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별 및 별자리 운세★★

금연일기3_골 때리는 금단현상

7154 2009. 11. 9. 08:20

 

철록어미의 금연에세이3

 

 

 

어이가 없다. 겨우 금연 하룻밤인데 말 그대로 신열을 앓았다. 30여 년 동안 내게 달라붙은 빙의를 쫓아내는 퇴마의식을 치른 기분이랄까. 아침에 일어나 바라본 거울 속의 내가 해산어미 같았다. 퀭하니 희읍스름한 낯꽃이 짠하다. 내 몸을 지탱하는 커다란 기(氣)가 빠져나간 듯 아침부터 나는 축 늘어졌다.


밤새 신음을 뱉으며 뒤척였다. 얼굴에는 근육 경련이 일면서, 위아래 턱이 부르르 떨렸다. 금연하기 전에도 버릇 같은 경련이 있었지만 밤새 비몽사몽간 겪은 일은 아니다. 선잠이 든 상태에서 몸이 저려왔다. 오그라드는 몸을 펴려는, 안간힘 밴 신음이 터져 나왔다. 몸살이 걸렸을 때처럼 몸 구석구석이 짓쑤시는 것이다. 갑자기 운동을 심하게 한 날도 잠을 자다가 비슷한 증상을 겪었지 싶다. 서너 평 되는 방 안에서 신음은 창문을 흔들며 천정까지 울렸다. 니코틴 부족에서 찾아온 몸부림, 이는 발작이었다. 몸을 뒤틀며 나는 지랄병을 앓는다고 의식하면서 동이 틀 때까지 어리마리한 잠을 이어갔다. 


일어나자마자 다른 때와는 달리 시장기가 몰려왔다. 평소 느끼지 못하던 이 허기도 따지고 보면 금단현상이다. 헛헛한 아침이 허기로 다가온 것이다. 눈을 뜨면 답배부터 찾아, 보통 아침나절 예닐곱 대를 피우던 나날이 갑자기 뚝 끊긴 탓이다. 일요일이라 느지감치 깼으면 좋으련만, 짧은 산책을 하고 돌아와 아침을 준비하자니 시간은 마치 중천을 지나가는 느낌인데 벽시계는 겨우 오전 7시 15분이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하여 시계를 흘깃 보면 겨우 10분이 지났을 뿐, 시간은 담배의 빈자리를 달팽이처럼 기어간다. 더디기만 한 담배 없는 세상에서 앞으로 견뎌낼 시간이 막막하다.


어쩐지 사무실 안이 휘영휘영하다. 팔조차 책상 위로 올려놓기가 힘겹다. 피가 안 통하는지 가슴이 저리면서 하품은 그칠 줄 모르고 두 눈은 묵직하다. 넋이 나간다는 감각이 바로 이런 모양이다. 문득 부쩍 자란 손톱이 눈에 걸린다. 지난밤 열병이 손끝으로 뻗쳐 손톱이 더욱 자란 듯하다.

불끈 불끈 솟아오르는 담배 욕구가 섬뜩하다. 커피 대신 마시는 녹차조차 그 욕구를 자극한다. 담배 연기 한 모금, 폐부로 깊이 들이마시면 역류하는 폭포처럼 화한 탄산수의 기포를 일으키며 막힌 듯한 온 몸이 시원하게 뚫릴 것 같다.


얼굴 위로 무엇이 기어 다니는지 스멀거린다. 거울을 들여다보니 그 속에는 연기 마신 고양이 표정을 한 내가 있다. 말 수가 부쩍 줄어든 금연의 길이 되면서도 외로운 길이다. 온통 담배 생각뿐인 머리를 신선한 공기로 식히고자 자주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산책길에서도 신음이 터져 나온다. 금연 중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담배 하나 피워야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가 곤두박질치듯 허무의 절벽으로 떨어진다.

하루 종일 몽롱하지만 묵묵히 견딜 뿐이다. 어제는 사실 얼떨결에 하루를 보냈으나 어제보다 오늘은 더욱 세월없이 기어가리라. 더구나 일요일, 홀로 사무실에서 원고를 정리하는 중이다. 형편상 주말이면 각별하게 느껴지던 쓸쓸함이나 외로움이 담배 없는 빈자리를 몹시 크게 한다.

가슴이 답답해져 자전거를 타고 바로 옆 동네의 교외를 찾았다. 풀냄새와 흙냄새가 풍기는 한적한 곳에 들어서자 숨통이 좀 트인다. 한참 여기저기를 달리다보니 땀이 흥건하다. 사무실로 돌아와 샤워를 하다가 ‘샤워하고 난 후의 담배 한 개비 맛’이 떠올라 또 나도 모르게 ‘끙’하는 소리를 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숱하게 겪을 상실감의 신음이다. 샤워 뒤의 개운한 기분으로 커피를 곁들이며 피우던 담배의 맛, 하지만 이제 그 맛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 금연할 당시는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 머물 때로, 관악구청에서 청소년들에게 금연침을 놓아주었는데 나도 끼어 그 금연침을 맞았었다. 금연하던 그때 가장 힘들었던 것이 바로 그 상실감이었다. 담배는 밥을 먹은 직후 피워야 제 맛이다. 밥을 먹다가 이제는 밥을 먹은 후에도 담배를 피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숟갈을 떨어트릴 만큼 맥이 탁 풀렸다. 어드거니 식사를 해도 속은 어쩐지 헛헛했다. 오랫동안 그런 상실감은 매 끼니마다 찾아왔다. 식후불연초(食後不煙草)하면 조실부모(早失父母) 한다는 둥, 노변객사(路邊客死) 한다는 둥, 자자손손(子子孫孫) 고자속출(枯子續出) 한다는 등도 식사 후의 담배 맛을 잊지 못해 나온 애연가들의 표현이다.


금연 이튿날이 첫날보다는 더 힘들다. 누군가 말이라도 건네며 옆들어주면 좋으련만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혼자 있으려니 괜히 들락날락하기를 몇 번이던가.

티 없이 맑은 세상을 원한다. 금연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기쁨이자 축제 같은 것이다. 내 몸이 자연의 일부로 들어가고자 하는 연단이 지금의 고통이다. 대나무 끝에서도 삼년이라, 나는 이겨낼 수 있고 따라서 거듭날 수 있다.

금연은 수십 년 동안 단단히 박힌 대못을 뽑아내며 그 상처를 치유해가는 길일지 모른다. 애초 담배를 안 피운 사람들을 생각하면 금연 자체가 허무한 일이지만, 어찌 되었든 지금 나는 몹시 잘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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