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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이 엄마의 사부곡

7154 2011. 8. 21. 12:01

올해는 안동에서 스케치 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안동은 좀 특별한 곳이다. 한마디로 한국의 예향(禮鄕)이다.

동방 예의 지국이라 불리는 그 예향 말이다.

그래선지 안동엔 유난히 종가집이 많다.   종가집을 지키는  종손들의 긍지도 대단하다.

그러나 그 긍지도  맏며느리의 손끝을 통해 대대로 전해내려 오는 가양주나

오랜 장과 식혜 같은 전통요리가  없다면 별 흥미를 끌지 못할 것이다.

 

나는 언제 시간이 나면 전국의 종가집을 순례하며

비밀한 그들의 음식과  가양주를  한잔 얻어 먹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있다.

 

안동하면 퇴계선생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퇴계의 학문적 업적과 여인 두향과의 애틋한 사랑도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러나  내가 안동을 스쳐 갈 때 조차  늘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단아한 미투리 한짝과 

무덤에서 발견된 남편을 여윈 한 여인의  색바랜 편지한장이다.

 

1998년 안동 정상동의 택지개발지구에서 오랜된 무덤,하나가 발견되었다.

 

무덤의 주인은 고성 李氏 이응태(1556~1586)였다.

그는 서른 셋의 아직 젊은 나이에 이승을 하직하고 여기에 묻히게 되었다.

사내들 평균 신장이 150cm 남짓하던 당시의 상황으로 보면

그는 180cm가  넘는 기골이 장대하고 훤칠한  남정내였다.

 

무덤속에는, 망자의 미이라와 몇가지 유품이 있었는데  그 중에는  먼저 세상 떠난

남편을 향한 아내의 애끓는 심정이 담긴 친필 편지와, 

아내의 머리카락, 그리고  삼(麻)을 엮어서 만든  한 켤레의 고운  미투리가 발견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다른 사람이 쓴 글들은 모두 심하게 부패되어 있었는데

망자의 아내가 쓴 편지는 거의 원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당시 이 편지는 언론에 공개되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 편지를  다시 한번 소개하고자 한다.

 

원이 아버지에게

 

당신은 언제나 저에게 둘이 머리가 희어질 때까지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 저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저와 어린아이는 이제 누구 말을 듣고, 누구를 의지하며 살라고 먼저 가십니까?

당신, 저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오셨나요?

저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저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당신은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잊으셨나요?

그런 일을 잊지 않으셨다면 어찌 저를 버리고 그렇게 가시는가요?

당신을 잃어버리고 아무리 해도 저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빨리 당신 곁으로 가고 싶습니다. 어서 저를 데려가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는 잊을 수가 없어요.

이 서러운 마음을 어찌할까요?  이제 이  마음을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할까요.

어린 자식을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아갈 날을 생각하니 아득하기만 합니다.

이내 편지 보시고 제 꿈에 와서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어째서 그토록 서둘러 가셨는지요? 어디로 가고 계시는지요?

언제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는지요? 우리는 헤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지요?

어떤 운명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하셨지요?

우리 함께 죽어 썩더라도 우리는 헤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지요?

저는 그 말씀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편지를 써서 넣어드립니다.

당신, 제 꿈에 오셔서 우리 약속을 잊지 않았다고 말씀해 주세요.

어디에 계신지, 우리가 언제 다시 만날지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당신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이 있다고 하셨지요?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을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시라는 것인지요?

아무리 한들 제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 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제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를 자세히 보시고 제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씀해 주세요.

저는 꿈에서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아무도 몰래 오셔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습니다.

 

 

                                                       -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

 

 

이 편지는 소설가 조두진에 의해 <능소화>란 제목의 소설로, 그리고 영화와

오페라로  공연되기도  했었다.

 

이 글이 쓰여진 시기가 조선 명종때이니

당시 엄격한 유교의 영향으로 부부간의 애정표현이 금기시되었던 시기라 고

막연하게 생각하던  내게 행간마다 슬픔이 가득한 

절규에 가까운  심정을 담은 한 여인의 편지는

시공을 뛰어넘어 내게 또 다른 커다란 안타까움으로  다가왔었다.

 

창졸간에 남편을 잃어 경황이 없을터인데 

아마 사람들 이목을 피해 한밤 중 호롱불 밑에서 이 글을 썼을터이다.

 

더구나 종이가 지금 처럼 흔하지 않는 시대라 여백에 마져

가는 붓으로  꼼꼼히 쓴 글자들이  애끊는 여인의   심정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무덤에서 발견된 미투리

                

         

                   

                                            

사진의 부진 (辭盡意不盡)

하고픈 말은 다했지만 속마음은 다 전하지 못했음이라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까 ?

 

 

원이엄아의 편지 원본     (안동대학교 박물관 소장)

 

 

출처 : 햇볕 쏟아지는 뜨락
글쓴이 : 수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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