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별 및 별자리 운세★★

금단현상_금연일기4

7154 2009. 11. 13. 12:36

 

 

철록어미의 금연 에세이4

-자그마한 변화들



작심삼일이 무엇인가, 하루 견디기가 힘들어 부유일기(蜉蝣一期)로 끝나버리던 나의 금연이 아니던가. 사람이 호도깝스럽기를, 금연 사흘 째 아침이 감격스러워 눈물이 징 솟아오르려 한다. 지난 밤 금단현상 가운데 워낙 샌 놈을 겪은 탓인지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는 담배 생각 없이 입맛이 좀 밍밍하였다.

벌써 금연효과가 나타난 것일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손끝이 이전보다 훨씬 잘 달라붙는다. 술 담배를 할 때는 손가락이 미끄러져 오타가 자주 나거나 멈칫멈칫하는 때가 잦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다시 휘영한 기운으로 빠지면서 정신집중이 안 된다. 입 안을 다시고자 오전부터 녹차를 들이마신다. 어제는 너무 자주 마셔서 잠을 깊이 잘 수가 없었다. 녹차의 카페인 성분 때문이다. 녹차에는 이뇨작용을 하는 성분이 있어 녹차를 마시면 소변이 자주 마렵다. 이 녹차가 내 몸의 니코틴을 걸러 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예 녹차를 물처럼 마셔댄다.


애연가로서 영국에 윈스턴 처칠 수상이 있었다면 우리나라에는 공초(空超) 오상순 선생이 있었다. 해뜨기 전 일어나서 그날 밤 잠자리까지 담뱃불을 꺼트리지 않았다는 선생은, 세수를 하면서도 물 한 번 끼얹고 담배 한 모금, 또 한 번 끼얹고는 담배 한 모금을 할 만큼 즐겼단다. 자신이 뿜어낸 연기가 허공에서 잠깐 머물다 사리지는 모습을 자기 육신의 일부가 명멸하는 것이라고 본 선생의 연아일체(煙我一體)의 삶은 시 ‘나와 시와 담배’에서 더욱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나와 시와 담배는/이음(異音)동곡(同曲)의 삼위일체//나와 내 시혼(詩魂)은/곤곤(滾滾)히 샘솟는 연기//끝없는 곡선의 선율을 타고/영원히 푸른 하늘 품속으로/각각 물들어 스며든다.

선생은 수발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이 병실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나셨다 한다. 담배를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인 선생은 탈속과 환속 그리고 독신의 자신과 시(詩) 사이에서 짐승처럼 날뛰는 허무와 외로움을 담배로 위무하였음직하다. 하지만 아무리 당대의 시인이라 해도 선생의 지나친 흡연은 누군가 가까이 오는 것을 꺼리게 하지 않았을까도 싶다.

열대야는 아니더라도 끈적끈적한 여름밤에는 자주 깨기 마련이다. 평소 나는 자다가 일어날 때마다 담배 한 개비를 피우고 잤다. 자다가 두 번 깨면 두 대 피우고, 세 번 깨면 세 번 피웠다. 그러니 잠을 자면서도 담배를 피운 셈이다.


담배를 안 하니 아무래도 일상의 감춰진 자리가 더 드러난다. 이는 평소 찾지 못하던 여유이다. 우선 여름 옷 윗주머니에 담배와 라이터 대신 메모수첩과 볼펜을 넣을 수 있다는 것, 호주머니 없는 와이셔츠를 입을 수 있다는 것, 잠들기 전 침대에서 잠시 묵상과 메모를 할 수 있다는 점도 여유이다. 또한 잘 챙겨드리지 못한 노모를 얼굴 한 번이라도 더 보는 여유도 있다.

아무튼 금연 사흘이 기적 같다. 그러다보니 이는 내 의지가 아니라 수호신처럼 나를 보호하는 힘 덕분이지 싶다. 언제부턴가 내가 어려운 일에 처해질 때마다 숨통을 터준 힘, 저 하늘의 아버지이든, 형이든, 여동생이든, 할아버지든 아니면 모두이든 그 힘의 은혜로움이 있음을 믿는다.

술 담배를 자주하는 사람은 때로 부자연하거나 어성버성한 행동거지가 나온다. 담배를 피우고 나서 아니면 술이 덜 깬 상태에서 버스나 전철을 타면 매번 남을 의식하게 된다. 나에게서 풍길 고약한 냄새로 옆 사람이 느낄 혐오감을 잘 알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어린 아이를 안아주고 싶어도 어쩐지 아이가 인상을 찌푸릴 것 같아 머뭇거린다. 오죽하면 ‘흡연자와 키스하는 건 재떨이를 핥는 것과 같다.’고 하였을까.


