈길이 머무는 미적인 정서, 잊혀가는 선현(先賢)을 다시 묵상해보는 여유, 끈끈한 혈연의 온도 측정, 흐트러지는 사회적 가치관을 다잡아보는 철학, 자연 안에서 찾아보는 인간의 부채감이 「우연」에서는 소통이나 교감의 매개체로 나선다. 지금 몹시 배고프다는 심정을, 빈 쌀독을 긁어대는 바가지 소리로 암유(暗喩)하지 않더라도 그런 매개체를 수필의 눈으로 짚어봄으로써 인생의 선병자(先病者)와 젊은 독자의 소통은 충분히 이루어질 것이다.
2. 상생의 진리
「우연」에는 삶의 지혜를 요구하는 상생(相生) 의식이 진지하다. 저자는 상생(相生)을 실현하는 방법으로써 ‘나를 버리는 겸허함’을 세상사에서 찾았지만 나를 버리는 일은 이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추구해야 할 정신이다. 저자의 표현처럼 ‘소승적인 사고(思考)의 노예가 되어 부질없는 고집이나 집착 수준’이라면 사물을 끈질기게 파헤쳐 미적 대상을 찾아내기가 어렵다고 본다. 더구나 지금은 ‘디지털 문화의 위력’ 아래 놓인 상태라, 미학의 주요 탐구 대상에서 자연과 인간이 점차 소원해지는 상황이다. 디지털 문화의 흡입력이 강렬해질수록 생명과 자연의 체험이 줄어들어 결국, 인간의 이성과 감성도 디지털 세계를 따라 예민하게 변해갈 것이다.
‘… 인간세상은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사회가 요청하는 덕목이 어우러져 함께 존립해야 한다는 전제의 충족을 바탕으로 상생과 공영을 지향해야 한다는 명제(命題)를 만족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 때로는 과감하게 나를 버리고 공존의 틀을 따르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소승적인 사고(思考)의 노예가 되어 부질없는 고집이나 집착의 수준을 지나서 아만에 이른다면 더불어 존재해야 한다는 도(道)를 따를 수 없다. 더욱이 디지털 문화의 위력이 날로 거세지는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소아(小我)를 버리고 해묵은 무거운 짐을 과감하게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빈자리에 상생과 공영을 위한 지혜를 메워나가는 대승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나를 버리는 겸허(謙虛)함은 ‘번뇌를 버리고 아무런 탐심(貪心)이 없이 깨끗하게 불법을 닦는 중(僧)’을 이르는 두타(頭陀)의 정신에서 배워도 모자람이 없이 넉넉하리라.’ (고집의 승화)
전혀 낯선 타인과도 생각할 여지없이 이루어지는 소통, 그만큼 개방되는 감정과 그 감정의 비진정성, 불풍나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불연속성과 그 속성에 상충하는 예속 현상 등을 겪으며 사이버 문화세대는 예의와 배려 같은 기본 가치관을 상실해 간다. 따라서 저자의 신념이나 다름없는 이 상생의 정신은 아날로그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사이버 공간에서도 심지어 예술세계조차도 실현해나가야 할 덕목일 것이다. 갈수록 물기가 부족한 세상에서 위기의식을 느낀 듯한 저자는 상생과 같은 시원적인 인성을 되찾아 촉촉한 감정생활(感情生活)이 일어나기를 염원한다.
「우연」의 작품 전체를 훑어보아도 ‘상생(相生)’이라는 가치관을 벗어난 작품은 볼 수가 없었다. 사실 ‘고집의 승화’, ‘새해 새 걸음으로’, ‘즈믄둥이의 세상구경과 대선’, ‘이판사판’, ‘여행증명서’ 등에서의 상생이 구체성을 띤다면 이 작품집 꽃등에 둔 ‘내리막과 겸손’은 왜 상생해야 하는지를 에둘러 표현한 총론이라 할 수 있다. 2006년 새해에 쓴 ‘내리막과 겸손’에는 우연하게도 작금의 우울한 현실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데, 그 예지력(叡智力)이 섬광처럼 번득여 가슴이 서늘하다. 서로 바라보는 시각과 해석이 다를 수 있으므로 저자의 예지를 적시하는 것을 여기서는 삼가기로 한다.
