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별 및 별자리 운세★★

금단현상_금연일기5, 제3의 인생

7154 2009. 11. 17. 19:05

 

 

철록어미의 금연 에세이5

             -제3의 인생



금연할 때 흔히 나타나는 꿈이 있다. 금연 나흘째가 되니 슬슬 담배 피우는 꿈을 꾸게 된다. 하긴 담배가 들어 있던 왼쪽 가슴께부터가 허전하다. 인이 박인 세월이 있는데 어찌 비문증 같은 허상인들 안 보이랴. 꿈속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화들짝 놀라 ‘내가 무너지고 말았구나.’ 한탄하며 허탈해한다. 그러다가 꿈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첫날보다는 덜 보대꼈으나 지난밤 두 번째 발작이 일어났다. 담배의 빙의는 내 몸의 모든 세포에서 똬리를 틀었다. 밤새 잠들지 못한 이들의 아우성이 내 입에서 신음으로 터져 나왔다. 나는 발악하는 그들을 잠재우느라 또 날이 밝도록 몸을 뒤틀었다. 이 발작을 나는 기꺼이 받아들인다. 만일 잠자리가 아닌 데서 이 발작이 욕구로 뻗친다면 나는 무너질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는 내가 이겨낼 수 있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나중에야 썩어 문드러질지언정 매일 담배 연기를 마시도록 30여 년 동안 길든 심신이다. 어찌 보면 술과 담배 회사는 선(善)을 가장해 인간을 사육해오는지도 모른다. 젊은 날 사법시험 준비를 하던 때 특히 금연이 절실하였다. 교도소 독방 같은 방에서 흡연은 유일한 낙이요 위안인 최고의 선(善)이었다. 그러다 보니 담배를 끊기로 단단히 마음먹어도 작심삼일이 아닌 부유일기(蜉蝣一期)로 끝나버리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하루를 넘기고 나면 그 고통을 견딘 시간이 아까워 금연을 이어 갈 텐데, 대부분 금연 실패는 하루를 채 넘기지 못한 데 있었다. 금연 하루를 넘기던 첫날밤, 발작처럼 나타난 금단현상도 아마 그런 연유인지 모른다.


오늘 아침도 자전거로 출근하였다. 이때는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보다는 일부러 논과 밭이 있는 시내 외곽으로 돌아온다. 항동이라는 그곳에는 자그마한 저수지와 열차가 안 다니는 철길이 있다. 그 연못 같은 저수지에서 밤낚시를 한 사람들이 이슬받이 풀섶에서 자리를 챙겨 하나둘 떠난다.

샤워를 한 후 사무실에서 아침을 챙겨 먹었다. 연달아 아침을 먹어본 지가 언제였는지 어사무사하다. 약간의 시장기도 흡연욕구를 달구치니 일부러 챙겨 먹는다. 시장기가 끈 하면 담배 맛 역시 당기기 때문이다. 아침을 먹었으니 녹차 다릴 준비를 한다. 본래 나는 녹차를 아주 즐겨하였다. 하지만 담배는 녹차보다 커피가 더 궁합이 맞아 녹차와 멀어지게 되었는데 금연을 하면서 다시 녹차를 찾는다. 녹차의 쌉쌀한 맛은 식사의 자극적인 여운을 가심해 흡연 욕구를 줄여줄 뿐만 아니라, 흥분적인 커피와는 달리 차분한 기운이 식후 포만을 달래서 인이 오는 것을 막아주기도 한다.


오전 8시, 온수역으로 들어서는 길에는 출근길 사람들이 애바쁘다. 아침마다 *솔쏘리바람이 부는 온수역이다. 사방 골목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7호선 지하로, 1호선 지상 터널로 맷돌흐름처럼 빨려 들어간다. 나는 이 발코니에서 퇴근하는 저들을, 또 출근하는 저들을 자주 내려다본다. 담배를 피우려고 염치없이 들락거리던 발코니가 이제는 담배를 잊고자 숨 돌리는 장소가 되었다. 단전에서부터 숨을 끌어올려 깊이 심호흡을 한다. 안개가 자욱해서인지 축축한 나뭇잎 냄새가 상쾌하게 감돈다. 담배 한 개비 피워 물고 앞산을 향해 연기를 내뿜던 엊그제가 그립기는 하다. 참 부지런히 살아가는 사람들, 아홉 시가 채 되기도 전인데 온수역 주변이 금세 한산해졌다. 꼬리를 물고 들락거리던 전철도 한숨 돌리는 모양이다. 출근하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여유를 부리던 내 마음도 덩달아 부산해진다.


30년 동안, 30분마다 아니면 길어야 한 시간마다 오른 손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쉴 새 없이 빨대 짓을 하였다. 이런 일이 어느 날 갑자기 멈춘다면 이는 마치 30년 동안 써온 몸의 기능 하나를 잃은 것과도 같을 것이다. 전혀 불편 없이 여기에 익숙해지려면 작히나 저릿저릿한 시간이 흘러야 할까마는, 오늘이 나흘째인데 길바닥에 떨어진 빈 담뱃갑에도 시선이 꽂힐 만큼 심하게 인이 온다.

어둑발이 비치자 술 담배 생각이 간절하다. 감상벽(感傷癖)이 있는 탓인지 나는 어렸을 때부터 외로움을 잘 탔다. 훗날 고시준비를 할 때는 그 외로움을 중병처럼 앓았었다. 해걷이바람만 불면 찾아오는 습관성 외로움을 견디고자 술과 담배를 더 벗 삼았다. 밀려드는 어둠은 곧 나의 외로움이었다. 갑작스레 두 형제를 잃은 이후로는 술과 담배가 부쩍 늘었다. 술을 마시면 취할 때까지 마시려는 인음증(引飮症) 때문에 중독자로 의심하는 시선이 있었으나 나는 오직 어둠이 몰려와 있을 때만 술을 마셨다.


밤이 깊어 갈수록 갈증이 더 우둔거린다. 이를 잊으려고 아홉 시 경 잠자리로 들어갔으나 잠이 올 리 없다. 속이 타서 냉수를 한 대접 벌컥벌컥 마셨다. 젊은 시절, 이런 독기로 자신을 다스렸다면 적어도 허덕이는 삶은 아니었을 것이다. 왜 나는 젊었을 때 좀 더 자신에게 엄격하거나 냉철하고 지혜롭지 못했는지 부끄러울 뿐이다. 술 담배가 앗아간 헤아릴 수 없는 정력과 시간과 돈은 이제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나는 늘 패배자였다. 무엇이든 해보려는 열정은 있었으나 독기는 금세 식어버렸다. 호스피스병실에서 폐암 환자들의 고통을 지켜보면서도 끝내 담배를 내려놓지 못했다.

담배만 끊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매번 금연에 실패하듯 내 인생도 그리 실패로 점철되었다. 시운불행(時運不幸)이라고 변명하기에는 나약한 자신이 먼저 드러난다. 하지만 이제라도 다행이다. 삶의 한 세대가 남은 이제라도 더는 잃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담배 없는 지금부터가 제3의 인생이려니 하면서 지천명의 나에게 조금 기대를 해본다.


*회오리바람의 방언



출처: http://cafe.daum.net/w1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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