사흘이 되니 부쩍 신경이 예민해졌다. 아무 연락 없이 출근이 늦은 동료를 보면 뼛성이 치밀어 무엇인가 팽개질치거나 부수고 싶은 충동이 인다. 잡지 원고도 얼른 마무리해야 하며, 6월도 마지막 이틀 밖에 남지 않은데다 월말이니 임대료와 창고료며 카드대금 등 이것저것 깡그려야 하는 일들이 또한 곁들여 날 서게 한다.

찰나의 고통은 여전히 심하다. 마치 담배 피우기를 깜박한 듯 담배 하나 피워야지 하다가‘참, 담배 끊었지.’하는 좌절의 쓴맛이라니…. 차라리 피우고 싶은 욕구가 끈히 이어지면 그에 따라 억제하면 되는데, 까맣게 잊고 있다가 한 순간 솟구치는 욕구를 반사적으로 좌절시키려니 더욱 저리는 것이다.


담배와 커피처럼 술과 담배는 또 하나의 찰떡궁합이다. 담배가 가장 욕구하는 때가 바로 술 마실 때이다. 석 달 동안 버티다가 끝내 무너진 첫 번째 금연도 술 때문이었다. 술을 마시다가 담배가 당기면 거의 발작을 일으키기 직전까지 내몰린다. 아무래도 술을 마시면 또 담배를 피우게 될까봐 술을 사흘째 안 마신다. 시간이 좀 지나면 술은 마시게 될 것이고, 술은 안 마시려면 언제든 안 마실 수 있으므로 나에게 술은 끊는다는 개념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술도 어지간히 마셔댔다. 어떤 날은 오후 세시가 되어도, 네 시가 되어도, 다섯 시가 되어도 전날 마신 술의 여진이 안 가셔 내내 불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이놈의 속은 어떤 속인지 그리 개고생하고서도 저녁 즈음이면 또 술 생각이 나거나 술 생각이 없어도 누군가와 어쩔 수 없이 마시게 되면 금세 거북하던 속이 편해지는 것이다.

술은 슬픔이나 힘든 일을 잊고자 마셨고, 행복이 그리워서 마셨다. 술을 마시면 자신감이 생겼고, 인정 또한 넘쳐나 낫낫한 사람이 되었다. 수년 동안 거의 날마다 저녁은 술과 함께 먹었다. 당연히 음식을 먹는 즐거움은 느낄 수 없었다. 술을 앞세우다 보니 저녁 식사는 대부분 안주가 대신한 셈이다. 아무리 그래도 술은 술일뿐이다. 내 스스로 외로워 마시는 중독성 없는 액체일 뿐이다. 술을 좋아해도 그리고 매일 마셔도 나는 해장술이나 점심 때 마시는 반주를 몹시 싫어하는 편이다. 10년을 넘게 매일 소주 한 병 이상 마셨다 해도 나에게는 중독이란 단연코 없다. 금주를 한다고 해서 금단현상 같은 고통은 없는 것이다. 다만 이 기회에 종종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술도 좀 밀어내고자 한다.


입안이 싱거워 다시 산책을 나갔다. 거의 30분마다 담배 연기로 입 안을 자극시켜 온 수십 년의 세월이다. 숨차고 후덥지근해서 싫던 여름 날씨가 어린 날의 여름처럼 살갑다. 담배를 피울 때는 몰풍정(沒風情)하게 다가오던 소나무나 은행잎이 더욱 파랗다. 매일 초조하고 긴장하던 마음도 다소 누그러졌다. 마치 큰 수술을 받은 이후 섭생하는 과정에 있는 듯한 기분이다. 다만, 금연한다고 해서 호들갑은 떨지 말자. 남들 다 하는 것이요, 연륜 깊은 어른들도 한다. 고희가 넘은 녹원 선생님도, 이순 중반의 한판암 교수님도 벌써 금연 수년째란다.

오늘부터 장마가 시작된다더니 오후 들어 소나기가 시원하게 쏟아진다. 없을지도 모른다던 장마라서 당장은 반갑다. 줄기차게 쏟아지는 소나기를 금연 가운데 느끼자니 하루 동안 참았다가 피운 담배 맛처럼 가슴이 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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