3. 아름다운 동행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을 표현이 ‘아름다운 동행’이다. 더구나 가시밭길의 동행은 어둠이 잦아든 산등성이의 불빛처럼 가슴을 시리게 한다. 동행 자체도 그러하거니와 이를 바라보며 독자에게 보여준 저자의 마음이 그 주체에게 한없이 따뜻하다. 어떤 수필을 읽고 나면 저자와 은근한 정이 들어 예전부터 알아온 듯한 느낌이 드는 작품들이 있는데, 「우연」 가운데는 이런 토향(吐香)의 작품이 적잖게 들어 있다.
‘… 뇌졸중으로 반신불수가 된 초로의 남편을 위해서 매일 아침 도시 변두리로 운동을 나서는 아내의 정성은 아름답고 숭고했다. 어찌 보면 남편을 걷도록 차에서 내려놓고 아내는 몰인정하게 돌아서 멀찍이 길을 오가며 자기 운동을 하는 모양새이다. 그러나 눈여겨보면 외진 길모퉁이 때문에 남편의 모습이 눈에서 벗어나면 말없이 뛰는 경우를 몇 번 봤다. 그러다가 다시 그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오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시침을 뚝 떼고 어물쩍 딴전을 피우며 원래 걸음으로 돌아가는 아내의 마음을 읽으면서 가슴에 진한 감동이 몰려왔다. 가끔 일찍 운동을 나선 날 그 부부가 나란히 서서 동녘에 솟아오르는 해돋이를 바라보는 모습을 본다. 무언가를 간절히 염원하는 절실한 자태가 아름답고 지고지순했다. 비록 한쪽은 육신이 완전치 않아 서 있는 자세가 매우 불안해 보여도 아름다운 동반자라는 생각 때문에 가슴에 파문이 일면서 쿵쾅대면 나도 모르게 신바람이 나서 발걸음이 가벼워진다.’(아름다운 동행)
가슴이 열려 있어야 수필은 진정성이 빛난다.
연질(軟質)의 성품을 지닌 저자에게 ‘아내가 반신불수 남편을 매일 아침 운동시키는 모습’은 ‘아름답고 숭고’한 그 이상이었을지 모른다. 애써 감정을 절제하는 행간의 억지력이 돋보여서 하는 말이다. 티 없이 바라보는 저자의 맑은 심성과 고난 가운데 더욱 빛나는 가치를 숙연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새벽 산책에서 저자가 만난 이들 ‘동행’ 외에도 ‘외숙(外叔)’과 ‘친구 어머니’의 ‘아름답고 지고지순한 동행’도 곁들여 ‘아름다운 동행’이 어느 한 편의 충동적 감상이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보편적 진리임을 일깨운다. 마지막 문장의 ‘나도 모르게 신바람이 나서 발걸음이 가벼워진다.’라는 역설적 표현도 이를 뒷받침해 보인다. ‘아름다운 동행’은 상생과 더불어 다름 아닌 저자가 꿈꾸는 이상적 세상인 것이다.
좀 더 시선을 돌려보면, 아름다운 동행은 사람과 사람 사이뿐만 아니라 자연과 인간 사이에서도 이루어진다. 살아가는 날이 숨차다가도 이른 아침 출근하여 동녘의 붉은 수채화를 바라볼 때, 담배를 피우려고 발코니로 나갔다가 무심코 석양을 바라보게 될 때, 홀로 야근을 하다가 문득 창밖의 보름달과 눈이 마주칠 때면 일상의 고단함이나 외로움도 달게 느껴진다. 연리지로서 보폭을 맞추어야만 동행이 아닌, 소리 없이 지켜보며 가끔 위안을 주는 자연의 교감도 아름다운 동행이다. 비록 저자가 인간사 동행을 시현하고는 있지만 저자가 풀어놓은 사유를 바탕으로 또 다른 메시지를 추려보는 태도도 유의적인 감상이라는 생각이다. 더구나 「우연」에는, 연륜이 깊어질수록 자연을 대하는 품이 너그러워진다는 사실을 담은 작품이 여기저기 구성되어 있다.
