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별 및 별자리 운세★★

금연일기2_무심결에 뽑은 칼

7154 2009. 11. 6. 09:25

 

 

철록어미의 금연 에세이2

-무심결에 뽑은 칼



이제는 술 담배 없는 세상에서 살 나이도 되었다.

6월27일 아침 여덟 시 경, 침대에서 눈을 뜬 나에게 문득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천장에서 떨어지듯 꽂혔다. 이는 우연찮은 일로써 눈을 뜬 그 순간 뜨뜻미지근하게 마음먹은 일이다. 담배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야 날마다 부글부글 괴었지만, 자신이 없어 쉬 담배를 끊겠다는 결심을 하지 못해왔다.

전날, 올해 일흔일곱인 친구 아버지가 폐암 말기라는 소식을 들었으나 그것이 금연의 동기는 아니었다. 무덤덤한 금연 시작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한 갑 가까이 남은 담배를 라이터와 함께 쓰레기통에 버린 채 바로 출근을 하였다. 아무 준비 없이 시작한, 느닷없는 금연이다. 누군가 밤새 내 의식을 지배하며 최면이라도 걸었던 것일까.

이상한 일이다. 일단 담배를 끊자 하니 매년 겨우내 해댄 기침이 채 한여름도 오기 전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온다. 기침이 터지면서 그동안 술과 담대로 찌들었을 내 육신이 새삼 떠올랐다. 맑은 정신과 가뿐한 육체로 아침을 맞이하고픈 소망도 생긴다. 추저분한 술과 담배에서 벗어나야 아름다운 수필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담배 없이는 글 한 줄도 못 쓰지 하던 내가 이 무슨 조화일까.

불과 1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입안에서 단내가 도는 듯하다. 서서히 흡연 욕구가 달구친다. ‘더는 내 영육을 하수구 같은 곳으로 내몰지 말아야지….’ 승리할 수 있다며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컴퓨터에서 금연 일기를 검색해 보았다. 금연 일기를 읽으며 그 고통을 공유하고 위안과 격려를 얻는다. 사람은 신체와 정신이 각기 다르므로 금연에서 오는 고통도 다를 것이다. 다만, 남들 다 하는 금연인데 호들갑스럽지는 말자 싶다.

담배는 백해무익한 것, 더는 나를 더럽힐 수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달게 구는 욕구를 찍어 누르고자 담배의 해악을 떠올리며 자기최면을 건다. 내 몸에 찌든 니코틴과 그 역겨운 냄새라니…, 만일 계속 담배를 피운다면 나이가 들수록 추깃물 같은 냄새로 가득할 것이다. 술과 담배 없이도 내 인생은 적당히 외롭지 않으며 더욱 아름답고 지금보다 차원 높은 세계와 가치를 새삼 느끼리라.

그동안 지나치게 술과 담배를 가까이 해왔다. 담배는 하루 평균 한 갑 반을 피워댔다. 심하게 피운 날은 세 갑도 피운 것으로 기억한다. 식구들이 없는 낮에 재택근무를 하던 때이다. 밖에 나가는 일이 귀찮아 책상 앞에서 연방 피워대니 담배 가게 가는 일이 창피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담배 가게도 여기저기 번갈아가며 담배를 샀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일하려니 외롭기도 하여 부쩍 담배를 더 찾았다. 돌이켜보면 나처럼 운동하는데 게으른 사람, 자기 관리를 못 하는 사람일수록 담배를 떨쳐내지 못하는 모양이다.

대문을 열었을 때 화장품 향기가 풍기면 좋으련만, 우리 집에서는 니코틴의 찌든 냄새가 확 풍겨와 숨이 막혔다. 여름에야 창문이라도 열어둔 채 피우지만 겨울이면 담배 냄새는 곰방대나 물부리 속 담뱃진처럼 더께더께 배어갔다. 하얀 벽지는 어느새 담배 연기로 누렇게 변해가고 옷장 속 옷에서조차 담배 냄새가 풍겨 전철이나 버스 타기가 곤욕스러웠다. 흡연은 참으로 추접스럽기 이를 데 없는 짓이었다.

소주는 매일 한 병 반 정도 마셨나 보다. 매일 문뱃내를 풍겼으니 금주에도 고통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그 고통을 이겨내면 상쾌한 세상, 행복한 세상이 기다릴 줄 안다. 고통이 클수록 내게 다가올 희망과 아름다움 또한 크게 얻으리라. 하지만 금주는 금연을 위한 일시적 수단일 뿐이다.

30여 년 흡연생활 가운데 딱 두 번 금연다운 금연이 있었다. 두 번 모두 고시준비를 하던 때였다. 강원도 어느 고시원에서 시작한 첫 번째 금연은 석 달 정도 버텼다. 동생이 그 오지마을로 격려차 찾아왔는데 시내 나가서 술을 한 잔 마시다가 그만 다시 피우고 말았다.

여섯 달 동안 버틴 두 번째는 사랑하는 형에게 말기 암 선고가 내려지던 날이었다. 이날 나는 병원 뜰 구석에서 줄담배를 피우듯 거푸 담배를 피워 물었다. 느닷없이 두 형제를 잃은 이후로는 사실 금연이나 금주를 하겠다는 결심은 아예 없었다. 흐느적거리는 세월 따라 술 담배도 덩달아 깨춤을 추어댔다.

이제 반나절 지났거늘 벌써 금단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점심을 먹고는 거의 안 하던 급체를 하였다. 손가락을 따고 약을 사다 먹어도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다. 얼굴 근육도 가늘게 떨린다. 한나절이 지났을 뿐인데 근육 경련이라니, 니코틴 중독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호흡조차 곤란해서 내 혈 어딘가가 꽉 막힌 듯하다. 후덥지근한 날씨 탓인지 자고 일어나도 졸음이 쏟아진다. 아무래도 점심때 먹은 차가운 열무김치가 얹힌 모양이다. 동료의 늦은 출근 문제로 오전부터 속이 좀 끓었던 데다가 금연에서 치솟은 욕구불만도 쌓였을 터, 연방 하품이 쏟아지며 가슴이 답답하다. 금연 첫날의 하루가 자꾸 벽시계를 보여주며 참으로 더디 가는 중이다.

저녁 아홉 시 반, 이제 하루를 접어야 할 때이다. 더 일을 해도 되지만 온몸이 금단현상으로 저릿저릿하다. 정신이 멍한 채 마치 심한 몸살을 앓고 난 사람처럼 기운이 하나도 없다. 평소 담배를 피울 때는 느끼지 못한 그 고소한 맛이 떠올라 몸서리치듯 부르르 몸이 떨린다. 이제 더는 담배와 친하지 않으련다. 그동안 자존심 상하는 일도 잦았다. 내 육신은 몹시 더러워졌으며 심한 기침 또한 붙어 다녔다. 내 기침 소리를 들으면 사람들은 병을 의심하는 염려를 앞세웠다. 그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담뱃불로 위험한 고비도 숱하게 넘겼다. 만취 상태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잠이 들어 화재를 내도 수십 번은 냈을 것이다. 나를 지켜준 수호신이 없었다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 모른다.

버스 정류소에서 개비 담배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하루를 버티지 못한 숱한 날들…, 일단 오늘 하루를 견디면 내일도 견뎌 내리라. 금연 하루를 앞당겨 채우고자 평소보다 일찍 누웠다. 첫날의 금연을 지켜내고 잠들던 날, 그 보랏진 하루를 맞이하던 때가 가물가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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