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꼬실이(64)_빈자리(5)

7154 2011. 8. 10. 14:48

 

 

 

 

꼬실이(64)_빈자리(5)

 

 

오늘도 종일 더위 속에서 잔뜩 신경질이 나 있다.

새벽 네 시 반에야 겨우 자리에 들어 그럭저럭 잠을 자기는 했는데, 깨고 나서 내내 몽롱한 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 걸을 때마다 발 주변을 종종종 따라다니던 애가 없는 이 상황이 정말 낯설다. 의자에 앉으려다가 멈칫, 무심코 깔고 앉을까 봐 걱정을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한편으로 괜한 기우인 걸 깨달아 정수리가 서늘해진다.

 

어제 치워 버려 눈에 띄지 않는 밥그릇, 그 썰렁한 자리가 허전하다. ‘괜히 치웠나.’ 더워서 머리가 어떻게 될 것 같고, 하도 울어서 머리가 터질 것 같다. 바스락 소리에 후딱 머리를 들다가, ‘아니지.’ 하고 주저앉기를 얼마나 했던가.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딸애도 쓰레기 봉지가 버스럭 하면 몸을 반쯤 일으키곤 했다.

 

꼬실이가 일어났나, 의자에 재워둔 꼬실이 떨어지겠다.’ 이런 생각이 퍼뜩 스친다 했다. 그러면 또 눈물이 쏟아져 휴지를 찾게 된다. 우리는 마치 고장 난 수도꼭지 같다.

 

누가 세상을 떠나건 말건 세상은 변함없어 화가 난다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아니 분명히 세상은 변했다. 그저께는 막둥이 있던 세상, 어제는 막둥이 없는 세상, 오늘도 막둥이 없는 세상, 앞으로 내내, 다시는 절대 막둥이가 없을 세상. 그건 분명히 큰 변화다.

그러나 시간 지나면 이 눈물도 마를 것이다. 때때로 목을 조이는 듯한 기분은 느껴질 테고, 아마 가끔 눈물이 나기도 할 거다. 그러나 대부분은 지금 같지는 않게 살아가게 될 것이다. 새로 기르는 강아지 재롱에 웃을 것이고, 웃다가 또 막둥이 생각이 나면서 비교하고 한숨지을 것이다. 부모님 보내놓고도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금도 세상이 다 잠든 한밤중에 깨어 있어 내 정신이 온통 눈물에 젖을 때가 있다.

 

보고 싶어서.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보고 싶어서. 아가야, 내 아름다운 꼬실아. 너에 대해서도 그렇겠지. 지금의 이 생생한 기억들이 희미해지고 미안한 것도 행복했던 것도 다 아련해지는 날이 오겠지. 그렇지만 역시 정신을 온통 눈물로 적시며 문득 문득 잠들지 못할 정도로 보고 싶은, 꺽꺽 숨이 막히게 그리울 것도 알아. 그게 말이야. 사랑이라는 거란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지랑이처럼 아련해지기는 해도 결코 빛이 바래는 법이 없는 사랑, 그거 말이야!’

 

- 김은미 반려견 에세이집 꼬실이(해드림) 중에서

(이 책은 상업적으로 기획된 책이 아니라 반려견 꼬실이18년 함께 살아온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http://www.yes24.com/24/goods/4521672?scode=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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