4. 우연
‘우연’은 저자의 결혼 30주년을 맞은 날 첫 작품집을 출간하게 된 소회를 다룬 수필이다. 한마디로, 첫 작품집 출간이 평소 무덤덤하게 넘기던 결혼기념일을 ‘진주혼식(眞珠婚式)’답게 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아전인수 격의 의미를 부여하고픈 절실한 마음의 밑바닥’에서 부부의 연과 사랑을 깊이 되새겨 보았음 직한 마음이 행간마다 절절하다. 여느 수필가라면 첫 작품집 출간 일을 결혼 30주년 기념일에 맞추고자 출판사로 마음 졸이며 전화를 했겠지만 당시 편집을 맡은 나에게 전화조차 없었으며 나 또한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으니 ‘우연’을 의미한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 겨우 상식의 틀에 맞춰 삶을 누리려는 나이다. 그럼에도 과분한 일터에 뿌리를 내리면서 쉴 새 없이 생각하고 끝없는 변화를 빠듯하고 버겁게 받아들이며, 여백의 미(美)가 그리웠고 은유적 묵언(?言)이 부러웠다. 해서, 칠흑(漆黑) 같은 어둠 속에서 아득한 빛으로 여겨지는 세상을 무작정 동경하고 곁눈질해왔다. 그런 무모함은 글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등단이라는 염치없는 도전을 꿈꿨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게 마련이던가. 인심 좋은 문학 동네 두 군데에 변변치 못한 수필을 디밀었더니, 하는 꼴이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불러 일으켰던가 보다. 인자하게 손을 잡고 다독이는 사랑에 용기를 얻어 마음의 텃밭에 가꿔오던 흔적을 모아 수필집을 출간하려는 만용에 이르렀다.’(우연)
여백의 미(삶의 여유)가 그리웠고, 은유적 묵언(내재적 독백)이 부러워 수필을 썼다는 고백이다. 자신의 내면과 참다운 만남을 이상으로 수필을 쓰면서도 영적인 미성숙을 탓한다. 하지만 작은 일에도 크게 감동하는 마음을 들여다보노라면 저자는 천생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수필과 인연을 맺었지 싶다.
‘우연’에서 밝혔듯이 출판기념식이라야 동인 모임에서 축하 시간을 잠시 조촐하게 가졌고 여기서 시와 수필을 낭송한 것이 전부였다. 이때가 2005년이었으니 ‘우연’은 그즈음 쓴 작품이다. 거의 4년이 지난 지금, 이 작품을 문구 하나 수정 없이 고스란히 세 번째 작품집 「우연」으로 넣은 의도는 무엇일까. 한 걸음 더 나아가 작품집 제목으로조차 뽑았다. 평소 저자의 인금을 잘 아는 눈으로 보자면 이는 아내에 대한 무언의 사랑 고백이요, 첫 작품집 「찬밥과 더운밥」에서 이어가는 가족 사랑의 묵시적 의지로 보인다. 또한 당시 축하 시 전문을 ‘우연’에 게재한 데서는 예나 지금이나 감사한 마음이 한결같이 흐름을 엿볼 수 있다.
5. 맺으며
작품집 「우연」 제6부는 ‘가족’이 중심 소재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새어나오는 휴머니즘은 궁극적으로 따스할 수밖에 없지만, 가끔은 늦은 밤 어느 발코니에서 비치는 담뱃불처럼 쓸쓸한 잔영이 어른거린다. 한편, 작품에서 드러나는 탈권위적이요 서민적인 이미지나 할아버지로서 또는 시아버지로서 등장하는 이미지는 수필 자체의 메시지로 봐도 좋을 것 같다.
저자는 수십 년 동안 대학 강단에서 젊은이들을 마주해온 공과대학 교수이다. 공학의 섬세함과 미적 구조가 친숙한 저자에게는 무심히 스치는 바람 한 점도 수필로 조화되었을 것이다. 천생 선비인 저자가 은발 성성한 연륜을 통해 삶을 성찰하며 전하는 메시지들이 이번 수필집 「우연」을 채웠다. 저자의 세 번째 느낌표와 만난 나에게는 감회가 남다르다. 왜냐하면 첫 작품집 「찬밥과 더운밥」 그리고 두 번째 작품집 「내가 사는 이유」는 내가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 실무자로 출간 작업을 맡았으며, 이번 「우연」은 직접 제작마저 하게 되었으니 저자의 세 작품집 모두 각별한 인연을 맺은 셈이다.
우연한 인연이 필연처럼 이어졌지만 대학 은사나 다름없는 저자에게 나는 아직 지울 수 없는 부채감이 존재한다. 저자를 만나게 된 인연을 혈연 이외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며, 늘 겸허한 성품으로 성찰을 기도하듯 하는 저자를 그저 존경할 뿐이다. 이 세 번째 작품집 「우연」이 조금이라도 성을 채웠으면 하는 바람이고, 나의 부족함을 뻔히 알면서도 「우연」에 동승시켜주신 숨은 뜻을 다시 한 번 진심으로 헤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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