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별 및 별자리 운세★★

금연일기13_외로운 길

7154 2010. 1. 7. 17:41

 

 

철록어미의 금연 에세이13

          -외로운 길



 일부러 담배를 떠올릴 때는 흡연 욕구가 발끈하지 않는다. 대신 무망중에 떠오르면 열흘이 지난 지금도 단말마적인 신음이 터진다. 자두를 보면 신맛이 고여야 정상인데 노점에서 내놓은 붉디붉은 자두를 보니 갑자기 흡연 욕구가 놀친다. 아마 지금 내 몸은 섬전(閃電)같은 자극을 갈구하는 모양이다. 아직도 이러하니 예삿일이 아니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물러설 수 없는 금연이다. 금연은 내 영혼을 구하는 일이요, 흡연은 내 영혼을 파는 일이다. 만일 여기서 실패한다면 패배의식이 깔린 후유증에서 오랫동안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사무실 문을 활짝 열어둔 지금, 위아래 층의 누군가가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양이다. 담배연기의 향긋한 냄새가 창문을 통해 흘러와 가슴속 깊이 쑤시개질을 해댄다. 늦가을의 굶주린 모기가 침을 질질 흘리며 킁킁거리는 피 냄새가 이와 같은 것일까.

금연을 해보니 ‘담배를 피운다.’와 ‘담배를 빨다.’의 표현상 차이가 뚜렷하게 다가온다. 평소 흡연을 할 때는 ‘피운다’가 자연스러운데, 금연 중에는 ‘빨다’가 절박한 심정을 더 잘 나타내주는 듯하다. ‘담배 한 대 피웠으면’하는 것보다 ‘담배 한 대 빨았으면’ 하는 뉘앙스가 심정적으로 더 가깝기 때문이다. 담배 연기 한 모금, 숨 깊이 빨아들여 목구멍에서부터 저 아래 단전까지 한 바퀴 휘 돌렸으면 원이 없겠다.



 요즘 일상에서 자그마한 변화를 겪는다. 아니 ‘겪는다’기보다는 변화를 바라는지 모른다. 변화는 잠자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취해 들어와 옷을 입은 채 쓰러지기 일쑤이던 평소와는 달리 이제는 얌전히 양치질이며 세수를 한 다음, 화장품을 촉촉하게 바르고 잔다. 그리고 아침이면 겨울에만 찍어 바르던 스킨과 로션을 이 끈적끈적한 여름철에도 꼭 챙겨 바른다. *머저구 없이 살기보다는 양간한 중년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금연에서 불어온다. 비록 속은 휑하니 비었을망정 땟물이나마 기운차 보였으면 하는 것이다.


오늘은 부쩍 하고 싶은 일들이 줄레줄레 떠오른다. 담배 피우는 시간도 낭비라면 그만큼 여유가 생긴 탓이요, 아니면 담배를 끊었다며 자신의 변화를 성급하게 바라는 조바심이다. 담배가 이런 욕구를 짓눌러 왔을지 모르지만 크게 보면 이 또한 금단현상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우선, 화초를 들여와 고상한 품새를 잡고 싶다. 내가 흡연하는 동안 노모가 가꾸는 거실의 화초들에게도 심한 고통을 주었다. 담배를 피우다가 화초를 바라보면 그들의 비명이 들리는 것 같았다.

‘아악, 아저씨! 제발 담배 좀 그만 피우세요.’

