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을 잃은 꼬실이(12)
꼬실이가 앞을 보지 못한 지 1년 반이 지났다.
처음에 허둥거리는 녀석을 보면서 내 마음도 그에 못지않게 허둥댔다. 그러는 내게, 녀석이 안쓰럽다 하면서도 이내 적응을 하게 되는 법이라고 모두 입을 모았다.
동호회에도 앞 못 보는 애가 있는데 전처럼 활발하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벽에 붙듯이 의지해 잘 돌아다니기에 우리 꼬실이도 그리되겠거니 나 역시 믿었다. 그런데, 처음 그대로다. 여전히 돌아서는 데마다 벽을 받고 의자 다리에 부딪치고 미끄러져 휘청 구른다.
자고 일어나면 눈을 마구 비비는 것도 여전하다. 꿈에 본 세상이 왜 안 보이나 이상한 모양이다. ‘애가 꼭 사람 같더니만, 저는 사람인 줄 알더니만, 시력 잃고도 여느 개처럼 얼른 적응을 하지 못하네, 쟨 정말 사람인 모양이야.’ 사람들이 그렇게 수군대며 혀를 찬다.
몇 달 지나면서 귀도 어두워지고 냄새도 못 맡게 되었다. 그래도 기를 쓰고 코를 바닥에 끌며 냄새를 맡고자 기를 쓰는 모습을 보면, ‘여기쯤 있을 텐데 왜 냄새가 나지 않지?’ 이런 혼잣소리를 하는 게 들리는 것 같아서 가슴이 쓰리다. 방을 나와 거실을 몇 차례 빙빙 돌다가 쉬야를 한다. 생전 휴지로 닦아내는 걸 모르며 살았던 지난 세월을 지금 한꺼번에 겪는 것 같다.
다른 개들이 실수하는 것을 보면 갸우뚱했던 벌을 받나 보다. 그래도 꼭 거기에만, 절대 애먼 데다가 실례를 하진 않는다. 가령 예를 들어 방이나 부엌이나 서재에는 절대, 아니 아예 화장실 근처가 아닌 다른 곳에다가는 실례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응가의 경우 열 번 중 여덟 번은 화장실을 찾아가 해결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쉬보다 응가를 참기가 더 쉬워 화장실까지 찾아들 시간을 버는 걸까. 아무튼 같은 곳을 수십 차례나 뱅뱅 돌고 돌다가 기어이 화장실 문턱을 넘어들어가 꼬부리고 힘을 주는 모습을 보면 예쁘고 고마워서 왈칵 눈물이 나온다.
- 김은미 반려견 에세이집 「꼬실이」(해드림) 중에서
http://www.yes24.com/24/goods/4521672?scode=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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