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시력 잃은 꼬실이(14)

7154 2011. 2. 8. 12:16

 

 

 

 

 

시력 잃은 꼬실이(14)

 

오늘은 왜 갑자기 걷겠다고 고집이다.

앞이 안 보이니 몇 발짝 걷다 말겠지 했다. 그런데 어럽쇼, 이 녀석이 지치지도 않고 아주 행복한 표정으로 아장아장 때로는 비틀비틀 걷기를 멈추지 않는 것 아닌가. 언덕 아래부터 한참 걸어 나와서야 삼선교 큰길이고, 거기서 혜화동 오르막길을 또 걸었다. 한 번 안아 올렸더니 금세 눈이 쪽 찢어져서 언짢은 심사를 고스란히 내비쳤다. 정말 별일이다. 어려서도 젊어서도 하지 않던 오랜 산책을 이제야 비틀거리며 고집하다니.

‘볕이 따가운 오르막이 힘들 텐데도 할딱거리지도 않고 느긋하게 한발 한발, 아이고, 내가 미쳐!’

 

대학로 입구엔 일요일이면 으레 그렇듯 외국인들 장이 서서 번잡했다. 아무래도 무리지 싶어 꼬실이를 안아드니 힘을 줘 버둥거렸다. 여전히 걷겠다는 강력한 의사표현이다.

‘에고 나도 몰라, 누구한테 걷어차여도 원망하지 말어.’

 

내 곁에 붙어 걷게 하느라고 목줄을 바짝 채서 걷느라 긴장을 해서 팔이며 등 근육까지 아픈데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장아장 잘도 걸었다. 그렇게 해서 마로니에 공원까지 갔다. 마침 대학문화제인가 하는 걸 하는 중이어서 치어리더 공연이나 힙합 공연으로 사람들은 더 버글버글, 그런데도 녀석은 죽어라 걷겠단다. 정말 못 말린다. 녀석을 지켜보느라 정작 목적했던 것은 찾을 시간도 없었다. 딸이 학교에서 나올 때는 가까워져 오는데 사람 틈바구니로 작은 개 한 마리 걸리며 여기저기 기웃거릴 엄두도 못 내겠고, 할 수 없이 덜렁 안고 돌아 나오려 하자 다시 버둥버둥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치는 게 아닌가.

 

결국 또 내가 졌다. ‘얘가 대체 왜 이러냐.’ 여전히 아장아장 걸려서 돌아오는 길,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를 흘낏거리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강아지가 아픈가, 아니 늙은 건가. 잘 걷지도 못하는데 걷게 하네. 쯧쯧.”

그러나 그런 거야 아무래도 좋았다. 사실은 그렇게 행복한 표정으로 걷는 걸 보는 건 즐거웠다. 열일곱 살 나이는 어디다 잠시 뒀는지 씩씩하게 걷고자 하는 그 의지가 참 가상하다.

 

- 김은미 반려견 에세이집 「꼬실이」(해드림) 중에서

 

http://www.yes24.com/24/goods/4521672?scode=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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