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꼬실이(63)_빈자리(4)

7154 2011. 8. 9. 21:03

 

 

 

 

꼬실이(63)_빈자리(4)

 

 

그 애는 언제나 누나를 지켰다. 딸이 아주 작은 꼬마였을 때 잠깐 둘만 두고 시장에 간 적이 있었다. 스쿠터 타고 다녀오느라 30분 정도 집을 비웠는데, 가깝게 지내는 보일러 수리공이 들를 거라서 아저씨 오시면 문 열어드리라고 당부를 하고 나갔다. 그 때 꼬실이가 누나 앞을 가로막고 그 총각을 향해 무섭게 짖어댔던 모양이었다. 내가 돌아왔을 때 아직 수리 중이던 총각은, “개가 참 사납네요,”라고 말했다. 그 때까지도 녀석은 총각 꽁무니에서 짖고 있었다. 나중에 딸이 말했다.

아는 아저씨니까 괜찮다고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고 제 앞을 가로막고 짖는 거예요. 제가 괜찮다고 말할 때마다 저를 잠깐 돌아보고는 다시 아저씨한테 짖으면서, 하마터면 아저씨를 물 뻔 했어요. 그렇게 짖는 건 처음 봤어요. 저를 쳐다볼 때 꼬실이는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어요. 누나는 내가 지켜줄 테니까 걱정 마.”

 

겨우 여섯 살이었던 딸애가 제법 조리 있게 상황을 설명하는 걸 들으면서 퍽 흐뭇했다.

그 뒤에도 주욱 그렇게 누나를 지켰다. 내가 딸애를 야단치면 어디선가 튀어나와 나한테도 덤볐다. 사람들이 장난을 치느라고 부러 딸을 때리는 시늉을 하면, 딸은 또 장단을 맞춰서 아야소리를 질렀는데, 그 때마다 막둥이는 상대한테 어마어마한 기세로 대들어 짖었다. 한번은 동무가 딸을 때리는 척했다가 손을 가볍게 물리기도 했는데, 그 뒤로 십 년이 지나서도 잊지 않고 그 아이를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렸다.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후에도 딸이 아야소리를 하면 무턱대고 그쪽을 향해 짖었다. 간혹 나와 딸이 장난을 치다가 간지럼을 태워 죽는 소리를 내면 내가 있는 쪽 허공에 입질을 하면서 짖었다. 이번에 밥을 먹지 않게 되면서 기운을 잃은 와중에도 누나가 시험 삼아 아야소리를 냈더니 차마 짖을 기운이 없는지 누운 채로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었다. 그렇게 소중한 누나가 울고 있는데 뛰어나오지 못하는 제 심정은 어떨까 상상한다. 그게 또 가엾다.

 

집에 있는 게 싫다. 나가면 들어오기 겁난다. 아들 냄새가 콜콜 나서 와락 반갑다가도 그 부재가 무섭게 다그치며 멱살을 잡는 기분이다.

이사를 하려고 했다. 좁아터진 집에 있노라면 나도 병이 날 지경인데 녀석도 집이 마땅치 않아 몸만 돌리면 어디엔가 부딪게 돼서 스트레스로 병이 난 게 아닐까 혼자 짐작을 했다. 언제고 이사는 해야 할 터이니 미리 당기자 마음먹었었다. 그러나 막둥이가 없는 지금 여기도 넓은 것 같다. 더 넓고 편한 데 간들 무슨 소용일까.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기 귀찮은 판에 이사는 무슨, 그냥 주저앉고 말자고 마음을 바꿨다. 어쩌면 막둥이 체취가 진하게 밴 여기를 떠나는 게 싫은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동호회 아우는 얼른 서둘러 집을 옮기라 야단이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상실을 잊을 거라는 얘기다. 그럴까. 정말 그럴까.

 

떠나면 잊혀질까. 젊어서 연애를 하다 끝내고 나면, 애인과 같이 갔던 데 가면 그 생각이 나서 미치겠고, 가본 적 없던 데 가면 또 여긴 같이 오지 않았었지 하면서 우울했었다. 어디서든 애인을 대입시켜 떠올리는 건 똑같았고, 그 조건은 내가 만들어내기 나름이었다. 마찬가지 아닐까. 녀석과 살아본 적 없는 곳에 가면 살아보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새록새록 온갖 상상을 더해 그리워하진 않을까.

 

 

- 김은미 반려견 에세이집 꼬실이(해드림) 중에서

(이 책은 상업적으로 기획된 책이 아니라 반려견 꼬실이18년 함께 살아온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http://www.yes24.com/24/goods/4521672?scode=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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