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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세상 살아가기

7154 2007. 10. 4. 08:01
 

힘든 세상 살아가기

임병식




중풍 다스리는 데는 바위이끼만 한 게 없다는 말을 듣고 요즘 나는 틈만 나면 산에 올라  이끼를 채취한다. 그러나 채취하는 이끼는 어디서나 만나는 그런 게 아니라서 힘이 든다.  바위위에 착 달라붙어서 석화(石花)처럼  피어나는데, 마치 본드로 붙여놓은 듯하다. 여간해선  때어내기도 쉽지 않지만 흔치도 않은 까닭이다. 해서 눈에 띄면  갬대를 사용하여 조심조심 긁어모으는데 그 분량이 그야말로  들인 수고에 비한다면  병아리 눈곱만 하다.

따라서 이런 작업을 하려면 장갑을 끼지 않으면 아니 되고, 그렇게 해도 한참 지나고 보면  어느새 장갑은 헤져있고 손은 상처가 나있기 일쑤다. 일할 때는 모르는데 나중에 쓰려서 보면 어김없이 피가 배어나온다. 그 만큼 까다롭고 힘이 드는 작업이다. 나이 들어  못할 노릇이 간병일이지만 이 일 또한 여간 만만한 게 아니다. 아내가 쓰러진 햇수는  5년, 재발이 된 지는 3년째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어떻게든 아내를 일으켜보려고 그간 나는 병원을 집을 삼아 소독내 진동하는 병실에서 2년여를 보냈다. 그러는 동안 틈틈이 좋다는 처방은 다 받아보고 좋은 약은 빠지지 않고 써봤지만 별무 효과였다. 그런데 최근에 나의 귀에 솔깃한 풍문이 들려왔다. 중증 중풍환자를 일으켜 새우는 데는 바위이끼 만한 것이 없다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몇 가지 약초와 섞어 조제를 하는데 무엇보다도 주재료인 이끼 모으기가 관건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나는 곧바로 시골에서 고향을 지키고 살고 있는 친구에게 연락을 취했다. 마을이름이 석장(石場)일 만큼 바위천지에서 사는 친구인지라, 그 친구에게 부탁하면 구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부탁을 받은 친구는 한 달여 만에 한 되 남짓한 예의 그 돌이끼를 채취하여 보내왔다.

농사일을 하는 틈틈이 두 내외가 함께 산에 올라 채취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 친구 내외의 수고를 떠올리니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친구는 보내면서 자기의 수고는 겸양으로 감추고 어서 환자가 효과를 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그 믿음직한 속내가 눈시울이 뜨겁게 했다.

 아내가 쓰러지자 천지간에 혼자인 듯 외로웠는데, 마음을 써준 벗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친구는 여러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끼를 채취하며  얼마나 고생했을까. 사실은 없어서 채취를 못한 게 아니라, 떼어내기가 더 어려워 모우기가 어려운데 그 많은 분량을  채집하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그리고 그런 작업을 하느라 들린 시간은 또 얼마나 되었을 것인가. 도저히 지극정성의 마음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오직 돕겠다는 마음 하나와 꼭 효험을 보기를 바라는 마음하나로 한 작업이 아니고서는 감당해 낼 수 없었으리라. 작업을 하자면 큰 바위뿐 아니라 위험한 곳도 마다하지 않았을  텐데 어찌 단순히 노고로써만 가름을 할 수 있으랴. 그런 생각을 하니 한없이 고맙고  콧등이  시큰해졌다.

나는 작업을 하다말고 바위 위에서 일손을  잠시 놓고 고개를 젖혀 심호흡을 해본다. 우중충한 하늘은 짙은 구름이 가득 끼어 하늘은 턱없이 내려앉아 보인다. 그리고 사위는 오목렌즈를 쓴 듯 부쩍 좁아 보인다. 그런 가운데, 시선을 옆으로 돌리니 별나게도 구부정한 제법 큰  소나무가 한 그루 눈에 들어온다. 그 부분이 유독 도도록한데, 자세히 보니 축대를 쌓아놓은 흔적이 있는 게 고분(古墳)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후손이 돌보지를 않았으면 무덤이 저 지경이 되었을까.

어떤 이의 무덤인지는 모르나 후손이 망하지 않았으면 절손(絶孫)이 된 것 같다. 어떤 이가 연구차 오래된 무덤의 후손을 조사해보니 우리나라 사람의 30%정도가 절손이 되었더라 했는데 이 묘의 후손들도 그런 운명을 맞았을까. 축대를 쌓아놓은 규모로 보아서는 제법 격식을 차려 쓴 무덤이 분명한데,  방치해 놓은걸 보니 착잡한 생각이 스친다. 이를 보니 흔히 사람은 석자 흙 속에 들어가지 아니하고는 백년 몸을 보존하기 어렵고 (未歸三尺土 難休百年身), 이미 흙 속에 들어가서는 백년무덤 보존이 어렵다(已歸三尺土 難休百年墳)는 말이 실감된다.

이 정도의 규모로 터를 잡았을 때는 아마도 몇 백 년은 갈 것으로 믿고, 신후지지(身後之地)를 마련을 했을 것인데, 고분으로 남아있으니 사람의 일이란 내일을 기약한다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오늘을 살아내는 일이 더 당장  중요한 게 아닐까. 훗날의 일은 그저 훗날의 일일 뿐, 오늘의 난관을 헤치고 근심을 풀어 가는 게 중요한 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 때문인지 잠시 허리를 펴고 일어난 손에는 처음처럼 다시 힘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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