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을 잃은 꼬실이(10)
사료를 먹지 않고 간식만 골라 먹자 똥이 질척해졌다. 굳이 탈이 나 설사를 하는 건 아니어도 때글때글 모양 좋은 곱똥을 누지 않는다. 똥 한 번 누려면 한 자리에서 지긋하게 힘을 주는 게 개들이 아닌 바, 계속 등을 동그랗게 꼬부리고 어기적 발을 옮겨 디디며 싸서 여기저기 똥이 흩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눈도 보이지 않는 녀석인지라 이미 눈 똥을 피하며 발을 골라 디디지 못하여 걸핏하면 질척한 똥을 밟고 마는 거다.
제일 황당한 것은, 밤새 싸놓은 똥. 아침에 눈을 떠 보면 거실 가득 똥과 똥 발자국. 태연하게 내 옆에서 자는 놈을 돌아보다 다른 데로 눈을 돌리면 방석, 쿠션, 이불에 똥 아닌 곳이 없다. 부랴부랴 자는 놈 깨워 발바닥에 이미 잔뜩 굳어 붙어 더는 칠갑할 일 없는 똥을 뜯어내야 하고, 집안 곳곳 닦느라 엉덩이를 치켜들고 돌아다녀야 한다. 발 디디는 건 말할 것도 없고 행여 무릎에라도 묻을까 제대로 된 자세로 걸레질을 할 수 없으므로. 그리고는 연방 돌아가는 세탁기는 또 쉬지 않고 빨래를 토해 낸다.
허구한 날 물로 씻겨대면 가뜩이나 약한 살갗이 견뎌낼 수 없으니 엔간하면 물걸레로 발바닥과 똥꼬를 닦아내는데, 자는 거 깨웠다고 신경질만 낼 뿐 절대로 반성하는 기미가 안 보인다.
‘제발 사료를 먹어 다구.’
애원을 해봤자 귀도 움찔하지 않고 여전히 육포나 내놓으란다. 하지만 아프지 않게 하려면 비록 질척거리는 똥을 싸 놓을 원인이라도 우선 먹여야 한다. 그리고 솔직히, 그 질긴 육포를 차근차근 씹어 먹는 걸 보면 정말 예쁘다. ‘그래, 질척한 똥이면 어떠냐. 아무리 똥으로 칠갑하더라도, 아무리 허리 두들겨 가며 하염없이 걸레질을 하더라도, 아무리 매일 이불 빨래를 해야 하더라도, 그리고 오늘처럼 갈아입자마자 이내 벗어서 또 빨아야 하더라도 아프지 말고 무엇이든 잘만 먹으면 되지 뭐. 녀석아, 엄니 무릎에서 내려 저리 가 누워. 빨래 널어야 한단 말이야.’
- 김은미 반려견 에세이집 「꼬실이」(해드림) 중에서
http://www.yes24.com/24/goods/4521672?scode=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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