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게 바치다
-녹원 이상범 시인
섭리가 숨 쉬는 자연, 꽃의 세계
2004년 시집「풀무치를 위한 명상」을 발표한 이래, 이번「꽃에게 바치다」는 3년여 동안 준비해 출간한 선생님의 17번 째 작품집이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 작업을 어떻게 해왔는지 수시로 선생님 댁을 드나들며 봐왔고, 이 작품집이 탄생하기까지 나를 얼마간 귀찮게(?) 해온 터라 작품집을 손에 든 마음은 흥분될 수밖에 없었다. 시집 제목은 직접 쓰셨고 양장본에 부분코팅을 한 「꽃에게 바치다」는 내지도 아트지를 사용하여 컬러로 제작되었다.
2004년 인사동에서 시서화 전시회를 개최한 후 선생님은 한동안 여주를 오가며 도자기화(네모난 도자기에 시와 그림을 넣어 구어 낸 것)에 몰두하였다. 그러던 선생님이 어느 날부턴가 조그마한 디지털 카메라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별을 노래하던 때처럼 꽃에 몰입하였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꽃 사진을 컴퓨터에 저장할 줄도 모르던 선생님은 그때부터 틈만 나면 내게 전화를 걸어와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주말이면 내가 직접 선생님 댁을 찾아가 답답해하는 부분을 알려드렸다. 선생님의 성품을 어느 정도 아는지라, 컴퓨터가 마음대로 다루어지지 않을 때 얼른 달려가 알려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적잖았다.
컴맹이나 다름없었으나 예술에 대한 열정은 젊은이들 못지않게 포토샵까지 다루는 데로 번져 「꽃에게 바치다」라는 새로운 전범의 시집이 나온 것이다. 선생님의 예술혼을 바탕으로 디지털 카메라와 꽃 그리고 컴퓨터와 창작이 빚어낸 결과이다.
처음 선생님은 꽃 사진 중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골라 포토샵으로 오리고 이를 필름으로 출력한 다음, 코팅 지를 이용하여 합판에 붙어놓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진 작품이 수천 장에 이르러 선생님 책상 근처에 수북하게 쌓이는 동안, 디지털 카메라가 바뀌고 컴퓨터와 그 주변기기도 탈이나 바꾸어야 했다. 거기에 사용된 잉크하며 출력지 등의 비용만 해도 아마 수백만 원은 들었음 직하다.
연로한 연세에도 불구하고 거의 밤샘하다시피 하던 선생님은 꽃 속에서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금잔이 태어나고 새들이 태어나고 별들이 태어나는 등 아름다운 소재가 담긴 형상을 포토샵을 이용해 내놓았다. 꽃 속에 감추어진 신비스런 세계를 선생님의 예술혼이 벗겨냈다고 할까. 그렇다고 그런 신비한 형상이 마구 쏟아진 것은 아니다. 선생님은 이번 작품집에서 그 고초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시는 하나의 구원이요, 눈물이었다. 사진 또한 그러한 연장선상에 있다. 건강의 회복을 위해 손바닥 안에 드는 소형 디카(접사 가능)를 들고 산과 들, 야생화와 원예종의 꽃을 두루 섭렵했다. 꽃에 사물의 형상이 숨긴 시의 소재를 찾아 꼬박 두 해 하고도 반년을 소모해야만 했다.
원하는 접사를 위해 되도록 많은 숫자를 포착해야 했고 추리고 버리기를 반복하며 예술성과 선명성을 위해 포토샵을 적지 아니 활용하기도 했다. 가다가 그림인 듯 여겨지는 것은 모두 그러한 연유에서다. 결국 시와 사진이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상승작용을 함으로써 사진 속에 시가 스며들고 시 속에 사진이 녹아들어야 완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 가운데 우주가 있었고 섭리가 숨 쉬고 있었으며 세상의 온갖 형상이 숨어 있어 시의 출산을 도왔다는 것은 실로 큰 수확이자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꽃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고 40년 시력(詩歷)의 영감으로 쓴 작품 또한 이미지 못지않게 아름답다. 어쩌면 사진 작업을 하면서 이미 시상은 잡아두었을 것이다. 그림이 크면 시가 묻힐 것이고 시가 크면 그림이 묻힐 것이어서 그 조화까지도 섬세하게 고려한 선생님은, 마지막 단계에서 소나무 사진 한 장이 마음에 안 든다며 그 소나무를 찾아 영주까지 다녀왔다. 그 덕분에 열흘 가까이 호된 몸살을 앓아 마치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는 밤부터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는 시구를 떠올리게 했다. 나는 이번에도 선생님의 창작과정을 지켜보면서 예술가인 문인의 정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깨닫는다. 길을 가다 아이들을 보면 꽃처럼 웃는 선생님은 젊은 문인들에게 고생하여 생각하고 쉽게 표현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선생님의 감성은 항상 별이고 꽃이다.
이번 시집의 작품해설은 이상옥 창신대학 교수(문학평론가)가디카詩의 새 경지, 오늘의 패러다임 제시라는 주제로, 유성호 한국교원대 교수(문학평론가)가꽃과 더불어 숨쉬는 언어의 심미적 풍경이라는 주제로 썼다.
<본문 중에서>
천년 전 빛난 문화 흙의 잠을 털어낸다
칠흑 속 일그러진 금빛 때깔 다시 찾아
황금의 잔을 돌리던 그 얼굴을 헤아린다.
출토된 귀부인의 곡옥이며 귀걸이들
지체 높은 사람들 금빛 잔에 띄우던 미소
토기의 술잔에 어린 그 얼굴도 보고 싶다.
-<금잔金盞-두메양귀비에게>
분명 제비꽃인데 꽃잎 지면 타조 떼
너른 들 달리는 꿈 감춰둔 뜻 있었나 보다
긴 목에 솜털의 잔 머리 꽃 아녀도 어여쁘다.
-<타조 군락-암동제비에게>
어리고 작은 것의 바람을 한데 모아
누군가 뜨거운 기도 함께 올리고 있다
아기 손 양손으로 감싸 풀어주고 싶은 소망.
저마다 간절한 희구 합쳐지는 천수천안
조막손도 힘을 보태 목숨이 숨쉬는 집
무엇이 돼가는 공간 흰 나비 떼 설렌다.
-<작은 기도-섬개미취에게> 사진
1935년 충북 진천에서 태어났다.
1963년 시조문학지에 비(碑)로 3회 추천완료,
1964년 문공부주최 예총주관 제3회 신인예술상에
시조 빙하사(氷河史)로 수석상 수상,
196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일식권(日蝕圈)이 당선되어 문단등단.
1967년 첫 시집 일식권<일식권>을 시작으로 <별><신전의 가을><풀무치를 위한 명상>등 모두 15권의 시집을 출간하였다.
방 송: 1987년 KBS 11시에 만납시다50분간 대담 등 다수
수 상: 1983년 제4회 정운시조문학상(한국문학사),
1985년 한국문인협회 제정 제22회 한국문학상,
1989년 중앙일보제정 제8회 중앙시조대상,
1994년 동명사 제정 제10회 육당시조문학상,
1995년 제4회 이호우시조문학상,
1999년 가람시조문학상(문학사상사)등 수상.
주요경력: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 회장 등 역임.
현재 토방출판사 주간, 한국시조사 대표.
수필드리림의 테마수필 http://www.sdt.or.kr/
인터넷 한겨레신문 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09504.html
경향신문 기사보기
http://www.khan.co.kr/kh_news/art_view.html?artid=200705161803031&code=96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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