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별 및 별자리 운세★★

금연일기6

7154 2009. 11. 26. 12:45

 

 

철록어미의 금연에세이6

-참 행복한 아침



 금연한 지 닷새째, 오늘은 금연한다는 사실을 테마수필 홈페이지에 바르집어 낼 참이다.

이 홈페이지(http://www.sdt.or.kr)는 글을 쓰는 지인들이 활동하는 곳이다. 금연 첫날부터 알렸다가 하루도 견디지 못하면 우세당할 일이라 참아왔는데, 닷새나 견딘 지금은 솔직히 여기저기 떠벌리며 자랑하고 싶은 심정이다.

날마다 식사를 거르는 아침, 해장국은 더더욱 없는 아침, 혼자 사는 사람의 술 마신 아침 속은 두 번 쓰라린다. 이제는 내가 늘 원하던 아침 식단을 차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침 식사를 챙기지 못한 이유는 대부분 전날 마신 술 때문이었다. 된장국과 김 몇 장 그리고 갈치 한 토막과 계란 프라이 하나가 내가 완족(完足)하는 아침 식단이지만, 거의 매일 밤 술을 마시는데다가 홀로 생활을 하다 보니 말 그대로 희망사항일 뿐이다. 사실 이 식단은 오래전 고시원 생활을 할 때 그곳에서 아침으로 차려주던 식단이었다. 아주 소박한 이 식단을 고시원 생활 이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것이다. 금연과 금주를 하며 아침을 맞는 요즘 부쩍 그 식단이 떠오른다.

새벽일을 하던 때가 있었다. 이른 아침 어느 아파트 계단을 오르다 보면 갈치 굽는 냄새가 구수하게 새어나왔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이 식단을 떠올렸다. 어쩌면 갈치 굽는 냄새에는 배냇냄새 같은 향수가 서려, 시장기보다는 마음을 먼저 자극하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마을에서 늦도록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해걷이바람을 타고 스치는 갈치 굽는 냄새가 몹시 행복하였었다.


  아침 여섯 시 쯤, 사무실 인근 시골 마을로 운동 삼아 자전거 드라이브를 나섰다. 이른 아침에 시골길을 달려본 적이 얼마 만인지 아예 기억조차 없다. 출판사 사무실이 있는 온수동은 서울과 경기의 경계여서 조금 벗어나면 인근이 온통 시골이다. 열차가 끊긴 철길과 연못이라 해야 딱 어울릴 저수지도 있다. 사람들은 긴 철길을 따라 산책을 하거나 저수지에서 밤새 낚시를 하기도 한다. 온통 아스팔트 세상인 도시 중심가와는 사뭇 다른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저수지를 지나 시골마을로 들어섰다. 근처에는 자전거로 몇 번 와봤지만 오늘 아침 들른 이곳은 처음이었다. 시골 출신의 나에게는 초여름 푸성귀 썩는 냄새도 정겹다. 포도밭에는 송이마다 봉지가 씌워졌다. 막 들판으로 들어서자 잘 다듬어진 미나리꽝에서 미나리 향기가 솔솔 풍겨온다. 손으로 미장을 하듯 다듬은 논도랑에는 앙증맞은 개구리밥이 물길을 따라 흐르는 듯 멈춘 듯 떠다닌다. 활착한 벼들이 짙푸르러 든든하고, 노란 호박꽃들이 지천인 밭도 있다. 한 농부의 세발수레에는 보드라운 호박이 가득하다. 좀 까칠해 보이지만 훤칠한 키의 열무 밭에서는 와사삭와사삭 바람이 인다. 밭 앞에 쪼그려 앉은 노인이 아침 담배를 맛있게 피우지만 쿨럭쿨럭 금세 기침이라도 토할 듯해 보인다. 저 노인은 담배를 몇 년 동안이나 피워왔을까…. 담배 생각이 또 다랑귀를 뛰다가 산천초목의 새맑은 공기 탓인지 수르르 사라진다. 

어릴 때 우리 동네에는 담배 농사를 짓는 집이 있었다. 담배 잎 수확 철이 되면 그 집 처마 밑은 온통 새끼로 엮은 담배 잎으로 치렁치렁하였다. 통풍이 잘 되는 그늘진 곳에서 담배 잎을 매달아 말리는 것이다. 담배 잎이 어찌나 독한지 그 집에는 벌레가 없었다. 또한 담배 농사를 짓는 주변에서는 누에를 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럼에도 이 독한 담배를 우리는 즐겨 피운다. 한 모금의 담배 연기를 하얀 휴지에 대고 품어내면 시커먼 니코틴이 휴지에 짙게 밴다. 그 니코틴이 몸 구석구석에서 굴진처럼 쌓인다는 상상을 하면 누구든 인상을 찌푸리며 낯놀림을 하게 되지만 담배에서 쉬 벗어나지 못하는 애연가들이다. 


 어릴 적 밭주인 몰래 따먹기도 하던 보랏빛 가지가 매끈하게 달려 유혹을 한다. 들판을 좀 더 들어가자 비닐하우스 안에는 때깔 고운 토마토들이 주렁주렁하다. 기찻길 옆에는 코스모스가 흐드러져 마치 동화적인 분위기가 난다. 사방은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친 분지 같은 들판, 이슬이 흠뻑 내려 사위가 상쾌할 만큼 눅눅하다. 칠월 첫날의 아침 햇살은 아직 여리기만 해서 들판 가운데 선 내 몸에서 풀냄새가 나는 듯하다. 이 얼마 만에 느껴보는 자연의 숨결인가. 굴진이 더께더께 쌓인 방고래가 아니라 녹음방초의 대지가 들이마시는 아침 공기이다. ‘아, 행복해!’라는 감탄사가 절로 터진다. 이토록 가까운 곳에서 이른 아침 시골 정취를 마음껏 느낄 수가 있다니 역시 내 사무실 자리는 명당 중의 명당이다. 이슬로 물씬 젖은 아침 들판이 나를 또한 촉촉하게 젖게 한다.

 금연을 하면서 사물이 더욱 뽀송뽀송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가슴이 담배 냄새로 가득한 아침이라면 이처럼 신선한 공기를 그대로 느낄 수가 있을까. 전날 마신 숙취가 남아 있다면 맑은 자연의 아침이 내 것일 수가 있을까. 당신이 인간에게 주신 이 아침을 나는 늘 술과 담배로 외면한 채 살아온 셈이다. 어제 온종일 담배를 피웠다면 그리고 어젯밤 술을 마셨더라면 아침 일찍 자전거를 타고 들판으로 나서지도 못했을 것이다.

술 담배 없는 세상이 과연 나에게 어떤 맛과, 어떤 멋과, 어떤 세상을 줄 것인가 궁금하였다. 오늘 아침 나는 술 담배를 포기함으로써 얻은 삶의 희열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만끽하였다. 또 앞으로도 이 아름다운 세상, 이 행복한 세상과 끝없이 만나게 되리라. 이른 아침 들판에서 이토록 내가 행복해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다소 근심이 있을지라도 그 근심을 술과 담배가 아닌 이 자연에서 풀어놓으면 더운 큰 위안을 얻으리라.

                                                         -11/26일 현재 금연 154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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