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시력을 잃은 꼬실이(11)

7154 2011. 2. 5. 11:46

 

 

 

시력을 잃은 꼬실이(11)

 

 

……꼬실이가 자꾸 아버지 옆에 가겠다고 버둥대는 거다. 아버지가 잔뜩 취해 들어오면 술 냄새 싫어서 근처에도 안 가더니 냄새를 못 맡게 되고는 그걸 상관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술기운에 열이 오르는지 밤새 몸부림치는 아버지 옆에 뉘면 발에 걷어차이기 일쑤요, 보이지 않는 눈으로 피해 다니다가 때론 구슬프게 울면서 내려 달라고 하소연하기도 하고, 때론 혼자 내려오려다 침대에서 떨어져 비명을 지르기도 하니 가능하면 그리 보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말이 안 통한다. 죽어도 가야겠다고 눈을 위로 쪽 찢어 신경질을 내는 데야…. 결국 두 손 들고 마음대로 하라며 풀어놓고 말았다.

 

늦은 밤에 TV를 볼 때면 눈부신 게 싫어서 불이란 불은 다 꺼 버린다. 오늘도 역시 그러고 있었다. 딸과 둘이서 TV 모니터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딸이 벌떡 일어나 아버지 방으로 달려 들어가는 거다. 그리곤 꼬실이를 안고 나오며 토닥거렸다.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거예요.”

TV에 집중하느라고 나는 그 소리를 듣지 못 했었다.

“아버지 방에서 들리기는 하는데 어두워서 보이지는 않고, 혹시나 하고 가 봤더니 얘가 아버지한테 깔려서 주둥이 끝만 겨우 나와 있지 뭐예요. 아버지가 몸을 굴리면서 갑자기 통째로 덮쳐 버려서 소리를 지르지도 못했나 봐요. 모르고 그대로 뒀으면 곧 죽었을 거예요. 헤헤 쎄 헉, 이런 막힌 숨소리만 내고 있어서 아버지 밀치고 안았더니 글쎄 붉은 혀가 환한 핑크빛이 되어 있더라고요. 피가 통하지 않았나 봐요. 조금만 더 뒀더라면 보랏빛 되었다가 다음엔 새까매….”

 

말을 미처 마치지 못하는 딸과 꼬실이를 번갈아 보면서 나는 굳어 버렸다. 정말 간담이 서늘하다. ‘쉰여덟 배 체중에 깔려 죽은 노견.’이라고 뉴스에 나올 뻔했다.……

 

 

- 김은미 반려견 에세이집 「꼬실이」(해드림) 중에서

http://www.yes24.com/24/goods/4521672?scode=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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