화초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랴만 쉬 들여놓지 못한 이유는 담배를 피우는 방의 화초는 잎이 금세 타들어가기 때문이다. 이제 화분 하나 고르러 갈 생각을 하니 그도 즐겁다. 예전에야 내가 화원에 들어서면 화초들이 시르죽은 듯 몸을 잔뜩 웅크렸을 테지만 이제는 먼저 텔레파시를 보내올지 모를 일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온종일 하는 짓이 곰팡스럽다. 채송화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긴 하다. 그런데 이 여름 왜 뜬금없이 채송화꽃이 보고 싶은 것일까. 나는 즉시 인터넷으로 꽃씨를 주문해두었다. 금단현상에서 얼른 벗어나고픈 욕망인지 채송화 꽃씨를 뿌릴 봄이 안달 나게 기다려진다. 이뿐만 아니라 심지어 낯빛조차도 신경이 쓰이는데, 주변에서 얼굴이 좋아졌다는 말을 자주 해서 집에 있는 화장품도 사무실로 가져와 챙겨 두었는가 하면, 그동안 까맣게 잊어버렸을 영어 어휘들도 다시 기억해 내고자 탁상용 카세트도 마련하였다. 또한 모기향 대신 쑥이나 다른 약초를 조금씩 태웠으면 싶어서 자그마한 향로도 하나 사들였다. 모기도 모기지만 행여 이런 이향(異香)을 맡으면 흡연 욕구도 억제하고 기분도 좋게 해주지 않을까 해서다.


자글대는 욕구처럼 이런 생각들은 오늘 아침부터 들끓었다. 사무실 옆 럭비운동장을 걸을 때는 뒤로 걸으며 두 바퀴를 돌았다. 뒤로 걷기나 오른손잡이의 왼손으로 식사하기처럼 평소 덜 쓰는 쪽 힘을 기르다 보면 금연도 시작한 마당이니 혹여 잠자는 뇌 세포가 깨어날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또 당장 손 완력기를 샀다. 우선 왼손 아귀힘을 키우는 운동으로 왼쪽 몸을 자극하면 혈액순환이 그만큼 잘 될 뿐만 아니라, 오른쪽과 왼쪽이 서로 힘의 조화를 이룰 때 그나마 노화된 몸이 더 힘을 유지할 것이 아닌가. 바로 점심때부터 왼손을 사용해 보았다. 젓가락질하는 모양새가 세 살 아이나 다름이 없다. 오른쪽 몸은 나이가 오십인데, 내 왼쪽 몸은 세 살배기라 생각하니 문득 두려워지는 것이 금연하다가 그만 좁쌀영감이 될 판이다. 아, 그저 짧기만 하던 하루에서 왜 이토록 데생각이 무성하게 솟아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변화무쌍한 몸짓과 생각들이 좁쌀 같을지라도 금연에 성공하겠다는 작심에서 나온 금단현상이려니 하며 씁쓸히 자신을 토닥이고 만다.  


 솔직히 흡연 욕구를 혼자 견디려니 그 또한 외롭다. 만일 가족 가운데 금연을 시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홀로 겪는 고통을 헤아려주는 배려가 필요하지 싶다.

담배 있나.”

“없습니다. 가서 가져올까요?”

“그럴 필요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 대화를 떠올리면 나는 가슴이 울컥한다.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하기 전 경호원과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생을 마감하고자 한순간 *어드록 외로웠으면 담배 한 대가 절실하셨을까. ‘그럴 필요 없다.’ 이제 곧 끝낼 목숨이거늘 담배 한 대 피운다 한들 무슨 소용인가 하였을까. 피 흘리며 쓰러진 병사나 사형수처럼 생사의 갈림길에서 마지막으로 찾는 것이 담배였다. 살고자 하는 의욕도 중독이다. 이 중독을 끊어 생을 마감하는 일이나 수십 년 피워온 담배를 끊어내는 일 역시 누군가 함께 해줄 수 없어 외로운 길이다. 구절양장(九折羊腸)의 후미진 산길을 걷는 나그네에게는 길가에 핀 진달래 한 송이로도 외로움을 덜 수가 있다. 당연히 홀로 받들어야 할 일이지만, 살다 보니 ‘내가 당신 곁에 있다.’라는 누군가의 손짓 하나도 심절할 때가 있었다. 날마다 희한한 금단현상에 시달리는 이즘 나는 몹시 고독하다.(2010년 1월 7일 현재 금연 196일째)



*‘멋’의 방언(전남)

*‘얼마나’의 옛말.



출처

http://cafe.daum.net/w12836?t__nil_cafemy=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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