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마지막 회: 꼬실이(65)

7154 2011. 8. 11. 14:46

 

 

 

 

 

 

 

마지막 회: 꼬실이(65)

_빈자리(6)

 

 

 

이른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접시며 컵이며 몇 가지 씻다가 눈이 간 개수대 앞 칸, 약봉지 두 개.

어어어, 저게! 밥그릇이며 패드며 널린 것 치울 생각은 했지만 약봉지가 거기 있던 건 깜빡했구나.’

알러지 때문에 걸핏하면 긁는 막둥이가 먹던 약. 그걸 손에 들고 피식 웃었다. 약 먹는 것 참 싫어했다. 그래도 아주 얌전하게 잘 받아먹었다. 딸은 늘 그랬다. “약 먹임을 당하는 꼬실이가 너무 불쌍해요.” 라고.

짜식, 인제는 약 먹지 않는 세상에 가 버렸구나.’

 

졸졸졸 떨어지는 수돗물처럼 다시 주룩 흐르는 눈물,

이거 병 될라.’

생각난 김에 냉장고를 열고 약봉지를 줄줄이 꺼냈다. 알러지 약, 설사할 때 먹는 약, 토할 때 먹는 약, 진통제 등등 참 많기도 하다. 어떤 탈이 나면 약을 받아오기는 하되 많이 먹여 좋을 것 없겠다 싶어서 증상 가라앉으면 얼른 거두어 냉장고에 넣곤 했다. 그러나 다음에 같은 탈이 나도 차마 지어뒀던 거 먹이지를 못하고 다시 지어오곤 해서 이렇게 약봉지가 쌓인 거다. 시력을 잃고 나서 자주 부딪고 떨어지고 뒹굴고 해 다치는 적이 잦았다. 그래서 근육통 약이나 진통제가 제법 많다.

이걸 다 어쩌누. 차마 버리기가 좀 그렇네.’

 

차곡차곡 종류대로 정리를 해 다시 넣었다. 냉장고 닫으려다 눈에 들어온, 작은 티스푼으로 하나 겨우 먹였나, 마지막 입 다셨던 딸기 요플레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좋아했는데 먹지도 못하고 가다니.’

그 옆에는 스무 날쯤 전에 먹다 둔 치즈가 비닐에 싸여 곱게 놓여 있다.

이거 정말, 별 데 별 데 다 틀어박혀 있네 그려.’

 

딸이 학교에 가는 날이다. 막둥이 떠나고 처음으로 집을 나서는, 그러니까 즉 내가 처음으로 혼자 집에 남겨지는 날이란 의미이다. 솔직히 말해서 혼자 있는 것에 자신이 없다. 하지만 그런 내색은 하지 않고 딸더러 쫄쫄 울고 다니지 말라고 일렀다. 다행히도 오늘은 개인 작업을 하러 가는 게 아니라 방학특강 수업이 있는 날이다. 개인 작업을 하러 가면 기껏 한두 명 더 있을 뿐이어서 넓은 과실이 텅텅 비어 있지만 특강에는 적어도 스무 명은 벅적댈 것 아닌가. 울고 자시고 할 시간이 없기를 바란다.

 

딸을 역까지 데려다 주려고 지갑과 차 키를 찾아들고도 두리번거렸다.

요 녀석 깊게 자고 있으면 살짝 다녀와도 되겠지, 설마 그새 깨서 애먼 데 더듬거릴까.’ 습관처럼 그런 계산을 하다가 이내 머쓱해져 버렸다. 현관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딸의 등이 눈에 들어왔다.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저 애도 지금 동생을 찾고 있구나.’

 

별말 없이 가다가 별말 없이 내려서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딸. 돌아보는 옆자리는 딸이 내려서 텅 비었고 내 무릎도 텅 비었다. 혼자 운전을 한 게 도대체 몇 년 만이란 말인가. 아차 하는 순간 또 신호를 어겼다. 어제도 그저께도 자꾸 그랬다. 아무래도 신호위반 딱지가 줄줄이 날아들겠다. 머리를 흔들었다. ‘정신 차려야지. 이러다 사고 낼라.’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또 두리번거렸다. 침대는 비었는데 아무 데도 녀석은 없다. ‘그렇지, 인제 없지. 인제 여기 살지 않지.’

집이 낯설다. 우리집 같지가 않다. 아무래도 집에 있지 못하겠다. 어디든 나가야겠다. 멍하니 서서 어디 갈까 잠시 생각하다가 드디어 갈 곳을 생각해 냈다. 우선 돌아가는 세탁기가 멎으면 빨래 널고 나가야겠다. 그런데 거기까지 한 번에 가는 지하철 노선을 얼마 전에 알았는데, ‘지하철로 가면 구름 사이로 들락거리는 햇볕 아래 운전을 하지 않아 좋겠구만.’ 이렇게 툴툴거리다가 번개를 맞은 듯이 번쩍 놀랐다. ‘

맞아, 나는 이제 지하철을 타고 가도 돼. 버스 타고 나가서 지하철 갈아타고, 그렇게 가도 돼.’

그런 생각이 솔솔 기어 나오자 그만 털썩 주저앉아 삐질삐질 울고 말았다. 어딘가 나갈 때 교통편 걱정하지 않고 나서도 된다는 낯설음이 바로 슬픔인 줄 몰랐다. 만날 막둥이를 챙기면서 가느다랗게 내쉬던 한숨이 얼마나 큰 기쁨이었던 지를 그 때는 몰랐다. 아무 데나 들어가 밥 먹고, 아무하고나 아무 데서나 만날 약속을 해도 괜찮고……. 그런 자유가 얼마나 쓸쓸한 것인지 몰랐다. 차를 없앨까. 이제 딸이 다 컸으니 버스로 전철로 못 다닐 일은 없고, 유지비 부담도 줄이고. 허리 아프고 다린 아픈 거야 살살 다니면 아직은 쓰지 못할 몸뚱이는 아니겠고.

아아, 세탁기가 부른다.

 

- 김은미 반려견 에세이집 꼬실이(해드림) 중에서

(이 책은 상업적으로 기획된 책이 아니라 반려견 꼬실이18년 함께 살아온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http://www.yes24.com/24/goods/4521672?scode=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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