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문득문득

로또복권에 당첨되면1 날개 달고 일주일

7154 2018. 12. 15. 09:41



로또복권은 갈수록 서민들의 희망이자 불안이자, 행복이고 불행이 되었다. 매주 주말마다 행운을 점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로또에 울고 웃는다.

그러나 서민들에게 부(富)를 유혹하는 로또는 일주일 동안 즐거운 상상에 젖어 힘든 일상을 잊어버리게 하기에 구태여 끊을 필요 없는 좋은 의미로서의 사행성 도박이다. 그러기에 세계 어느 나라이든 복권의 상거래가 계속 되는 것이리라.

 

예전에 둘째 남동생이 한동안 로또복권에 빠져 살았다. 당시 결혼 2년 차였던 동생은 적은 월급에 용돈이 궁했던지 요행을 기대하고 푼돈만 생기면 로또복권을 여러 장씩 사서 항상 희망을 가슴 속에 품고 다녔다. 그렇듯 머리와 가슴에 품고 있는 희망은 매주 며칠 동안 그가 어깨를 쫙 펴고 다니게 해 주었고, 신바람날 것도 없는 그의 일상에 보랏빛 날개를 달아 주었다.


어느 날인가, 우리 다섯 남매들은 오랜만에 만나서 식사하고 지난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각자 헤어질 시간이 되어 서로 인사말들을 나누고 있었다. 그때 복권 마니아인 그 둘째가 갑자기 잠바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느닷없이 로또복권을 여동생 둘에게 한 장씩 나누어 주었다. 맏이인 나와 바로 위의 형은 빼고 여동생 둘에게만 준 것이다.

그런데 날씨 탓인지, 아니면 혹시라도 당첨이 된다면 그때 일어날 파급효과 때문인지 내 눈에는 동생의 손이 가늘게 떨리는 듯 보였다.


“이거 아까 오다가 산거야. 줄건 없고 이거라도 오랜만에 만난 선물로 줄게. 내일 모레 추첨이니까 잘 살펴봐.”

남동생은 친절하게 부연 설명까지 하며 좀 멋쩍은 듯 어설프게 웃었다. 여동생들은 난데없이 받게 된 복권선물에 헛웃음을 날리며 잠시 당황해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셋째 여동생이 한마디 했다.

“혹시 당첨되면 어떻게 해, 오빠?”

그 애는 아직 복권에 대해 잘 모르는 나이인지라 당첨이 쉬운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둘째는 당혹해 하는 눈빛으로 잠시 주춤하더니 느릿하게 말했다.

“선물로 주는 거니까 니들이 알아서 해. 당첨돼도 돈을 달라고 하지는 않을 거야. 다 자기 운인데 뭘.”

그러더니 서로에게 인사를 하고 서둘러 가버렸고, 남은 우리도 각자의 생활로 돌아갔다. 그 뒤로 두 여동생들에게 그 복권에 대해서 물어 본 적은 없었지만, 그들이 잠적하지도 않았고 돈 보따리를 거머쥔 것 같지도 않았으니 안 맞은 건 뻔했다. 어디 천운을 타고 나기가 쉬운 일이던가.


그런데 나는 가끔 그 뒤로도 그 일이 생각나곤 했다. 만약 그날 남동생이 선물로 준 로또가 당첨되었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이성적으로는 나눠가지는 것이 정당한 일이지만, 과연 그것이 교과서대로 되는 일일까? 그렇게 눈먼 돈은 의외로 사람을 눈멀게 만드는 것을 가끔 뉴스에서 보고 있지 않은가.

로또 때문에 금실 좋은 부부도 다툼으로 갈라서고, 갑자기 거금을 받고 놀란 사람은 돈 관리를 하지 못해 그 돈을 도박이나 유흥비로 흐지부지 낭비하다가 급기야는 구치소에까지 가는 일도 있지 않은가? 물론 이런 경우는 예외이겠지만 요행으로 번 돈은 인간을 눈멀게 만드는 확률이 큰 것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로또가 된다면 좋겠지만 안 된다고 아쉬워할 것도 없다.


나는 지난해에 서 너 달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번 로또를 샀었다. 다행스럽게도 천 원짜리가 서 너 번, 또 만 원짜리가 당첨되어 그 돈으로 열장을 바꾸었으나 모두 꽝이었다. 잠시 부풀었던 희망의 풍선이 터지면서 아쉬움만 남겼다. 그 뒤로는 목돈이 필요할 때마다 ‘로또를 사야 돼!’ 하면서도 사지 않았다. 내게는 천운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기죽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는 나로 하여금 가끔 로또 판매점 앞에 서게 한다. 둘째 동생이 아직도 로또 마니아로 살면서 희망을 버리지 않듯이, 나도 가끔은 어깨에 날개를 달고 일주일을 보내고 싶다. 그것은 내가 나에게 주는 정신적인 선물이니까.

-강경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